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역 11번 출구
2035년 7월. 경기도 모처의 교정시설. 굳게 닫힌 회색 철문 앞에, 평범한 대학생 셋이 서 있었다.
“혹시… 권서룡수형자 면회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간수는 잠시 그 이름을 되새기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그 양반을 찾는 사람이 있긴 하네.”
젊은 남학생이 조심스레 물었다. 조별과제로 ‘헌정사 주요 판결’을 조사하던 중, 10년 전 ‘헌정 역사상 유일한 파면 대통령’ 권서룡을 찾아온 것이다.
직원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람은 여기 아닌데… 무기징역수예요.
남부 구치소로 가야 해요. 요즘은 면회도 잘 안 받는다더군요.”
시간이 되감긴다. 10년 전, 파면 당일.
광화문 거리에는 비가 흩뿌렸다. 그날, 수많은 시민들이 텔레비전 앞에, 휴대폰 화면 앞에 서 있었다. 헌법재판소에서 판결문이 낭독되던 순간,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침묵했다.
어떤 노인은 말했다.
“이게 민주주의라면… 너무 늦게 왔다.”
어떤 청년은 절규했다.
“이제라도 왔으니… 우리 아이들은 좀 나아야지.”
방송 앵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피청구인 권서룡의 파면을 인용합니다.”
“그는 권한을 남용하였고, 헌정 질서를 위반하였으며,
국가를 사적 권력의 도구로 이용하였습니다.”
국민들은 울었다.
그러나 기쁨이 아닌 허탈함의 눈물이었다.
다시 현재, 2035년.
남부 구치소. 면회실.
“권서룡수감자 면회입니다.”
간수가 말했지만, 안쪽 침상에 엎드린 노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권서룡님, 대학생들이 왔습니다.”
그제야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등은 구부정했고, 눈은 흐렸으며, 병색이 짙은 얼굴에선 더 이상 권위의 잔재조차 없었다. 면회실에 들어선 대학생 셋. 그중 한 명이 말했다.
“우리는 학교 조별과제로 ‘파면 판결의 헌정사적 의미’를 조사 중입니다. 혹시… 과거의 판결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인은 말이 없었다. 물만 마셨다. 턱은 떨렸고, 손은 탁자 위에서 서서히 미끄러졌다.
“그 판결, 인정하시나요?”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눈을 감은 노인은 조용히 벽만 바라봤다.
학생들은 돌아섰다. 그중 한 명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우린 모든 걸 지켜 봤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은, 아직도 그날의 역사가 진행 중이신가 보네요.”
노인은 그 말에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저 오래된 시계처럼 무거운 눈꺼풀만 천천히 내려앉았다. 권력이란 무엇이었을까. 세상을 휘감던 그 이름은, 이제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법정도, 언론도, 국민도 떠난 자리에서 남은 건 하나의 늙은 몸뚱이, 그리고 끝내 하지 않은 한 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