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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직구작가 Aug 16. 2022

시어머니와 스무 살 차이

젊은 시어머니는 내 결혼생활의 큰 힘

나의 시어머니. 내가 ‘엄마’라고 부르는 우리 김여사님은 스무 살에 내 남편을 낳았다.

 병원의 간호조무사로 일하면서 사회에 경험을 쌓기 시작할 무렵, 여섯 살 많은 서울에서 온 나의 시아버지를 만나 연애를 시작해고 머지않아 둘은 그렇게 생명을 잉태했다고 한다. 지금 같으면 아이가 아이를 낳았을 일이고 당시에 김여사님의 친정 역시 발칵 뒤집혔다고 했지 아마. 스무 살에 거취도 불투명한, 객지에서 온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딸을 바라보는 친정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나도 딸을 키우는 입장이지만 정말 가늠하기 힘든 충격과 고통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어쨌거나 아름답고 착한 우리 김여사님은 그렇게 이듬해 내 남편을 낳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친정에서는 도저히 산바라지를 해 줄 여유가 없었다는 것. 때문에 탯줄도 안 떨어진 떡애기를 안고 생전 처음 디딘 땅은 남편의 고향이었다. 그곳에는 남편의 노모와 어린 동생 둘이 살고 있었는데 막내 삼촌은 중학생이었다고 했다. 시어머니의 시어머니, 그러니까 내겐 시할머니분께서 너무 무섭게 생겨 어린 마음에 ‘마귀할멈’을 보는 것 같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고 그 당시를 회상하신 우리 김여사님은 지금도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음력 5월에 애를 낳았으니 얼마나 덥고 후텁지근한 날들이 이었졌을텐데 시댁에선 샤워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아이가 조금만 울어도 와서 애를 보라며 고함지르는 시어머니가 있었고(시할머니는 내가 마흔 가까이 살면서 만난 최강의 캐릭터임을 미리 고백한다) 고향 떠나 오랜만에 그것도 애 낳아 데리고 나타난 아무개네 큰아들과 며느리를 구경하기 위해 틈만 나면 찾아왔던 마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지라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 사라지지 않을 지구의 절대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보다 참기 힘든 것은 시댁의 위생상태였다. 우리 김여사님 표현을 빌리자면 도저히 누워있을 수 없는 상태의 이불과 방바닥이었는데 결국 삼칠일도 지나지 않은 산모가 바지를 걷어 올리고 이불을 빨기 시작했다. 몸이 날아갈 듯 너무나 가벼워(애를 스물에 낳았으니 차라리 낳은 후가 더 날아갈 듯 가벼웠다는 표현이 맞겠지) 이불을 빨아 널자 하고 시작했는데 그 뒤로 방 청소에 부엌일까지 도맡아 하게 되었다. 그땐 그래도 당연한 줄 알았고 낯선 곳에서 낯선 시댁 식구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그것이라도 있어 기뻤다고 말하는 우리 김여사님은 정말이지 내 기준에선 천사가 따로 없다.


삶고 빨고 쓸고 닦고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무릎이 시큰하게 아파온 것을 느꼈는데 그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요즈음 엄마들은 대부분 병원에서 나와 조리원을 가기 때문에 김여사님이 말씀하신 그 기간은 딱 지금 시대 산모들이 조리원에 있어야 할 그 시간이었던 것이다. 만약 지금 누군가 애 낳은 며느리에게 발로 밟아 이불을 빨고 걸레 삶고 빗자루질해가며 청소하라고 했다 하면 해당 게시판은 불바다가 되었을 거라 단언한다. 그래도 그 시간이 행복했고 감사했다고 말하는 며느리는 아마 우리 김여사님이라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아마 나였다면 어땠을까?라고 가끔 상상해 보는데 차마 그 기분을 글로 옮기는 것은 아직 정정하게 살아계신 아흔이 넘은 시할머니에 대한 배려나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기억 속에 상상으로만 대신하기로 한다.


그렇다면 김여사님은 과연 태생이 천사인 걸까?라는 궁금증이 생겨나는데 자라온 환경을 생각한다면 더욱 답은 명확해진다.

5남매 중 셋째 딸. 가진 것 없는 집 중간 포지션으로 5.60년 대생들 우리 부모가 그러했듯 별다를 것이 성장했고 많이 배우지는 못했다고 했다. 스무 살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큰오빠가 있었는데 부모님은 그 일 이후로 날마다 술이었고 날마다 싸웠다고 했다. 언니는 일찍 시집을 갔고 여동생과 남동생은 매일이 전쟁 같았던 집에서 서로 먼저 탈출하겠다는 의지로 성인이 되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그렇게 독립 아닌 독립을 했지만 남편의 일터가 친정 동네였기 때문에 결국 친정 부모님을 가장 가까이서 보살피는 딸이 되었다. 맏이도 아닌데 있는 집도 아닌데 내 형편도 여의치 않으면서 모든 것을 다 이겨내고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타고난 천성이 착하고 고운 사람이라 가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훗날 나이가 들어 돌아가시기 전까지 술로 세월을 보낸 친정 부모님을 원망했지만 내색하지 않았고 자식 된 도리를 등한시하지 않았기에 김여사님의 친정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셋째 사위와 딸을 믿는다고 남은 가족을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했다.


나에게 시어머니 김여사님은 그냥 닮고 싶은, 곱게 나이 들어가는 우상 자체이다.

거친 풍파의 삶 속에도 오기나 독선으로 채우지 않고 착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엄마답게, 아내답게, 며느리답게, 딸답게 그 자리에서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현인이다. 삶은 모서리가 날카로웠을지언정 본인이 타고나 천성으로 품어 갈고닦아 둥글게 만들 줄 아는 인내의 여인이고 자식들에게 내어줄 든든한 재산은 없지만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이치를 몸소 보여주심으로써 그 어떤 유산보다 값진 교훈을 주시는 분이다.

시어머니가 뭐 그리 좋아서 용비어천가 버금가는 찬양을 하고 있느냐 되물을 수 있겠지만 누구라도 나의 시어머니와 같은 분을 만난다면 아마 배우고 느끼고 깨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반대로 며느리와 맞지 않아 고민인 시어머니들 역시 우리 김여사님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모든 관계는 give and take. 부모 자식 사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변함이 없다. 금전적인 것이 오고 가는 것 말고도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상대를 웃게 하고 울게 하고 상처 주고 위로한다. 그것을 나는 시어머니 김여사님을 통해 배웠다. 사람이 많이 배우고 넉넉히 가졌다고 해서 다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결혼을 하고 알게 되었다.


어른은 그냥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이 인품에 녹아들며 이루지는 하나의 완성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노인과 어른을 구분하는 이유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다 어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의 노인들은 본인이 다 어른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완벽한 인격체가 되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젊은 우리 세대가 본받고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을 남겨주면 그것이 어른인 것이다. 내가 결혼을 하고 배운 수많은 것들은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19년 동안 책에서 매체에서 보고 느낀 전혀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지만 김여사님을 통해 직접 경험해보고 느끼고 통찰하며 깨달을 수 있어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 결혼을 하고 내가 많이 둥글어졌다고, 순해졌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 그런 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정확하게 그것은 아니다. 엄마가 되어 유순해지는 여자를 과연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 되는 것이므로 두 번의 출산과 현재 진행형인 육아가 나를 변화하게 만들지 못했다는 대답도 될 것이다.


나의 변화는 시댁에서 시작되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시나브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나는 ‘시며들’었다. 꽉 채운 10년 된 새댁도 헌댁도 아닌 며느리는 이제 어디서든 자신 있게 시어머니 시아버지 자랑을 할 수 있고 누가 시댁 험담을 하면 맞장구치며 같이 흥분하기보다 가만히 들어주는 것으로 위로를 대신할 수 있는 내공을 쌓게 되었다. 열 마디 말 보다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며느리가 되고서야 알게 되었는데 말 없는 시댁에 시집간 나의 배경이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시어머니랑 스무 살 나이 차이가 난다고 하면 반응은 두 가지다. 시어머니랑 오래 같이 보고 살아야 하는데 괜찮겠니?라는 사람과 시어머니 젊으시니 좋겠다. 둘에게 모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나의 시어머니가 참 좋다. 젊어도 젊지 않아도 좋은 우리 김여사님은 아마 나이가 많이 들어 며느리를 보았어도 좋았을 그런 분이다. 미성년자에게 나이는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법적으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극명히 나뉘기 때문에) 성인에게는 나이라는 숫자보다 그 사람의 됨됨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무 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가진 젊은 시어머니, 거기다 어른으로서 배우고 닮고 싶은 부분까지 겸비하신 시어머니를 만난 행운 며느리다. 내가 훗날 시어머니가 되면 그 어떤 책 보다 시어머니 말씀과 행동을 새겨 나의 며느리에게 마음 다해 잘해주고 싶은 이유가 바로 행운 며느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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