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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여자들 Dec 13. 2020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글쓰는여자_푸른산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밤새 병실은 대낮같이 환했지만, 창밖은 칠 흙같이 어두웠다. 날이 새기를 기다린 것도 아니 건만 어느새 뿌옇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창밖을 보았고, 어슴푸레한 새벽이 거기에 있었다.


“아! 아침이 오고 있구나?”

“오늘을 넘길 수 있을까? 아니 내일이 있을까?”


너무나 또렷하게 공간과 시간이 각인되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집에 혼자 남게 될 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동안 엄마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한 사람의 삶이, 죽음이, 어제저녁까지 내 눈앞에 있었던 모든 것들이 일순간 이렇게 사라지는 것인가 싶었다.

숨죽여 울던 울음이 걷잡을 수 없이 자꾸만 입 밖으로 툭! 툭! 터져 나왔다. 

나는 엉-엉- 소리 내어 한참을 울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2020. 7. 24. 0시 35분.

엄마의 두 손이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피가 위로 솟구치는지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엄마의 온몸은 잔뜩 힘이 들어가 활처럼 휘어졌고, 부릅뜬 두 눈과 목소리는 다급하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엄마의 한 손은 침대 난간을 부여잡고, 한 손은 나를 향해 뻗어오고 있었다. 내가 잠에서 깨어 엄마를 향해 다가가 어떻게 해볼 겨를도 없이, 엄마는 그대로 이불에 구토를 시작했다. 엄마의 등을 두드리고, 입에 묻는 토사물을 다 닦아 내기도 전에 다시 토하고, 그러다 사례가 들렸다. 쏟아낸 토사물 위로 엄마의 눈물과 콧물과 침이 다시 흘러내렸다. 엄마의 얼굴과 옷에, 이불 위에 그리고 나의 손과 옷에 처절했던 전쟁의 잔해가 남겨지듯 여기저기 흔적이 남았다. 나는 쉬지 않고 엄마를 불렀다. 백번쯤, 아니 천 번쯤 아니 그 순간은 그 말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엄마! 엄마! 괜찮아?

엄마! 엄마! 엄마! 나야 나! 엄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119를 누르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쥐고 있는 나의 손이, 아니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손에 힘이 빠지면서 쥐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트릴 것 만 같았다. 내가 제대로 번호를 눌렀는지 몇 번을 확인하며 핸드폰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무슨 생명줄인 것처럼 떨어트리지 않으려고 나는 더 힘껏 핸드폰을 쥐었다. 연결화면이 뜨고 신호음이 들이기까지 나의 벌떡거리는 심장이 금방이라도 가슴을 젖히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위급함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엄마가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나는 너무 애가 타고 두려웠다. 그때 119로부터 접수 확인과 평소 건강상태, 현재 상황, 위치 등을 묻는 두 번의 전화가 왔다. 나는 이 상황에 그들이 그것을 물어보는 것에 그리고 내가 그 물음에 답해야 하는 것에 화가 났다. 나는 결국 그들의 물음에 대답을 다 하지 못하고 울먹였다.  


‘제발! 제발 빨리 좀 와주세요.’

‘제발!’ 


엄마가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 것 같았다. 어서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119는 오고는 있는 것인지?, 왜 이런 절차와 확인이 굳이 지금 필요한지 답답하기만 했다.

나 혼자서 엄마도 진정시켜야 하고, 거실에 불도 켜야 하고, 현관문도 열어야 하고, 대문도 열어야 하고, 119 상담원의 전화도 받아야 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사이 119가 도착했다. 혈압을 체크하고, 소방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186이네요.’

‘보호자님 입원한다고 생각하고 간단한 소지품 챙기세요.’


그다음은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가 달린다. 자정을 넘어서인지 도로는 한적했다.

엄마의 병원 진료와 약을 타러 한 달이면 2번씩 꼬박꼬박 가던 이 길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구급차 안에서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오빠에게 전화했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엄마의 손을 놓지 않았다. 출발 당시만 하더라도 엄마의 의식은 있었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서둘러 접수를 하느라 엄마를 살필 수 없었다. 

접수를 마치고 엄마에게 갔을 때는 구급차에서 응급실 침상으로 엄마는 옮겨진 상태였다. 눈을 감은 채 아무 움직임도 없이 엄마가 침대에 누워있다. 엄마는 의식을 잃은 듯했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으며 나지막이 엄마를 불렀다. 


‘엄-마-!’


그리고 다시 한번 그리고 또다시 한번, 아무 반응이 없는 엄마를 지켜보며 나는 애가 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검붉은 이물질을 토해냈다. 이미 구급차 안에서 비슷한 것을 두 차례나 토했기에, 나는 피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당황한 나는 황급히 의사와 간호사를 불렀지만, 그들은 사진을 먼저 찍어야 한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내가 ‘어떻게, 어떻게’라며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 오빠가 도착했다. 적잖이 오빠도 놀란 기색이었다. 혼자서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하던 나는 오빠를 보니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간단하게 오빠에게 집에서 119를 부르고 병원에 오기까지, 그리고 조금 전 상황까지를 서둘러 설명했다. 사진을 찍고, 의사와 면담을 하고, 차트를 작성하고 지금부터의 상황은 오빠에게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가 내 목소리와 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엄마가 너무 놀라지 않기를 조금이나마 안정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나는 ‘엄마’를 부르며 엄마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정작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이었고 당황한 것도 나 자신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두려움은 거침없이 나를 향해 돌진해 왔고, 나는 조금씩 그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한참을 지나서야 엄마는 CT실로 옮겨져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응급실로 왔지만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몇 가지 검사와 사진을 더 찍고 나서야 간호사들은 번갈아 가며 엄마의 팔에 몇 번의 주사위를 꽂아 혈액을 채취하고, 주사를 놓고, 링거를 달았다. 끊임없이 깜박거리면서 삐-삐- 소리를 내는 기계가 긴 줄로 엄마와 연결된 채 머리맡에 있었다. 알 수 없는 선들이 쉴 새 없이 파동을 그리며 나아갔고, 각기 다른 숫자들이 깜빡이며 연신 다른 숫자로 변화했다. 


간호사는 20~30분 간격으로 체온과 혈압을 체크하고, 주사기로 연신 무엇인지 모를 약물을 엄마의 혈관에 주입시켰다. 간호사와 함께 엄마의 옷을 벗기고 환자복으로 갈아입히고, 주삿바늘을 꼽고, 소변 줄을 넣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엄마를 부르고, 들추고, 만지고, 오고 갔는데도 엄마는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았다. 이 소란스럽고 낯선 사람이 우글거리는 공간에서도 엄마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집이 아닌 낯선 공간,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와 낯가림이 심해 얼른 집에 가자고, 몇 번이고 나를 재촉했을 엄마였다.


엄마의 숨소리는 거칠었고, 간간히 끈끈하면서 검은 이물질을 불규칙적으로 토해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숨을 더욱 세차게 몰아쉬었고,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다.

구토가 사라지면 거칠게 몰아쉬던 엄마의 숨도 조금은 잔잔해졌다. 엄마의 입과 옷, 침상에 흘러내린 토사물을 치우고, 얼굴을 닦아주고, 엄마의 숨이 잔잔해지고, 다시 구토가 시작되고, 숨이 가빠지고 밤새 같은 증상이 반복되었다. 나는 이런 엄마를 바라보는 것이 태풍 앞에 선 촛불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 보호자님!’

‘*** 보호자님!’


우리를 찾는 목소리가 응급실에 울려 퍼졌다. 오빠와 나는 동시에 ‘네’라고 대답을 하며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흰 가운을 입는 젊은 남성이 보호자임을 재차 확인한 후,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더니, 사진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뇌출혈입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얼마 동안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젊은 남자 의사는 컴퓨터 화면에 촬영한 뇌 사진이라며, 각기 다른 모양의 사진들을 여러 장 보여주며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고, 오빠는 무엇인가를 묻고 그는 다시 설명하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뇌출혈’이란 말과 ‘이대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라는 말 이외는 잘 들리지도 집중도 되지 않았다. 설명을 듣고 엄마에게 다가가 얼굴을 마주하니 왈칵 눈물이 솟았다. 이젠 정말 엄마가 내 곁을 떠나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밤새 엄마 곁에서 노심초사하고 있는 나를 보고 오빠는 저쪽으로 가서 조금 쉬라고 권했다. 자신이 엄마를 지켜보겠다며 나를 안정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재차 권하는 오빠의 권유에 나는 마음을 좀 가라앉히려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로 향하는 벽면의 시계가 새벽 3시를 조금 넘고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의식이 없다.

간호사들이 수시로 오고 가고, 엄마의 몸에 부착된 여러 개의 센서를 통해 현재 상태를 체크하고, 수치를 낮추어야 한다며 다시 약물을 투입한다. 약물이 수액과 함께 줄을 타고 엄마의 혈관으로 들어간다. 다시 수치가 내려가고 엄마의 숨은 조금 편안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도 엄마는 다시 구토를 하고, 숨이 가빠지고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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