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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녕 Feb 27. 2023

집요정, 도비가 아니고 노비입니다.

혹은 언년이

Dobby is Free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픈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대사, 주인공도 아닌 조연캐릭터 도비가 바로 이 세기의 명대사를 남겼다.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도비는 초반에 주인공인 해리를 사사건건  방해하는 역할로 나온다.

단순한 빌런이겠거니 하고 읽다 보니 이거 짠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집에 묶여있는 집요정보이지 않는 곳에서 집안을 관리한다.

심지어 보수도 받지 않는다.

요리, 빨래, 청소까지 말이 좋아 요정이지 노예와 다를 게 없었다.

아무리 집요정이라도 너무 부려먹네 했다.

근데 보다 보니 어딘가 익숙한 것이, 이거 나 같은데?!




집요정이 등장하기 전까지 커다란 호그와트 성의 살림은 누가 하는가를 궁금해하는 독자는 없었다.

끼니는 식당에만 가면 해결되는 것이었다.  앉기만 하면 저절로 차려지는 음식들을 먹으면 되었고 다 먹고 난 뒤 치우 않고 일어나면 되었다.


세탁 학생들의 몫이 아니었다. 옷이란 어딘가에 보내놓으면 깨끗하게 세탁되어 오는 것이었고 청소 또한 언제나 정갈한 상태였다.

스스로 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상황이라면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마법학교이기 때문에 저절로 되는가 보다. 나 조차도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마법이기도 했지만 고된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집요정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집요정이 없었다면 밥을 먹고 치우느라 수업시간에 늦고 깜박 잊고 운동복 세탁을 못해 퀴디치 시합을 못 나가는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들 없이 단 하루도 유지되지 못할 평화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희생을 고마워하지 않다. 집요정들조차도 그 일들을 별것 아닌 것으로 취급했으므로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회사와 학교에 나가면 그때부터 집요정의 시간이 된다.

널브러져 있는 책을 정리하고 세탁기를 돌린 뒤 쌓여있는 설거지를 한다. 식구들이 없는 시간, 어질러져 있던 집을 차근차근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다.


"벌써 세제가 다 떨어져 가네"

인터넷 최저가를 검색해서 세제를 주문한다.


"쌀은 다음 주에 주문하면 될 것 같고 치약은 나가서 사 와야겠다."

냉장고를 열 우유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한다. 손세정제 얼마만큼 남았는지 체크하고 리필용을 뜯어 채워 놓는다.

깨끗한 수건을 접어 채워 넣고 라면과 아이스크림을 사다 냉장고를 채워 넣고 하다못해 휴지가 떨어지지 않게 채워 넣고 나니 하루가 다 지나가고 있었다.


보통 살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일은 설거지와 빨래, 그리고 청소가 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하고 밥은 밥솥이 하는데 뭐가 힘들"


책이나 현실이나 살림을 생각하는 것은 한가지였다.

도비는 양말을 얻고 자유를 찾으니 좀 더  나으려나


아무에게도 공치사는 못 듣는다. 보수도 역시 없다. 가족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했다는 작은 자부심이 유일한 노동의 대가였다.

우리 집 도비바로 나였다.



하루종일 집에서 뭐 해


안부인 듯 아닌 듯 묻는다.

글쎄 하루종일 뭐 했더라


"청소기 돌리고 마트 갔다 왔지."

그리고 낡은 칫솔은 교체하고 다 쓴 건전지를 교체했다.

새로 사 온 파 한 단을 다듬어 냉동실에 넣어놓고 청소기 먼지망을 비웠다.

아주 사소한 것들, 너무 사소해서 나조차도 기억 못 하는 것들. 하루종일 그런 걸 했다.

"그거 1시간이면 다 하지 않나,  좋겠다 놀아서. 나도 집에서 쉬고 싶어."

아니야, 쉬지 않았. 바쁘게 무언가를 한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일인지 명하려고 하니 딱 말할 만한 것들이 없어 당황스러웠다.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은 안 했지만 보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기운이 빠졌다.

어차피 해도 티 안 나는 살림 다 때려치우고 파업할까.


"엄마, 배고파 밥 주세요"

네네 움직입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이 튀어 나간다. 전에 파업한다 그랬는데 나도 참 나다.

파업은 무슨. 량이 적성에 딱 맞거늘 몸이 이미 일에 너무 길들여져 버렸다. 도비가 아니라 노비입니다.

아니, 여자니까 언년이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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