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통
각성은 사람을 메마르게 한다.
전혜린을 알게 된 후, 나의 신경은 한 방향으로 쏠려있다.
‘그녀를 알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말이다.
삼 일을 자지 않고 그녀만 읽었다.
목뼈와 어깨가 부서질 것 같았고, 몸은 이미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한 자세로 몇 시간씩 있는 일이 이렇게나 사람을 망가뜨리는 일인지, 그때서야 알았다.
요즘 사람들은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을 농담처럼 쓴다.
불행에도, 고생에도, 분노에도 총량이 있다는 말이다.
다 겪고 나면 조금은 편해질 거라는 위안 같은 이야기들.
그런데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삶에 너무 많은 풍랑을 겪은 사람이 아닐까.
1934년, 불안이 일상이던 시대에 태어났고
1952년, 만 열여덟에 독일로 떠났다.
그때 한국은 한국전쟁 한가운데 있었고
조국은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왕도 없던 시대, 해방 이후의 혼란기, 이승만 정부 시절.
남과 북이 갈라졌고, 이 땅은 냉전의 최전선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도착한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폐허였다.
전쟁은 끝났지만, 죄책감과 붕괴의 흔적은 도시보다 사람들의 눈에 더 짙게 남아 있었다.
그녀는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건너고 있었다.
진행 중인 조국의 전쟁,
막 끝난 타국의 전쟁.
그녀는 약해서 무너진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폐허를 통과해야 했을 뿐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평온은 오지 않았다.
그녀는 독일 문학을 번역하며 살아갔다.
헤르만 헤세, 릴케, 슈테판 츠바이크…
그들의 문장을 한국어로 옮기면서
사실은 자신의 상처를 번역하고 있었을 것이다.
번역은 일이 아니라 생존이었을 것이다.
타인의 고독을 빌려
자신의 고독을 말하는 방식.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아온 사자』
『휴일의 풍경』
그녀의 문장은 늘 맑았지만, 위험했다. 투명했지만, 안쪽에는 생것의 고독이 살아 있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녀의 마음 속 전쟁은 멈추지 않았던 것 같다.
평범한 일상은 버거웠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어려웠을 것이다.
한 인간이 성장기에 두 번의 전쟁을 겪었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그녀의 폐허가 된 가슴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아마도 번역은 피워보지 못한 청춘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고 눌러 담은 비명이었을 것이다.
전쟁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문학이라는 숨 쉴 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은 그녀를 끝내 놓아주지는 않았다.
생의 끝까지 따라붙어
그녀의 삶을 조용히 갉아먹고 있었다.
그녀는 폐허를 벗어난 사람이 아니라
그 폐허를 언어로 건너간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녀가 바라보았던 세상이
너무 잔혹하고, 너무 비참해서
지금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그녀를 볼 수 있다면, 꼭 한 번 안아주고 싶다.
그녀는 세상을 일찍 떠난 것이 아니다.
세상이 먼저, 아름다운 꽃을 꺾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