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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환 Mar 26. 2021

에피쿠로스의 모순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주장의 모순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믿음에 익숙해져라. 왜냐하면 모든 좋고 나쁨은 감각에 달려 있는데, 죽음은 감각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올바르게 알게 되면 가사성(可死性)도 즐겁게 된다. 이것은 그러한 앎이 우리에게 무한한 시간의 삶을 보태어주기 때문이 아니라, 불멸에 대한 갈망을 제거시켜주기 때문이다.

- 에피쿠로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에피쿠로스는 인간이 느끼는 좋음과 나쁨은 순전히 감각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좋은 감각을 통해 좋음을 느끼고, 나쁜 감각을 통해 나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피쿠로스의 인식론에서 감각은 인식의 시작이자 끝이다. [1]

따라서 그에 따르면 감각되지 않은 것은 인식할 수 없다. 그런데 죽음은 감각의 상실이고, 결국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에피쿠로스의 주장이다.

그런데 감각의 상실은 감각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감각의 상실, 곧 죽음에 관해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런데 그는 죽음에 관해 무언가 알 수 있다는 양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사상에 따르면 무언가가 아무것도 아닌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기 위해선 일단 그것을 감각해야 한다. 따라서 죽음에 관한 그의 주장에는 모순이 있다.

이러한 고찰은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현대인 중 사후 세계를 설명하는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그에 따라 에피쿠로스처럼 죽음을 단순한 감각의 해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런데 이러한 고찰은 그들의 생각이 참이라고 할지라도,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단언에 의문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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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병희(Byeong Hee Cho). "에피쿠로스학파의 방법론." 哲學硏究 0.101 (2013): p.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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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35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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