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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율럽 Nov 14. 2022

친정 찬스, 시댁 찬스

달콤함 뒤 씁쓸함이 남지 않기를

     

남편과 나의 결혼생활은 시댁과 친정 모두 먼 곳에서 시작되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 기준 편도 380km라는 물리적인 거리가 있어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는 제약이 있었고 그것이 때로는 득이 되기도 실이 되기도 했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우리는 매우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이 그러하듯 부부만의 생활에 심취해 있었고 여행, 공연, 외식이 자유로운 연애의 연장선 같은 생활을 즐기곤 했었다. 시댁이나 친정이 멀었기 때문에 명절이나 집안 행사를 제외하곤 자주 찾아 뵐 수 없었고 대신 양가 부모님이 종종 우리가 사는 곳으로 올라오시곤 했다.

아이가 생기고 삶의 상당 부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교대근무를 하는 직군인데 때문에 나는 아이와 둘이서만 지내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신생아와 지내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감각이 무뎌지는 순간이 온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도 아닌데 아이가 낯설고 울고 보채기 시작하면 정말이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나에게도 육아 우울증이란 녀석이 스멀스멀 찾아오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의 힘듦은 오롯이 혼자서 아이를 감당해야 한다는 데서 왔던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성격이 조금씩 변하면서 비롯되었다. 출산 전까지 나는 매우 활발하고 친화력이 강한, 어디에서나 잘 어울리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예민해진 탓인지 집안에서 아이와 지내기만을 고집했다. 또 평소에 정리 정돈이나 청소에 집착하는 편이었는데 아이를 낳고부터는 병에 가까운 행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빨래나 청소 등 위생이 불안정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을 참지 못했고 당연히 외식은 꿈도 꾸지 못했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는 강박을 그 시절에 가장 심각하게 경험한 것은 내 안의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나도 모르게 그런 방식으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면역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일에 예민했고 때문에 6개월부터 다닌다는 문화센터도 나는 아이가 세 살이 되고서야 겨우 등록할 수 있었다. 거기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는데 분유 수유를 하는 아이가 분수토를 한참 동안이나 지속해서 외출하는 일이 어려웠다. 한 번 먹기 시작하면 권장 분유량을 넘겨 먹으려 했고 아무리 조절을 해주고 분유를 바꾸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해도 아이의 분수토는 잦아들지 않았다. 큰아이는 8개월까지, 작은 아이는 돌이 지나서도 분수토를 했으니 정말이지 그 시절은 나에게 빨래 지옥 청소 지옥의 시절이었다. (하루에 분수토로 인해 벗어내는 아이의 옷은 예닐곱 벌이 넘었고 분유 토사물은 애벌빨래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난도 세탁 감에 해당했다. 당시엔 의류 건조기도 없어서 빨래를 돌리고 건조하기까지 여벌의 옷이 없어 밥솥 뒤에 옷을 얹어둔 기억도 있다)


교대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남편은 잠을 청하기보다 아이를 돌봐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왔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지극 정성이었는데 남편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그 시절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엔 깨닫지 못한 그 시절 우리는 오직 둘이서 함께 모든 일을 헤쳐 나가는 육아 동지였던 셈이다. 물론 지금도 나의 동지는 나와 함께 육아에 온 정성을 다 하고 있다. 신생아 시절부터 모든 육아의 과정에 자신의 여건이 되는 한 최선을 다한 남편이 아이들에게 최고의 아빠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물일지 모른다. 교대근무를 하면서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 지인들에게 남편은 하루를 48시간처럼 사용하고 육아를 도와준다는 개념이 아닌 내 일이라 생각하면 당연히 해야만 하는, 가능 불가능을 나눌 수 없는 일이라고 답한다. 누구나 쉬고 싶고 자고 싶고 편하고 싶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그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과 아내에 대한 배려가 그의 피곤함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에 그는 늘 함께 해 주었다. 출산 후 아이가 돌이 되기 전까지 나는 예리한 칼날처럼 예민했던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 정도로 날카로웠을까 싶은 시기였는데 남편을 보면 마음에 안 드는 부분만 보이고 내가 한 번 이야기한 부분에 대해 당장 행동이나 상황이 개선되기를 요구했다. 흔히 말하는 육아 우울증이 찾아온 셈이다. 육아도 살림도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지배했는데 그런 내게 남편은 늘 주문을 걸었다.

    

“괜찮아. 좀 지저분하면 어때? 좀 늦으면 어때? 그래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아. 넌 지금도 너무나 잘 해내고 있고 우리만큼 독립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없어. 우리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이게 맞다고 생각하면 그게 정답인 거야. 그러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마. 다 괜찮아.”     


늘 조급하고 서두르는 나와 전혀 다른 이 남자는 느긋하고 여유가 있으며 매사 초긍정 마인드의 대명사였다. 그런 그가 있었기에 내가 정신줄을 완전히 놓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는 10년을 시댁과 친정이 먼 곳에서 오직 둘이 아이를 키웠고 그 시간을 보답이라도 하듯 독립된 4인 가족 체계를 잘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독립된 가족. 이 단어를 쓰고 나서 한참을 들여다본 이유는 주변에서 숱하게 봐 온 독립적이지 않은 가족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A는 친정부모님이 아니면 살 수 없다고 했다. 결혼을 남편과 했는데 친정부모님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이야기는 무슨 의미일까? 사업을 하는 A의 남편은 늘 바빴고 출산과 육아 모두 그녀의 몫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그래서 친정 엄마가 자주 A의 집을 찾아와 아이를 케어해 주셨는데 나중에는 A가 친정으로 가서 수 일을 머물다 오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되었는데 A의 친정 부모님은 딸이 안쓰러워 아이를 돌봐주시는 것을 시작으로 육아에 있어 주양육자 역할을 도맡아 하고 계셨다. A는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고, 급한 용건이 있다고, 남편과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며 친정부모님에 아이를 맡기기 시작했고 그렇게 아이에게 조부모는 없어선 안 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름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A는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이젠 남편이 당연하게 생각해. 우리 부모님이 아이 보는 일을 마치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해서 화가 나. 거기다 아이가 점점 버릇이 없어진다면서 은근 우리 부모님 탓을 하는 것 같더라니까? 시댁 식구들하고 밥 먹는 자리에서 아이가 밥을 잘 안 먹으니까 외할머니가 늘 티브이 틀어 놓고 밥 먹여주니 습관이 되어 그렇다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우리 형님은 영상이 아이한테 얼마나 안 좋은데 그렇게 하심 안된다는 둥 아이 교육은 엄마가 해야지 그러다 주의력결핍장애가 생긴다는 둥 하는데 정말 화가 나서 일어서고 싶더라니까.”     


과연 이 상황은 단순히 남편이 말을 잘못해서 만들어진 상황일까? 너는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느냐고 되묻고 싶었다. A도 그녀의 남편도 벌어진 문제의 공동 책임자이다. 누가 더 잘못했느냐를 따질 수 없는 것이다. 친정 찬스를 실컷 누린 A와 처가 찬스를 어느 순간부터 당연시하게 된 남편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가 아니라 그들 부모의 자식으로서만 세상을 살아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아이는 부부의 사랑으로 태어난 귀한 생명체이고 그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부모가 된 우리의 책임이다. 그런데 우리는 달달한 부분만 마주하고 싶어 한다. 그 이면에 자리 잡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피로감은 외면하고 싶어 회피한다. 그런데 그 회피처가 하필이면 친정이고 시댁이다. 부모는 내 자식이 힘든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기꺼이 받아준다.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도 부모 앞에서 우리는 자식인지라 그 약한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 친정 찬스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피치 못할 상황에 따라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겨야 한다면 (맞벌이 제외) 그럼에 불구하고 주양육자가 부모임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친정 엄마가 키우는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고 엄마의 아이다.

장모님이 봐주시는 아이도 내 아이가 아니고 장모님의 아이다.      


친정엄마의 아이, 장모님의 아이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당장의 피로함과 수고스러움은 감당해야 할 당연한 과정이다. 내가 키워야 내 자식이 되는 것이고 함께 키워야 부모도 자란다. 아이를 키우며 내가 자란다고 말하는 나를 포함한 많은 부모들은 그 속에서 이전에는 알지 못한 담기 힘든 엄청난 감정과 지혜를 터득하고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을 부모 스스로 포기해 버리면 우리는 껍데기에 불과한 부모가 된다.

독립된 가족은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본인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내는 경우 해당된다. 아빠와 엄마가 자기 자리를 포기한 가족은 독립되었다 표현할 수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엄마 아빠가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온전한 부모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부디 독립된 부모로서 독립된 가족을 이끌어가는 주체이기를 바라본다.


달달한 친정 찬스 뒤에 씁쓸한 그 어떤 것도 남지 않기를 바란다. 서로를 탓하고 원망하기보다 힘들지만 함께 해냈다는 성취감을 먼저 맛보기를 바란다. 아내의 육아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남편의 서툰 육아가 다소 불안해 보이더라도 믿어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동지가 된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함께 이기고 극복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동지라는 말을 비로소 쓸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된다. 군대 경험은 없지만 남자들이 군대 동기를 나이가 들어서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살면서 그들이 경험한 최초의 고난 범벅 시기를 함께 이겨낸 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힘들고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던 그 시간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 때문에 그 추억을 안주 삼아 평생을 웃으며 만나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아이는 정직하다. 부모가 쏟은 사랑만큼 자란다. 사랑의 주체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온전한 사랑으로 흠뻑 적셔진 뒤에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과 부모의 사랑이 닿지 않는 곳을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채우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아이가 잘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부부가 아이를 위해 줄 수 있는 사랑을 최선을 다해 내어 주고 아이를 기르는 모든 순간에 함께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는 잘 자라지 않을 수 없다.


찬스란 정말 어려운 순간에 극적으로 한 두 번 사용하는 것이지 일상이 찬스가 되어버리면 더 이상 그것은 찬스가 아니다. 툭하면 아이를 데리고 나 대신 애를 봐줄 사람을 찾아가는 것은 찬스가 아니라 도피이고 회피이다. 당장의 어려움을 감당하기 싫어 도망치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가 어떻게 성장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육아로 힘들어하는 딸 혹은 며느리를 둔 시부모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그래.”


라는 말을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 우리는 모두 처음이다. 그래서 서툴고 어색하고 때로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우리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오신 분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일들이 우리에게 벌어지면 지구가 토막이라도 날 정도의 불안감을 주기도 한다.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 잠 못 이루는 내 자식 위해 조금이라도 눈 붙이라고 애를 봐주고픈 마음, 지친 아들을 위해 대신 애를 키워주고 싶은 마음 모두 이해한다. 그런데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한다면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서툴고 미흡하지만 처음이니까 당연한 것이고 힘들고 지쳐 보이지만 젊으니 충분히 해 낼 수 있다.


산후조리 내내 아이를 봐주었더니 감사하다는 말 대신 장모님이 아이를 내려놓지 않아 애를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하고 출근했다고 이야기하는 사위가 있다면 믿으시겠는가? 며느리 힘들까 봐 밤새 아이를 달래 가며 재웠더니 시어머니 때문에 손타서 하루 종일 울고 보채 힘들다는 며느리가 있다면 인정하시겠는가? 그런데 그것이 사실적인 친정 찬스, 시댁 찬스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이 안쓰러워서 아들이 힘들어 보여서 적극적인 손주 육아 동지가 되시겠다면 훗날 받게 될 감동도 상처도 고스란히 감내하실 수 있어야 함을 미리 당부드린다.


우리는 모두가 처음이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고 조부모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더 나은지 판단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당장 힘들어 보여서 도와주고 너무 지쳐 보여서 짐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서로가 넘지 않아도 될 선을 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칼날이 되어 서로를 겨누게 된다. 아이는 축복이고 감사함의 결정체인데 그 아이로 인해 어른들이 날을 세우고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이런 이야기에 너는 객지에서 아이를 키웠기 때문에 너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쩔 수 없이 부부만의 육아를 했고 그래서 가능한 이야기 아니냐 묻는 사람도 만났다. 하지만 나에겐 그것이 기회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당시 남편 직장에 근무하던 선후배 동료들의 아내가 출산을 하는 경우 친정이 지방이면 대부분 친정에 가 아이를 낳고 빠르면 한 달, 보통은 100일까지 아이를 키우고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혹은 친정엄마가 딸의 해산을 위해 상경하여 한참을 머무르다 가는 경우도 많았다. 교대근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신생아를 보기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 다들 그런 결정을 내렸으리라 생각된다. 남편도 처음에 친정 근처로 병원을 옮기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으나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 아이를 낳기 전이라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거절이었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한 선택이 우리 부부를 단단하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힘들고 어렵고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친정 찬스, 시댁 찬스 한 번 없이 남편과 육아에 몰입했다. 그래서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평생을 살면서 가장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았던 시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훗날 나의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더라도 그들의 육아에 참여할 수 없음을 미리 밝힐 것이다.      


“너희가 키워야 너희 자식이다. 정말로 힘들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1년에 딱 두 번은 찬스를 쓸 수 있게 카드를 발급하련다. 단, 카드 유효기간은 24시간을 넘지 않아야 하며 그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함을 미리 밝혀둔다. 남편도 아내도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메인은 없다. 둘이 함께 만들었으니 같이 책임을 져야 하고 시댁이든 처가든 너희 육아에 참여시킬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란다. 어린 시절의 아빠를 생각하고 엄마를 생각한다면 분명 우리의 아이들인 너희도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 당장의 달달함에 취해 바로 닥칠 씁쓸함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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