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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 Aug 25. 2022

10. 각자의 기준

우리 모두 제각기 다른 사람



담당 도서의 제목을 고민하다가 발견한 단어. 

흙수저.


-선생님 그런데 여쭤볼 것이 있어요. 본문에서 자신이 흙수저라는 단어를 쓰셨는데, 혹시 대학교 진학부터 장학금을 받고 지원했거나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부모님의 지원 없이 생활비를 전부 다 스스로 충당해서 사용하신 걸까요?


이 질문에 선생님은 그렇게 치자면 완전한 흙수저는 아니라는 답변을 보내셨다.


-장학금은 선생님이 해내신 거니까 상관없지만, 단어 사용에 있어 조심스러워 여쭤보았어요.


'흙수저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가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당장 인터넷서점에 들어갔다. 자주 가는 인터넷서점에 검색해 보니 흙수저라고 검색해 나오는 도서는 적은 편이었다. 거기다 판매량은 전부 다 저조했다. 분명 한때 유행처럼 쓰였던 단어인데 왜일까.


흙수저. 인터넷 서점에서 이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책들을 찾아봤다. 판매가 저조하다. 이 단어의 책이 잘 나가지 않는 건 아마 흙수저의 기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겠지. 보유 자산이 얼마 이상이면 금수저, 집과 차가 있으면 은수저라는 명확하게 수치화된 기준은 없다. 자신을 보통 수저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더라도 주변의 평가는 흙이거나 금이거나 다이아몬드일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으니까. 


앞서 언급했던 대화에서 선생님은 자신 정도면 흙수저라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흙수저의 정의에 대해 살펴보고 싶었다. 부모에게서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이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해내야 하는 사람. 그와 관련된 수저 계급론. 일단 사람을 계급으로 나눈다는 것부터 물음표를 띄우게 만든다. 이 단어 자체가 그렇게 좋은 의미로 쓰이진 않았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흙수저에 대한 기준이 저마다 다르듯, 각자 생각하는 기준은 모두 다르다. 


미인을 생각하는 기준이 모두 다르듯이. 누군가는 아이돌을 보고 예쁘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은 예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멋있다는 것도 마찬가지. 미남의 대명사로 대표될 만한 사람들의 이름을 대더라도 한 명쯤은 미의 기준에 어긋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의 매력이라는 것이 한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미의 기준은 모두 다르니까.


미의 기준이 과학의 영역에서 봐야 하는 일이라면 나는 이걸 사회심리학적 영역의 일이라고 본다. 역사책에서 흔히 접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을 보면 다산을 기원하는 조각으로 알려져 있는데, 선사 시대에는 인구의 부족으로 아이를 많이 낳아 노동력을 확충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으니 다들 이견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인구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미 세상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있으니까. 그래서 미의 기준은 변했다. 얼굴은 갸름하고 허리는 마르고 피부는 백옥같아야 하는 등 동서양에 따른 미적 기준은 조금씩 다른 편이지만, 대중화된 대략적인 미의 기준은 다수가 공감할 테니까. 


솔직히 난 타인의 외모가 어떻든 관심 없다. 내가 평생 같이 살 사람도 아닌데 잘생기든 못생기든 뭐가 문제인가. 자고 일어나서 봤을 때 식겁할 얼굴이 아니라면 그러려니 넘긴다. 그리고 못생겨서 혐오감을 조성하는 사람인가? 설령 못생겼다고 느낀들 못생긴 사람 앞에서 '당신이 너무 못 생겨서 제가 불쾌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예의를 다한 셈이다. 그러니 매일같이 마주치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위생이나 예의의 문제일 경우에도 언급하는 것은 좋다. 라떼 타령만 안 하면 된다).


맛집 이야기를 하며 설명했던 것처럼 맛의 기준 역시 다르다. 식사가 귀찮은 사람은 대충 알약 하나만 먹으면 영양 밸런스와 포만감, 맛 모두를 잡는 식품이 개발되기를 바라지만, 애써 요리에 들이는 노력과 시간 모든 것이 합쳐서 그 맛을 이룬다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떤 것은 너무 짜고 달고 맵고 쓰고 등등 우리의 오감이 느끼는 모든 것이 합쳐져 의식주 중 하나인 식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낸다는 게 너무 신기한 일 아닌가.


하물며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일정표를 작성하며 계획에 맞춰 일을 착착 진행해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일정표 하나 없이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면서부터 필요한 건 더 넣고 뺄 건 빼면서 흐르는 대로 진행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 좋거나 나쁘거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기준이 다르듯 일하는 방식 역시 커다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우물 안 개구리기 때문에 자기가 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대뜸 내가 자동차산업이나 화장품 산업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듯, 자기가 아는 분야만 말하게 된다. 바로 위 문단에서 일하는 예시를 적을 때도 나는 기획과 원고 입고 후 교정, 편집의 단계를 생각하며 설명했으나 읽은 독자들은 각자 자신의 상황에 맞춰 맥락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아는 분야만 이야기할 테고, 모르는 분야는 입을 다물고 경청하게 된다. 그렇다면 타인 역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가 바라보는 세계는 크게는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작게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달라질 수도 있다. 이를 테면 학교에서 배우는 기초적인 지식들이나, 한 권의 책에서 마음에 꽂힌 한 문장이나, 인터넷 검색 중에 본 어떤 사진 하나나 부모님의 말 한마디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기준을 인정하고,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된다. 


'쟤는 왜 저렇게 생각하지? 내가 고쳐 줘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인생이 피곤해진다. 사회에 저촉되는 행위나 윤리적으로 어긋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내 기준과 그의 기준이 다른데 뭣 하러 힘을 뺄 필요가 있을까? 상호 이해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그와 나의 의식이 대화를 통해 풀어낼 만큼 비슷한 수준에 있거나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바쁘고 바쁜 현대 사회에서 남에게 굳이 열을 올릴 필요가 있을까? 나는 나고, 당신은 당신이니 우리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서로에게 친절합시다.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난 범법과 범죄라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 어떤 처벌도 피해자에게 그 어떤 보상도 되지 못한다 여기기 때문에 확실한 증거가 있는 이상 성범죄자 가중처벌, 사형제 부활 찬성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다고 검찰이나 경찰에 절대적인 수사권이나 힘을 줘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너무나 솜방망이로 여겨지고, 가해자의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천차만별로 바뀌는 판결을 보고 있자면 한국은 구조부터가 다 썩어 빠진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기괴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게 광복 이후 의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가운데서 이룩한 급격한 사회 발전 때문이라고 봐야 할까? 기득권층이 손에 쥔 힘을 놓을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최근 감빵인도자라는 유튜브 채널(https://url.kr/5l2gw3)이 인기를 얻고 있다. 몰카를 찍는 범죄자들의 증거 영상을 확보한 뒤, 경찰에 이를 신고하는 유튜브인데. 사회가 단속해야 할 제구실을 하지 못해 개인이 나설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이 참 통탄스럽다. 적어도 이러한 범죄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개개인의 기준을 들이밀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교양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채널의 영상들을 훑어보면 강남, 홍대 등 누구나가 잘 아는 번화가가 자주 등장한다.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거리에 몰카를 찍는 범죄자가 그만큼 많이 출몰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잡은 몰카범이 이 정도니 실제로 잡히지 않은 채 오늘도 몰카를 찍고 있을 범죄자들은 얼마나 많을지를 생각하면 현실이 조금은 끔찍해진다. 이 채널을 보면서도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감빵인도자가 여성이었다면 잡자마자 '형님 죄송해요'가 아니라 '안 찍었다고, XXX아' 같은 쌍욕이 나올 게 뻔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덩치만 봐도 다 안다. 이 사람을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지 아닌지.


위험을 무릅쓰고 이러한 콘텐츠를 만들어주는 감빵인도자님께 감사함과 동시에 사회적 제도가 아직 이렇게 부족하구나에 더해 여자라면 꿈도 못 꿀 컨텐츠였다는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최근 유튜브 코리아 직원이 이 채널의 영상에 노딱을 붙였다고 한다. 노딱이 되면 유튜브 알고리즘에 추천이 뜨지 않게 되고 수익 창출 역시 막힌다고 한다. 유튜브 코리아 직원이 몰카범 혹은 몰카범이 찍은 영상을 계속해서 보고 싶은 사람 아닌지 의문이 드는 행동이다. 불법 촬영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면 직원 한 명 한 명이 전부 훑어보고 체크한다면서 몰카범 잡는 사람에게 노딱을 붙인 과정 자체도 의문이고...


범법 행위에 대해 너무나 열이 받아 좀 길어졌다. ^^; 


기준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심심한 사과'를 쓸데없는 한자 남용으로 봐야 하는가, 깻잎 논쟁 등과 같이 사안에 따라 모두의 기준은 모두 다르다. 그러니 늘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면서 세계의 폭을 넓혀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심심한 사과의 경우 관용구를 모르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알려줬을 때도 '그런 말을 왜 쓰냐며 화를 내는 부분'이 문제며, 깻잎 논쟁은 관계에 얽힌 문제이므로 사람들의 관계성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하지 누가 옳다 그르다로 나눌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여담.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배우 정우성 씨를 본 적이 있다. 유니세프 관련 도서 출간이었고, 부스 앞으로 지나가기에 영상을 찍으면서 그를 봤던 적이 있는데. 정말. 다른 사람과는 다른 아우라가 느껴졌다. 그야말로 빛이 났다. 정우성 씨를 보고 한 사흘 정도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다른 사람이 잘생긴 게 내가 이렇게 기분 좋을 일이야?', '연예인은 이런 거구나'를 느낀 경험이 아직도 인상 깊고, 청담 배트맨으로 불렸던 행보와 최근의 근황까지 보면 내면도, 외면도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실제로 대화해 본 적이 없으니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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