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자식, 손주가 자랑하고 싶어 참기 힘든 분들께 감히 이야기-
“제발 부탁인데 자식 자랑은 제발 거울보고하세요”
첫 문장부터 너무 강해서 충격을 받으셨다면 죄송하다. 그런데 정말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라 단도직입적일 수밖에 없음을 이해 바란다. 아니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자랑이 하고 싶으면 거울 앞에 서서 하시거나 휴대전화의 셀카 기능을 이용해 모드를 바꿔 그 모습을 직접 촬영하고 심심할 때마다 켜서 보시길 권한다.
세상에 자기 자식이 부족하다거나 흠이 있다거나 그래서 어디 내놓기 다소 부끄러워 말을 못 하겠다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함함한다는 속담까지 있겠는가.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가 말이 조금만 빨라도 내 자식이 천재는 아닌지 생각하고 몸동작이 조금만 날렵해도 세계를 휘날릴 스포츠 스타로 키워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어댄다. 그런 그들이 초등학교에 가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내 자식의 평범함을 처음엔 잘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중학교, 고등학교로 가면서 점점 이런 멘트를 대신하게 된다
“너 어려서 진짜 영리했는데, 나는 네가 큰 일을 해 낼 줄 알았다….”
예민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자녀를 둔 경우라면 큰 싸움의 씨앗이 될 발언들도 서슴지 않으며 평범 혹은 그 이하의 내 자식에 대해 적잖이 실망하고 체념하게 된다. 다행히 무리 없이 취직이라도 하면 상황이 그나마 나아지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그런데 시부모가 되고 처가 부모가 되면 이상하리만치 자식에 대한 자부심이 다시 드높아진다. 마치 어린 시절 걸음마 좀 빨랐던 그 시절의 내 아이가 된 것처럼 며느리 앞에서, 사위 은근한 내 자식 자랑을 시작하기 시작한다. 그보다 먼저 상견례 자리부터 묘한 기싸움을 시작하며 결혼의 서막을 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서로 자기 자식이 더 잘났다고 견주는 양가 부모님 곁에서 진땀 흘렸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유도 이것이다. 가족이 되기로 약속했고 그래서 만난 첫인사 자리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자기 자식 자랑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 자식이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행여라도 시가에 처가에 주눅 들어 만만한 상대로 보일까 봐 하는 노파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다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원히 깨닫지 못한 채 더 잘난 체 하지 못했음을 개탄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대단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로 생각되는 부분이다.
우리 외가 식구들의 특이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서로에 대한 평가가 아주 후한 편이라는 것이다. 사실 나로서는 낯간지러운 이야기도 이모들에겐 아무렇지 않은 당연한 것인데(난 과거에 아주 뚱뚱했다. 하지만 이모들에게는 늘 마치 적당하게 이쁜 조카였고, 우리 외사촌들을 다 비만 어린이였다.) 어려서는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을 자주 들으니 나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사촌 오빠들이 결혼할 시기가 다가오면서 그 후하고 너그러운 잣대들이 갑자기 옹졸해지기 시작했다.
사촌 오빠들은 나이 순서에 없이 결혼을 했는데 가장 먼저 결혼한 나보다 한 살 많은 오빠는 넷째 이모의 하나뿐인 무매독자 아들이었다. 아들 하나만 키운 집답게 이모네 집은 무미건조의 결정체였는데 며느리로 들어온 사촌 올케는 그야말로 꽃 중의 꽃인 여자이다. 어찌나 애교가 많고 사랑스러운지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칭찬을 안 할 수 없는 그런 고마운 사람이다. 이모네 집 분위기도 올케를 맞고 정말 많이 변했는데 가장 큰 변화는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이모부에게서 나타났다. 이모부는 내색하지 않으시지만 며느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훤히 보일 정도로 며느리 사랑에 빠지셨다. 그도 그럴 것이 올케는 하루에 영상전화를 몇 통씩이나 하며 이모, 이모부께 손주들을 보여드리고 자기 사는 소식도 미주알고주알 전하는 정말 딸 같은 존재다.
사랑스러운 며느리를 처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이모인데 이모는 나에게 며느리가 살짝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딸이 없으니 나보고 반쪽 딸 해달라던 사람이 이모였으면서 진짜 딸 같은 며느리가 들어왔는데 무슨 소리냐 했더니 그냥 좀 낯설고 부담스럽단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본인 아들이 너무 홀연히 곁을 떠나버린 것이 서운하고 슬프다고 했다. (아, 우리 이모 시어머니네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나는 이모에게 말했다
“이모, 오빠는 이모가 생각하는 것만큼 엄청 대단하지도 않고 엄청 멋지지도 않고 엄청 훌륭하지도 않고 딱 이모부 보다 쪼금 아주 쪼금 더 나은 남편감이야.(오빠 미안, 그런데 객관적으로 사실이야) 잘 커준 건 맞는데 이모가 지금 아들을 생각하는 기준은 우주 최고 더할 나위 없는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며느리가 낯설고 불편하다는 거지. 그런 아들을 뺏긴 것 같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뭐 이모가 나한테 서운해도 어쩔 수 없어. 그건 사실이니까. 이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들을 부풀려 생각하니까 지금 며느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거 같은데 처음부터 오래 살아온 사람들처럼 호흡이 맞는 고부간이 어딨어. 우리 시어머니는 나를 20년 넘게 알고 지내다 며느리가 되었는데도 가끔 내 요리 솜씨에 놀라시는 눈치야. 그러니 이모, 사랑해줘. 이유 없이 사랑해줘. 아들이랑 살아가는 이쁜 며느리고 이모 며느리는 요즈음 시대에 너무 드문 귀인이야. 난 올케를 몇 번 본 적 없지만 그런 사람 없다고 생각해. 그러니 이모 아들에 대한 기대감과 사랑을 조금만 덜어서 며느리에게 나눠봐.”
다행히 이모는 어쩌면 기분 나빴을지도 모를 이야기를 잘 수용해주셨고 지금은 올케를 많이 아끼고 사랑해주신다. 처음 낯선 감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 당시를 이야기하면 지금도 많이 웃는데 결혼 8년 차 나의 사촌 올케가 이 글을 본다면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아들과의 짝사랑에 빠진 이모와 무뚝뚝하고 건조한 이모부께 정말 좋은 딸이 돼주어 고맙다. 그리고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그녀는 분명 훗날 엄청 좋은 시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다른 캐릭터의 이모가 있다. (엄마는 2남 5녀 중 서열로는 넷째, 딸로는 셋째 딸이다) 엄마 바로 위 둘째 이모는 무남독녀 딸을 키워 시집보냈는데 첫인사를 온 사촌 형부에게 A4 용지를 내밀었다고 했다. 당황스러워 받아 본 용지에 적힌 내용은 정말 웃음이 절로 나오는 내용이었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내 딸과 결혼을 하기 전에 확인할 사항>
반품 불가
AS 불가
문의 사항 받지 않음
데려갔으면 우리의 의무는 끝
하소연 금지, 알아서 살 것
사촌 언니가 들려준 그날의 이야기는 너무나 의외였는데 평소 딸이라면 목숨보다 귀하게 생각한 이모가 그런 조건들을 형부에게 내밀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의아했다. 그런데 그 의문을 언니가 풀어줬다. 즉, 내 딸은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으니 결혼을 해서 사는데 최고의 신붓감일 것이다. 그러니 잘 모시고 살아야 할 것이고 이 부분들을 참고하라는 일종의 반어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맙소사!! 7남매 중 가장 머리가 좋았다고 하더니 정말 이모의 기발한 생각에 나는 그저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어려서부터 만나기만 하면 알게 모르게 딸 자랑을 쉴 새 없이 늘어놓았고 나는 언니가 향후 영부인이라도 되는 줄 알고 컸다. 그런 이모였기에 결혼을 앞둔 사위에 대한 귀여운 경고장도 어쩌면 이모니까 이상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 형부는 마음이 넉넉하고 그릇이 큰 사람이라 정말로 언니를 공주님으로 여기며 잘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모도 요즈음 사위 사랑이 대단하다고 했다.
자, 이제 한 사람 남았다.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우리 엄마.
애초에 이 글의 목적은 엄마를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두 살 터울로 나와 여동생을 낳았다. 우리가 태어나던 시대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 정책이 펼쳐지던 시절이라 아들에 대한 단념을 접고 딸이라도 둘만 낳아 잘 키워보자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그리 간단히 정리되는 것이었던가. 결국 나와는 7년 터울로 셋째인 막내 남동생이 태어난다. 엄마 나이 서른여섯, 아빠 나이 서른여덟. 그 당시엔 상당한 노산이었기에 할아버지는 엄마가 동생을 낳고 꼬박 1년을 보약이 떨어지지 않게 지어주셨다. 장남이 장손을 낳자 숨길 수 없었던 할아버지의 기쁨을 대신하듯 우리는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했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조할아버지 산소에 고가의 갓비석을 새로 세울 정도로 할아버지의 득 손자 세리머니가 강렬했다고 했다.
그 손자는 커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국내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다. 우리에겐 지금도 손이 많이 가야 할 미숙한 존재의 막둥이지만 엄마에겐 우주에 하나뿐인 신과 같은 존재가 아들이다. 그런 동생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 엄마가 어떤 시어머니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한 가지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엄마의 자식에 대한 평가의 잣대가 너무나 일반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엄마는 때로는 대놓고 때로는 은근하게 본인 아들의 대단함을 자랑스러워한다. 이를테면 택시를 타고 가다 일면식도 없는 택시 기사님에게 아들이 다녔던 학교 근처인데 역시 공부 잘하는 애들이 많아서인지 분위기도 좋다는 말을 한다거나, 두 사위들이 하나뿐인 처남을 오랜만에 만나 술을 좀 많이 권하면 중요한 일하는데 지장 있으면 안 되니 그만 하라며 채근을 한다거나, 가족끼리 놀러 간 펜션에서 묻지도 않았는데 아들의 직장을 밝힌다거나 하는 등의 일화가 있다. 그런 엄마가 며느리를 본다니 두 딸들이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자랑스러운 엄마의 아들이 평생을 함께하려 선택한 여인 또한 아들 못지않는 훌륭한 사람이라 기대해주셨으면 한다. 아들의 안목을 믿고 며느리를 큰 가슴 열어 환영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잘나고 멋진 아들이 그릇된 선택을 했을 리 없으니 아들을 믿고 새 출발을 격렬하게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자기 자식이 대단하지 않은 부모는 없다. 다 귀한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다. 이상하게 결혼만 시키면 내 아들이 멋져 보이고 내 딸이 대단해 보이는 대한민국에서 평화로운 시월드 처월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부모님들이 착용하고 계시는 착시 안경을 벗어야 할 것이다.
나의 시어머니는 내가 이쁘다고 하셨다. 바르게 자라 경우에 어긋남이 없고 아이들 잘 키우고 내조 잘하니 정말 고마운 며느리라고 하셨다. 칭찬해 주시니 더 잘하고 싶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나 스스로를 바로 잡는다. 우리 시어머니가 여느 시어머니들처럼 입만 열면 내 아들의 과거를 확대 재해석하고 대단한 녀석이었다면서 추켜 세우고 툭하면 아들 자랑에 아들의 과실마저 덮으려 애쓰는 그런 분이었다면 아마 나는 정말 모나고 날카로운 며느리가 되었을지 모른다.
사랑스럽게 보면 정말로 사랑스러워지고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정말 언젠가는 잘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식이 너무 대단하고 멋지고 훌륭해서 자랑을 하지 않고서는 입이 간질거려 참을 수 없다 하시는 분들은 거울을 보고 실컷 자랑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거울 보고 하는 자랑까지는 누가 막을 수 없다. 그건 본인의 자유니까.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촬영이 가능하다면 꼭 한 번 영상으로 남겨 보시길 바란다. 자식 자랑을 하는 상대는 절대 타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에게 본인이 낳은 자식에 대한 자랑을 셀프로 실컷 하게 되면 좋은 점도 있는데 내 아들, 딸보다 나은 다른 집 자식들의 자랑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배가 아프지 않을 수 있다. 비교에서 오는 현실적 좌절도 사라지니 정말 일석이조다. 이보다 좋은 방법은 세상에 아마 없을 것 같다. 모두가 평화로운 이 방법이 널리 알려져 유행했으면 좋겠다. 물론 이런 발칙한 것이 어딨느냐면 분노하실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적어도 내 시어머니는 아니니 나는 상관없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평생의 반려자로 맞이한 며느리와 아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아들과 딸만큼 사랑받고 자라온 귀한 남의 집 자식이다. 남의 집 자식 깎아내리지도 말고 내 자식 말도 안 되게 추켜 세우지도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껴주면 모두가 사랑받고 사랑하는 이상적인 관계 유지가 가능하다. 우리 조상들께서 말씀하셨지.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결국은 끼리끼리인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가 같고 딸과 사위가 같다. 딱 그만큼의 비슷한 사람들이 함께 평생을 살아간다. 그러니 내 자식을 제대로 본다면 남의 자식 평가는 자연스레 넣어두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