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역 11번 출구
2022년 여름, 스무 살이 된 정민호는 현역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평범한 청년이었다. 축구를 좋아했고, 친구들과의 MT를 기다렸고, 수능 점수표를 찢은 뒤 홀가분한 표정으로 군 입영을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말했다.
“건강하게만 다녀와. 다치지만 말고.”
민호는 ‘다치지 말라’는 말이 군인이 되기 전 들은 마지막 당부였다는 걸, 그땐 몰랐다. 입대한 지 5개월째 되던 날, 민호는 훈련 중 넘어졌다. 왼쪽 무릎에 심한 통증이 왔다. 그러나 위생병은 말했다.
“군장 무게 때문에 그래요. 파스 붙이고 진통제 드릴게요.”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민호는 한밤중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4일 뒤, 다리가 부어올라 군화도 신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제서야 내무반장은 그를 의무대에 보냈고, 의무대는 한 군 병원에 그를 이송했다.
X-ray 결과는 ‘골수염 의심’. 민호는 물었다.
“골수염이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의사는 답하지 않았다.
민간 병원으로 이송된 건 2주 후였다.
그 사이, 염증은 급속히 번졌다.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전문의는 진단했다.
“급성 골수염입니다. 이미 괴사 부위가 진행되어 절단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그때 민호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어머니는 병실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애가 아프다고 계속 말했어요… 근데 아무도, 아무도 안 들었어요…”
민호의 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는 대한민국, 소속 부대, 그리고 군 병원. 국가 측 대리인은 법정에서 차분히 말했다.
“국가는 병사 민호의 이상 증상을 인지한 후 즉각적인 의료 절차를 밟았으며, 적절한 대응을 하였습니다.”
변호사는 반박했다.
“적절한 대응이란 게, 진통제 4알로 버티게 하고, 민간 병원은 2주 후에야 보내는 겁니까?”
국가는 말을 아꼈고, 재판장은 서류를 넘겼다.
<판결>
서울행정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국가는 군 복무 중인 병사의 의료 처치에 대해 일정 수준의 책임을 진다.”
“하지만 골수염은 진행이 빠른 질환으로, 조기 발견이 어려운 점, 군 의료체계의 한계를 고려해…”
“국가는 일부 책임은 인정되나, 전적인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국가는 원고에게 위자료 1,800만 원을 지급하라.”
어머니는 그날도 민호의 의족을 닦으며 말했다.
“국가는 다리를 잃지 않았습니다. 다리를 잃은 건 제 아들입니다.”
민호는 지금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장애 판정은 4급, 정규직 취업은 어렵고, 재활은 꾸준히 필요하다. 그의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준비한다. 민호는 오늘도 ‘국가’를 떠올린다.
“내가 잃은 다리는, 누구를 위해 잘린 걸까.”
청춘을 빼앗은 국가는 침묵했고,
그 침묵이, 아들의 삶보다 더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