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이 없어 더 훌륭한 요리
남편은 1남 1녀 중 장남이고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있다. 나는 1남 2녀 중 장녀이고 여동생과는 두 살 터, 남동생과는 일곱 살 터울이 난다. 나의 여동생과 시누이는 유치원부터 초중고대학까지 함께 다닌 사이인데 우리가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둘은 실컷 웃었다고 했다. 놀라울 것이 없어 웃기도 했겠지만 너무 오랜 시간 우리 부부만큼이나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들이 사돈이 된다 하니 웃음이 나올 법도 하다.
시누이는 시어머니를 닮아 말수가 적고 얌전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몹시 무르거나 순하기만 한 성격은 아닌데 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뚝심이 제법 있는 편이다. 어린 시절부터 잘 알아 온 친구의 언니가 올케가 되었지만 시누이는 나에게 늘 같은 모습이다. 편하다면 편하고 불편하다면 얼마든지 불편할 수 있겠지만 다행히 우리 사이는 적절한 편함으로 서로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다.
남편의 발령으로 10년 만에 거주지를 옮기면서 시누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앞 단지로 이사를 왔는데 지인들은 내게 불편하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왜 불편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시부모님 입장에서는 자식들이 가까이 모여 살게 되었으니 좋으실 것이고 아이들은 고모네 가족과 가까워졌다면 좋아했다.
이사오기 전까지 시누이는 내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그녀의 성격상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면 전달하지 않기 때문에 가끔은 내가 궁금해서 못 견디고 연락을 먼저 하곤 했다. 내가 시누이에게 고마운 점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을 끔찍하게 사랑해 준 점이다. 아이들은 지금도 고모와 고모부라고 하면 항상 반가워하고 좋아하는데 아마 받은 사랑을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일 것 같다.
내가 첫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을 때 시누이가 조리원으로 복숭아를 보내왔다. 정말 신생아 머리 크기만큼이나 크고 탐스러운 복숭아였는데 친해진 조리원 동기 몇몇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때 그 복숭아 이야기를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야기는 사람이 여럿이다. 정말 그렇게 맛있고 좋은 복숭아는 처음 봤다면서 더군다나 시누이가 올케 조리원에 그걸 보낼 생각을 하다니 정말이지 시누올케 사이가 돈독한 것 같다면서 부러워했다.
아이의 백일부터 돌, 매년 생일이며 어린이날 크리스마스까지 아무리 고모라지만 그렇게 잘 챙길 수 있을까 싶게 아이들을 잘 챙겼다. 우리보다 2년 늦게 결혼해 생긴 아이들의 고모부 역시 정말 좋은 사람이라 처조카임에도 살뜰히 돌봐주고 만날 때마다 잘 놀아주니 아이들은 고모부와의 만남을 늘 기다린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라는 속담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의 시누이 생각을 한다. 시누이인지 그냥 새로 생긴 동생인지 모를 정도로 나에게 참 좋은 사람인 그녀는 아마 오빠가 다른 누군가와 결혼을 했더라도 그렇게 좋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싶다. 배려심이 깊고 행동이나 언행에 가식이 없는 그녀의 성격이 참 좋다. 나에게 굳이 살갑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그 솔직함이 나를 편하게 해 준다. 10년을 지내다 보니 이젠 정말 가까워져서 둘이 이런저런 속이야기도 잘하고 종종 데이트도 한다. 4살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고 곧 만날 쌍둥이 자매를 품은 나의 시누이에게 내가 늘 하는 말은 같다.
“자식 적당히 공들여 키우고 우리는 나이 들면 넷이 놀자. 오빠랑 나랑 고모부랑 아가씨랑 넷이서 여행도 다니고 즐겁게 사는 거야. 솔직히 나이 들어서 부부 둘이 다니는 것도 한계가 있대. 그러니까 우리 넷이 놀러 다니다가 또 내 동생네 불러서도 만나고 그렇게 멋지게 나이 들어가자.”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진심이다. 나중에 먼 훗날 부모님 돌아가시고 우리가 지금 부모님 나이가 되면 결국 남는 것은 형제다. 핏줄이 밉고도 좋은 이유는 한 부모 아래 함께 나고 자란 세월 속에서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있고 바탕이 같다는 것이다. 나이 들고 노년의 삶에 접어들면 시누이 부부와 함께 어떤 날은 캠핑장으로 또 어떤 날은 유적지로 또 어떤 날은 전혀 가 본 적 없는 낯선 도시로 떠나 하하 호호 웃으며 재미있게 지내다 오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시누질하지 않는 시누이를 만나 편하게 살고 있는 것도 시어머니를 잘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품성이 곧고 바른 엄마 밑에서 좋은 것 보고 배운 사람답게 나의 시누이도 좋은 사람이라 감사하다. 만약 시어머니와 다른 품성이거나 성향이었으면 오빠인 참 좋아 씨가 가만있었을 리도 없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시누이를 누가 말렸겠는가.(세상에는 의외로 엄마를 닮지 않은 딸들이 많다. 엄마가 아무리 가르쳐도 결국 제 멋대로 살고야 마는 딸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고 시누이 모드를 장전하여 작정하고 올케와 치열하게 붙어 시월드의 매운맛을 시전 하게 된다.) 나는 이 모든 만남이 시부모님의 인품에 흠이 없고 착하게 살아오신 삶으로 인해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온순하지 않은 성격의 올케와 유순하지 않은 성격의 시누이가 만나 조용하게 지냈을 리 만무하다.
결혼하고 또 한 가지 놀란 사실은 시이모님들 역시 몹시 쿨하신 분들이라는 사실이다. 나보다 먼저 결혼했던 친구들 중에 시댁과의 갈등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인물은 시이모님이었다. 시어머니의 자매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참견하고 겉으로는 위해준다지만 결정적인 갈등의 화근을 만들어 문제를 제공하는 캐릭터로 많이 등장하곤 했다. 물론 전국의 많은 시이모님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도 자매가 있기에 잘 알고 있다. 자매는 어려서는 죽어라 싸우고 커서 철이 들면 가장 좋은 친구가 된다. 그러다 결혼을 해 살면서 서로에게 그렇게 애틋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러다 보니 시어머니가 되고 시이모가 되면 내 자매의 속사정이나 애로사항을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결의를 다지게 되고 결국 선을 넘는 일까지 만들어 내기도 한다. 시집살이를 부추기는 역할에 빠지지 않는 단골로 등장한 시이모님 이야기를 잔뜩 들어놔서 나 역시 사실 긴장한 것은 맞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나의 시이모님들은 쿨해도 너무 쿨하시다. 시어머니는 2남 3녀 중 셋째 딸이신데 위로 오빠와 언니, 아래로는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다. 큰 이모님은 같은 동네에 사셨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나를 오랜 시간 봐 오신 분이고 나는 아직도 이모님의 두 아들을 지칭할 때 나도 모르게 ‘오빠’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작은 이모님은 결혼하고 처음 뵈었는데 아들을 셋이나 키우시는 정말 내겐 넘볼 수 없는 대단함의 결정체였다. 두 이모님 모두 우리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고 가족 행사 때 만나면 반갑게 맞아주신다. 아이들의 첫 돌과 같은 기념적인 날에는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시어머니 편에 봉투도 전달해 주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결혼하고 10년을 살면서 나는 우리 부부나 고부간에 시이모님이 등장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시어머니와 자매들의 사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시부모님과 시이모님 부부는 어른들끼리 만남을 갖고 친목을 도모하시지 자식들을 부르거나 하시지 않는다. 내가 맞이하고 싶은 미래의 모습을 이미 지금 현실적으로 이루고 계신 것이다. 각 가정의 자녀가 장성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게 되어 새로운 가족을 맞이해도 철저하게 그들의 독립된 영역을 지켜주는 것, 집안의 어른으로서 환영해 주시고 예뻐해 주시돼 선을 지킬 줄 아는 쿨함을 지니신 분들이 나의 시이모님 들이다. 자매는 닮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로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며 나이 들어가는 시어머니와 시이모님 들을 보면서 나도 나의 자매님과 훗날 정말 쿨하게 나이들 수 있길 기원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하고 때론 무섭기까지 한 시댁의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매년 여러 명의 시이모네 김장까지 해서 보내준다는 시어머니 이야기
-시누이가 애를 낳았으니 며느리인 네가 와서 산바라지를 해 줬으면 한다는 시어머니 이야기-시이모의 며느리의 동생이 결혼을 하니 식장에 같이 가서 얼굴을 비추라는 시어머니 이야기
-시누이가 집을 장만해야 하니 좀 더 버는 너희가 대출을 받아 보태라는 시어머니 이야기
까지 소설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다양하고 광활한 스케일의 시짜 이야기는 하루에도 수 없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오르내리거나 지인들의 가십거리에 등장한다.
가끔 그런 이야기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다 보면 정말 그런 시댁이 있을까? 하는 의문까지 드는데 슬프게도 대부분 사실이라 충격은 더욱 크다. (반대로 처가의 가족들로 인해 마음 앓이를 하는 남자들도 제법 많다고 알고 있다.) 결혼이라는 것이 개인의 만남이 아니라 가족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확장된 만남이라고는 하지만 결혼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문제가 아닌 주변의 상황이나 특정 인물에 의해 갈등하게 되는 것은 비극이 아닐까?
결혼을 요리라고 가정하면 좋은 재료만 있어도 충분하다. 재료 자체가 훌륭한데 더 이상의 양념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 화려하고 좋은 맛을 내기 위해 섣부르게 곁들인 양념이 결국은 재료도 망치고 요리도 망치게 되어 비극을 맞는다.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당사자는 부부 둘이 되어야 하며 그다음으로는 키워주신 부모님이면 충분하다.
일단 그 여섯 사람이 좋은 재료로 만나야 좋은 요리가 형성되는 기본이 시작된다. 재료가 좋지 않은데 아무리 양념이 훌륭한들 결국은 탄로 나게 되어있고 반대로 재료가 좋다 한들 불필요한 양념이 첨가되면 그 역시 좋은 평가를 받기는 힘들다. 모두에게 가장 좋은 그림은 훌륭한 재료와 그에 어울리는 적절한 양념이면 된다. 그것이 최상의 그림이자 완벽한 요리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어디선가 시부모님이 아닌 시누이나 시이모 혹은 다른 시댁의 가족들로 인해 힘들어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정말로 신경 써야 할 것은 당신 자신이라고. 남편과 행복하기 위해 결혼했는데 정말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면 일단은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 보되 너무 자신을 깎아내리거나 무조건 순응하고 받아주는 것은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상하 관계란 없다. 시댁이라 할지라도 남편의 혈육인 시누이는 나와 동등한 위치이고 시이모님은 시어머니가 아니다. 괜한 일에 마음을 다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정말 중요한 당신과 남편, 그리고 양가부모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당신이 되길 바란다.
더불어 이야기하자면 나는 곧 시누이가 된다. 우리 엄마의 막내아들이자 두 누나들의 귀염둥이를 담당했던(본인이 이 글을 보면 소름 끼쳐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귀염둥이는 이제 마지막이니 적는다) 남동생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 나는 그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친정에 새로운 가족으로 맞이하게 되는 예비 올케를 환영한다. 그런데 나도 딱 거기까지다. 둘의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하지만 그 어떤 양념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동생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성인이 된 두 사람이 결혼 생활을 즐겁고 행복하게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혹시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면서 잘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동생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기에 그 외의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일곱 살 터울이라 어려서부터 일일이 하나하나 챙겨가며 키우다시피 한 동생이지만 나이 서른이 넘고 이제 곧 결혼을 앞둔 그는 더 이상 일곱 살 꼬마가 아니기에 묵묵히 응원해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혹자는 내가 다른 집 시누이 일곱 명의 몫은 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엄마 아빠를 대신해서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야무진 큰딸답게 매사에 직접 나서서 잡음 없이 일을 처리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만큼 나는 깐깐하고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인정한다. 그런데 결혼이 나를 바꾸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통해 정말로 사랑한다면 상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남동생의 행복을 바란다면 앞뒤 분간 없이 나서서 따지고 캐묻고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 원칙이다. 친정 부모의 대변인도 아니고 어울리지 않는 꼰대놀이도 하지 않아야 한다. 나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 형제, 자매가 지켜야 할 매너이다.
양념이 되기를 원하는 자, 그 마음 접어 넣어두고 당장 내 인생에서 내가 챙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 부부와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일을 먼저 염두에 두기 바란다. 누구도 당신의 인생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 어설프게 문제를 해결해 준답시고 나섰다가는 정말 쓸모없이 뿌려진 양념이 되어 비난받게 된다.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기에도 바쁜 현대 사회에서 굳이 당신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 집중할 까닭은 없다. 그러니 부니 아무거도 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