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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 Aug 17. 2022

9. 경력으로도 못 적는 20일

흔한 출판 편집자 이야기 2

https://brunch.co.kr/@liketansan/10

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퇴사하고, 한동안 집에만 있었던 것 같다.

집에 있는 시간이 그렇게 소중하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느꼈다. 1인당 단가가 3천 원이 될까 말까 한 구내식당의 식사는 애초부터 만족할 수 있는 끼니를 제공할 수가 없었다. 1년을 넘기기 전 매번 집에서 먹는 밥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점심은 그저 살기 위해 먹는 밥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퇴사하고 보니 달랐다. 그사이 나는 집에서 돈가스를 직접 튀겨 보기도 하고, 게살 크로켓을, 돌솥밥을 만들면서 요리의 기초를 다져가고 있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집에서 매끼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집 근처를 돌아다닐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에 퇴사 후에는 산책하러 다니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당시 살던 곳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추웠다. 유럽 어디 번화가에서 벗어난 뒷골목 같다는 평을 듣는 동네였지만 사람이 적어 한적한 동네 탐방을 할 수 있어 좋았다. 포켓몬고가 막 뜨던 때라 스마트폰을 들고 공원을 떠돌기도 했다. 아이폰은 나보다 한겨울 추위를 버티기 힘들었는지 60% 넘게 남아있던 배터리가 갑자기 나가곤 했다.


집에서 10분 내외 거리에 빵집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는 갓 구운 크루아상에 홀그레인 머스타드 소스를 넣고 양상추를 듬뿍 넣은 뒤에 햄과 치즈를 올려낸 샌드위치가, 4천 원쯤 했다. 처음 샌드위치를 맛본 후에 나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샌드위치를 먹으러 갔다. 씻고 나갈 준비를 마친 이후에 샌드위치를 사 산책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오는 일정. 그 단순한 일과가 내게는 그 현실을 버티게 하는 루틴이었다.


다른 회사에 입사 지원을 하긴 했다. 최대한 빠르게 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퇴사 3개월이 넘어갈 즈음까지 열심히 이력서를 넣었다. 면접도 몇 군데 보러 갔다. 어쨌거나 첫 회사의 악명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버텼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불러본 게 아닐까 싶다.


A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퇴사한 곳과 결이 맞는 곳이라 별생각 없었는데, 이곳의 면접은 무난하게 끝냈으나 더 연락오는 일은 없었다. 


B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그때도 파주에서 곧 서울로 이사 갈 거라고 하던 B사는 지금도 여전히 파주 출판단지에 남아 있으나 여전히 면접자들에게 얼마 후에 서울로 갈 수도 있는데 괜찮냐고 묻는다고 한다(확인 결과 여전히 파주에 있다 ^^).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책 제목과 목표 판매 부수가 적혀 있는 보드가 눈에 들어왔다(보드가 인상 깊었던 건, 그때 적혔던 제목의 도서들이 목표부수만큼 팔리는지를 면접 후, 출간된 후에 온라인서점을 보고 가늠해 봤는데 절대 그 목표치를 채운 도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ㅎㅎ).


당시 영업자분께서는 날 좋게 봐주신 듯했는데, 편집장은 날 아무 능력 없는 사람으로 봤다. 


"탄산 씨, 이래 가지고는 아무 데도 못 가요."


1:1로 행해진 편집장과의 면접에서 그는 내게 편집자로서의 능력이 아무것도 없으며 깎아내리다 못해, 널 붙인다고 하더라도 기존에 받던 연봉은 절대 줄 수 없고,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므로 우리가 널 교육해 주는 꼴이 될 거라고 했다.


부족한 점이 없다고는 못 하겠다. 3년을 막 넘긴 조무래기 편집자가 뭘 알겠는가(3년밖에 안 되었어도, 해 본 적이 없더라도 구체적으로 꿈꾸는 바가 있다면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과 비교하면 기획의 ㄱ도 몰랐다). 거기에 기획이라고는 손을 대본 적도 없고, 구체적으로 편집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다. 그러니 편집장이 그렇게 말한 것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지난 3년이 아무 쓸모도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적어도 혼자서 교정 교열을 익혀 문장을 맞춤법에 맞게 뜯어고치는 데까지는 편집자의 일부분으로서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첫 회사에 남아 있어서 더 배울 게 없었다는 건 그때도, 지금도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퇴사해야 했고, 이직해야 했다. 그냥 뽑기 싫으면 별말 하지 말고 보내지. 왜 그렇게 나를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 난 편집장이었던 건지 지금도 의문이다. 


면접 후에 소감을 적는 난이 있었다. 나는 편집장의 말을 들으면서 붙어도 절대 오지 말자고 생각했다. 아무리 내가 부족했다고 한들, 지원자를 깎아내리는 데 급급한 회사는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또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도 뻔했다. 소중한 말씀들 감사하다고 적고 나왔지만, 그 글을 적는 내 손은 왼손으로 글을 쓰는 것처럼 떨렸었다. 이 면접은 내 기억 속 최악으로 남았다(최악 of 최악은 후에 더 ^^).


퇴사 후, 1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어렵사리 마포 부근의 C출판사에 입사하게 됐다. 연봉도 그럭저럭 줄 수 있는 곳 같았다. 규모는 작았지만, 위치가 괜찮아 만족하고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파주에 있던 월셋집은 계약을 청산하고 망원에 자리를 잡았다. 10평 정도 되던 1.5룸에서 4평이 간신히 넘는 곳으로 이사 오면서 방 안에 가득하던 책들은 모두 본가로 옮겨 갔다.


부푼 마음을 안고 C사로 출근을 시작했다.

사장님 멋대로 굴러가는 회사라는 것은 익히 면접 때부터 느낌이 왔다. 사무실이 비좁았는데 면접은 직원들이 근무하는 책상 바로 옆에서 행해졌고, 모든 직원들 앞에서 사장은 내 희망 연봉을 제시했다. 그것도 13분의 1로. '저는 그러면 이 회사 안 옵니다'라는 말에 그럼 퇴직금은 별도에, 그 연봉으로 하자며 협상을 끝냈다.


그런데 출근을 하고 보니 가관이었다. 사장 자리에서 모든 직원을 감시할 수 있는 배치인 것은 둘째 치고, 첫 회사의 냄새꼬는 비교도 못 할 냄새꼬2가 있었다. D대학원에 재학 중이라던 상사는 술자리에서 자신이 일주일 넘게 빨지 않은 속옷을 입고 다녔다는 것을 자랑으로 말하는 사람이었고, 그 사람이 옆에 오기만 해도 정말  심각한 악취가 났다. 그러니까 첫 회사의 냄새꼬는 그냥 씻어도 냄새가 나는 어쩔 수 없는 경우였다면, 냄새꼬2는 그냥 안 씻어서 냄새가 나는 사람이었다. 우웨엑(2D 행사 집결 시에 씻는 법을 설명해 줬다던 DC갤 짤이 생각났다. 다수의 현실과 다르게 안 씻는 사람, 샤워할 줄도 모르는 사람, 귀 뒤를 왜 씻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는 반증이었다)...


점심시간, 사장님이 전 직원을 데리고 중국집에 갔다. 식사하면서 전 편집장의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이 참 괜찮았지'라며 회상하는 모습에 뭐 괜찮으신 분이었나 보다~ 가볍게 넘어갔는데, 실상은 참 놀라웠다. C사의 총무/일반 쪽은 사장의 아내가 담당하고 있었다. 사장 바로 옆에서 아내가 근무하고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사장과 전 편집장은 불륜 관계였다고 한다. 전 편집장이 다툼으로 인해 회사를 나가면서 밑에 편집자들을 모두 데리고 나갔다는 사실까지. 모든 게 전해 들은 카더라기 때문에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사장이 평소에 하는 언행을 지켜보면 나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정상으로 보이는 다른 상사분께서 내게 왜 여기 들어 왔냐고 물었다. 빨리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과 함께. 어지간하면 다니려고 했는데, 당시 총무 쪽에 있던 알바생들도 곧 그만둘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갈등에 빠졌다. 1년을 쉬면서 힘들게 구한 일자리였는데, 아무리 봐도 사장도, 상사도 이상한 사람들뿐이다. 직접적으로 작업을 같이할 디자이너 역시 탈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했다. 이곳은 기본적인 모든 것이 통하지 않는 회사구나. 근로 계약서를 쓰면서도 또 13분의 1을 이야기하기에 그 조건이면 여기 다니지 않을 것이라 이미 말씀드렸다고 정정해 주었다. 어차피 곧 찢어버릴지도 모르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됐다.


계속해서 퇴사 고민이 더해 가던, 근무 20일쯤 되었을 때였다. 


사장은 몇 주 뒤에 당신 동생 결혼식이 있으니 와서 밥이나 먹고 가라는 이야기를 했다. 축의금은 안 내도 괜찮다고도 말했다. 듣자마자 달력을 확인해 보니, 그날은 이미 한 달도 더 전에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둔 날이었다. 


"저는 개인 일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요. 알려주시면 축의금만 따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 발언이 문제였다. 사장은 당장 말이 없다가 갑자기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무실 그 자리에 앉은 채 그대로 오전 시간이 다 가도록 사장이 오라면 와야지 어딜 토를 다느냐부터 시작해 별별 소리를 다 들었다. 쌍욕만 안 했을 뿐이지, 몇 번이나 책상에 머리를 박게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막상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미친 놈이 떠드는구나 하고 넘겼다. 


그날 점심. 모두가 점심 먹으러 사라진 그때, 혼자 도시락을 먹던 나는 사무실에서 펑펑 울었다. 눈물이 줄줄 났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부모님께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는데, 온 지 한 달도 안 된 회사를 그만둔다는 게 분했다. 이것도 못 버티냐고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지만, 살기 위한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그날 바로 퇴사를 결심했다. 


도시락을 먹은 후 그간 했던 업무와 전달 사항, 인수인계서 작성을 끝냈다. 오후 근무를 마치고, 사장에게 잠시 이야기 괜찮으시냐고 묻고, '인수인계사항은 바탕화면 문서에 다 정리해 두었고, 저는 내일부터 나오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장은 왜 그러냐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흔하다는 듯. 그러나 화는 억누른 것처럼 별 말 없이 가 보라고 했다. 달이 넘어가고 20일 가까이 일한 금액이 통장에 들어왔다. 앞날에 대한 불안은 여전했지만, 그럼에도 첫 회사에서처럼 죽고 싶어지는 병을 얻고 싶지는 않았다.


자세히 적지는 않았지만, 이때 나와 비슷하게 들어온 신입이면서 과장이신 분이 사장라인의 줄을 타겠다고 내 마지막 퇴사 인사 등을 씹는 등 여러 사건이 있고 이후 북 에디터 공고란에서 댓글과 대댓글 등 난리가 난 건도 있지만 이 글에서 C사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겠다. 아무튼 이곳 역시 한두 가지 문제가 아니었단 말이다.


그나마 정상이었던 상사분이 다닐 회사를 알아봐 주겠노라 하셨지만, 그 말은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분이 일자리를 물어다 주는 일은 없었다(그리고 그만둘 때마다 늘 이분은 알아봐주겠다고 하시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 


이쯤 되면 내가 회사 보는 눈이 높아졌나 싶겠지만, 그냥 워라밸을 잘 지키고, 기획을 해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첫 회사만큼은 안 되더라도 적당한 연봉을 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시 백수의 길로 들어서면서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강의를 들었다. 내 안에 텅 빈 무언가가 채워지진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한 달도 안 다닌 그곳에서 퇴사한 것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계속 다녔다면 이번에야말로 '마포구 자취방에서 시신 발견돼...' 같은 기사의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르니까.


여전히 출판업계에는 지금(2022년 8월)까지도 최저임금을 논하면서도 야근이 당연하고, 21일만에 책을 만드는 것을, 또 편집자를 갈아넣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장님들이 많다(https://www.facebook.com/100001948265585/posts/pfbid02kFLDgTh9FhXt73ARewvuC7ZcAyvwX69Y9TzexvTsQXR13XA4XA8msxe124MhaL75l/?d=n). 근로자인 직원뿐만 아니라 작가님들도 이러한 출판 프로세스의 문제를 잘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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