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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작가 Aug 17. 2022

엄마는 대식가인 줄 알았습니다

너무 늦게 알아버린 진실에 관하여


저는 유독 어린 시절에 관한 기억이 많지 않은 편입니다.

너무 평범한 시간들을 보내서일까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남들보다는 확실히 기억 속 필름들이 짧은 편이에요.


그런데, 그런 중에도 너무 선명하게 남아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그러니까 저 때의 용어로는 '국민학교' 때였는데요, 가족끼리 외식을 위해 뷔페식당에 갔더랬어요.



저와 언니가 몇 번이나 이것저것 주워 담아 온 접시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울 정도였는데요, 우리가 몇 번 먹다 만 그 음식들을 엄마가 그렇게 깨끗하게 비우시는 겁니다.


"아이고 네 엄마 봐라, 막 쓸어먹는다"


아빠의 농담에 우리는 깔깔대며 엄마 몇 끼 굶었냐는 핀잔을 보탰고 엄마는 그저 웃기만 했던 것 같아요.


뷔페식당이 가장 대표적인 곳이긴 했지만 그 외 어디에서건 엄마는 정말 잘, 그것도 아주 많이 드셨더랬습니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대식가인 줄 알았어요. 원래 먹는 걸 좋아한다고, 원래 양이 많은 사람이라고 그냥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우리는 몇 번 뷔페식당에 갔었어요.


그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신이 나서는 이 접시 저 접시 마구 날라댔고 조금씩 먹어보고는 흥미를 잃었는지 뷔페 놀이를 멈추더라고요.


'가자~ 집에 가자~ 심심해~'


정말 대충 먹은 아빠를 잡아끌었고 남편은 아기를 따라 마지못해 일어섰는데요, 저는 도저히 일어나질 못하겠더라고요. 조금 더 먹어야겠더라고요.


아기가 찡찡대든 말든 그냥 꿋꿋이 먹었습니다. 입 짧기로 유명한 저이기에 이미 한도를 초과한 지 오래였지만 말이죠.


그때 알았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대식가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요. 엄마의 뇌리엔 내내 메뉴판 속 그 숫자가 있었을 겁니다.


저 돈이면 과일을 얼마큼 살 수 있는데, 저 돈이면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몇 권 더 살 수 있는데 저 돈이면... 저 돈이면...


그리 알뜰한 편이 아닌 데다 비우고 버리는 걸 무척 좋아하는 저임에도 아기와 남편이 남긴 그 음식들은

정말 아깝더라고요. 금액대가 꽤 높았으니까요. 그 숫자가 자꾸만 아른아른거렸으니까요.


엄마는 그렇게 평생 대식가로 사셨습니다.

그러면서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 몰래 소화제 한 알을 삼킨 날들이 꽤 많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정작 드시고 싶었던 음식들은 어쩌면 가족 외식 밥상에 단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대구에 가면 오직 엄마만을 위한 근사한 한 상을 대접하고 싶어 집니다 그때만큼은 대식가가 아닌,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은 만큼만 먹고 우아하게 입 톡톡 닦으며 일어날 수 있는 입 짧은 미식가 엄마이길 바라봅니다.


여러분의 어린 시절 가족 외식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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