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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녕 Feb 09. 2023

미치도록 입 짧은 아이

한 입만 더 먹자

돼지우리가 따로 없네  

  이 말은 공간이 더럽다는 뜻이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구만

   이 말은 쓸모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돼지 멱따는 소리

   이 말은 꽤 듣기 싫은 소리라는 뜻이다.

돼지 같네

    이 말은 살집이 있다는 뜻이다.

듣는 돼지 억울하지만 이렇듯 돼지라는 말이 들어가게 되면 부정적인 뜻이 다.

특히 사람에게 돼지 같다고 하는 건 곧 싸우자는 말과 같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우리 집에서 돼지는 응원의 뜻으로 쓰인다.



정말 더럽게 안 처먹네


'언제나 차분하고 자상하게' 남들에게 큰소리를 내거나 화내지 않는 모습을 추구하는 나는 웬만해서는 험한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밥때만 되면 얘기가 다르다. 밥을 깨작거리는 아이들을 보면 울화통이 터 내 안에 있던 거친 아이가 튀어나온다. 물론 들리지 않게 입안에서 꿍얼거린다.

난 교양 있는 여자니까


선천적으로 마른 사람들이 있다. 무엇을 먹어도 살이 찌 않는 체질.

듣기만 해도 무척 부러운 체질이지만 그것이  내 아이가 된다면 생각은 달라진다.

체질이 그런데 입까지 짧으면 엄마는 정말 쳐버리게 된다.


한참 아동학대 기사가 많이 나온 적이 있다.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의 심각성을  표현하기 위해 평균몸무게 보다 현저히 적게 나가는 학대 아동의 몸무게가 비교 대상으로 나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나는 노와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

우리 아이들 몸무게크게 차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아동학대를 의심받기도 했었다. 아이감기 때문에 갔던 소아의사 선생님께 말이다.

"어머니, 아이들 밥은 잘 챙겨 주시는 거죠?"

그때의 충격은 꽤 오래갔었다.

아, 역시 남들이 봐도  정도였구나.


철마다 보약도 먹여보았다. 비타민에 민간요법까지 안 써본 게 없었다.

하루 세끼, 한 끼도 겹치지 않게 차려준다. 중간중간 간식을 챙겨주고 불량식품, 패스트푸드까지. 누군가 이거 먹어서 살쪘어라고 하는 게 있으면 뭐라도 좋으니 입에 넣어줬다.

한입이라도 더 먹이고자 했던 노력

밥 먹자 하면 한숨 쉬는 아이 앞에 알아서 먹어라는 사치다.

강제로 적정량을 먹여야 하기 때문에 할당량을 준다.

먹는 것에 할당량이라고 하면 우습지만 우리 집에서는 꽤 진지하다.


세월아 네월아 밥을 씹는 아이에게 한입 더 먹이기 위해 밥숟가락을 들고 입에 들이민다.

독립심을 기르기 위해서 엄마가 직접 먹여주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며 오은영선생님이 그러셨지만  간절함 앞에서는 본능이 이성을 이기는 법이다.


밥을 먹고 나면 바로 체중을 잰다.

목표체중이 되지 않으면 음료수라도 더 먹어야 하고 목표체중에 도달하면 박수를 받는다.

살찌느라 수고했어

 억울하니 사진한번 더




오늘 동물농장을 봤는데 거기에 돼지가 나온 거야 나도 돼지처럼 되고 싶었어. 살이 찌게 말이야
-어느 날 아이가 한 말

오늘도 외친다. 우리 열심히 먹자

우리의 소원은 돼지가 되는 거야


 그럼  엄마만 소원을 이룬 거네?


해맑 말 뒤통수를 때린다.

어금니 꽉 깨물고 말한다. 얼른 먹자

아무 말도 못 들은 척 밥을 내미는 나야말로 호구이자 이것 찐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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