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해보면 항상 허탈감과 공허함을 주었던, 그래서 언제나 회피하고 싶었던 가을은 40년 나의 삶에 있어 항상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시작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10대, 20대 시절 나의 가을은 대한민국 모든 수능 세대가 그러했듯이 대학 입시를 마지막으로 준비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었고 군대를 제대하고 다시 사회로 복귀하며 편입 준비를 시작하였던 시간도, 대학을 졸업하기 전 취업 준비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시간도 가을이었다. 4번의 이직을 하며 새로운 업무와 환경, 사람들에 적응하며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했던 30대의 시간도, 11월 나의 인생에 첫 아이가 되어줄 첫째를 맞이하기 위해 분주했던 시간도 가을이었다. 그렇게 가을은 항상 나에게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었고 어쩌면 내 삶의 결정적인 매 순간순간에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 되어주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10대의 가을이 20대의 가을을, 20대의 가을이 30대의 가을을, 30대의 가을이 40대의 가을을 만들어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나비가 날개 짓을 하여 세상 반대편에 태풍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나의 가을이 나의 삶 속에 나도 모르는 시간 동안 끊임없는 날개 짓을 하여 만든 바람이 태풍이 되어 나의 인생의 방향을 이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40의 고개를 넘어 맞이하고 있는 나의 가을은 앞으로 다가올 50의 가을 모습을 만들어주고 있을지 모르겠다. 50대의 가을을 준비하는 40대의 가을, 그 중심에 서 있는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 가을을 나는 잘 보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또 과거의 어느 가을처럼 회피하고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나는 옷장 속에 넣어두었던 얇은 긴팔 바람막이를 꺼내 출근길을 나섰다. 이제는 정말 가을의 중심에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 이 가을이 더 추워지기 전에 청명해지는 가을 하늘 아래,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단풍 아래 불어오고 있는 40대의 나의 가을바람이 나를 어느 방향으로 밀어내고 있는지, 어느 곳을 나를 이끌고 있는지 가만히 서서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그리고 늦지 않았다면 그 가을바람의 방향을 지금 보다 조금 더 나은 50대의 가을로 인도하게 끔 바꿔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