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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율럽 Nov 11. 2022

효자인 듯 효자 아닌 효자 같은 당신

-내겐 너무 완벽한 파트너 당신-

남편과 나는 8살부터 친구사이다. 시골의 작은 동네서 나고 자랐고 많은 시골 학교들이 그러하듯 초,중,고를 함께 다니고 대학도 같은 대학에 진학했다. 물론 시골이라고 해서 다 같은 학교에 진학하고 대학마저 같은 곳으로 간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적이 비슷했고 덕분에 지역에서 나름 이름 있는 국립대에 둘 다 무리 없이 입학할 수 있었다. 남편의 군 복무 2년을 제외하고 우리는 1991년부터 줄곧 함께한 그야말로 혈육에 가까운 사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면 주변에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묻는다.

“그럼, 8살부터 사귄 거야?”

설마 그럴 리가… 우리 스물일곱에 연애를 시작되었고 2년을 만났다. 그리고 스물아홉이 되던 해 1월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은 연애하기 전에도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남녀 사이에 친구가 없다는 말을 둘 다 강하게 부정했지만 결과는 강한 긍정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우스갯소리로 내가 당신과 결혼할 줄 알았더라면 스무 살에 식 올리고 빨리 애들 낳아 빨리 키우고 지금은 엄청 신나게 여기저기 다닐 텐데 하면 남편은 정색하며 

“스무 살에 결혼해서 애 낳아 살면 젊은 시절이 없는 거야. 꽃 같은 20대에 그 청춘 다 받쳐서 애들 키우면 그 시간은 누가 보상해? 엄마가 젊은 나이에 나를 낳고 힘들게 살았던 거 생각하면 난 절대 난 아내랑 일찍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어. 엄마는 힘들다고 말한 적 없지만 그냥 내가 싫어서 난 우리 결혼이 적기였다고 생각해.”

라고 말한다. 우린 서로의 성장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봐 왔기에 그 마음이 이해가 되고 가슴이 아픈 것도 사실이다. 일찍 결혼해서 얻는 장점보다 포기해야 할 것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본인의 가정사에서 보고 배웠기 때문에 나름의 결혼 적령기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지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각자 조금 다른 성장기를 보냈는데 나는 엄마 말이 법인 줄 알고 그 말씀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착한 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삼 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그것이 사랑받는 길이라 생각해 부모님 눈에 벗어나지 않게 행동하고 큰 일탈 없이 성장했던 것 같다. 사춘기라고 할 것도 없이 청소년기를 보냈고 식당일로 바쁜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고 살림을 하고 착실하게 학교를 다녔던 것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나의 삶이었다. 

남편은 나와는 좀 다른 사람이었는데 일단 아슬아슬한 학교 생활을 즐겼고 열심히 놀러 다니기에 최선을 다한 학생이었다. 시부모님은 모르시는 나만 기억하는 남편의 학창 시절은 그렇게 집 안과 집 밖의 생활이 철저하게 분리된 이중의 형태였다. 학교에서 만나는 남편이 너무나 개구지고 활기차고 어느 쪽으로 튀어갈지 모르는 탄력을 가득 머금은 공과도 같았기에 나는 집에서 그렇게 착실하고 얌전하고 심지어 모범적이기까지 한 아들일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결혼하고 시댁에서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시어머니와 나의 기억이 하나도 일치하지 않음을 알아차리고 둘 다 상당히 놀라워했다. 


우리는 전혀 다른 색깔이었지만 가장 친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제대로 찾지 못했는데 아마도 서로 대화의 코드가 맞아서였지 않을까 생각한다. 착실한 모범생인 나는 덜 착실한 일탈 주역인 남편에게서 일종의 해방감과 대리 만족감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남편은 그런 내가 안쓰러웠다고 결혼 후에 이야기해주었다. 어쩌면 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편이 되어준 나의 반쪽이지 않았나 싶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길들여졌다고 하는 표현 한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질 그럴만한 성격이 아니라고 자부했지만 결국 나는 남편에게 길들여져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겉에서 보면 우리 부부의 주도권은 오롯이 내가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보면 결국은 남편의 뜻대로 내가 움직이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 것이 내 일상이다. 이러한 모습이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도 있고 우스워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우리 부부가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의 남편이다. 겉에서는 다 져주고 맞춰주고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지만 결국 승리자는 남편이다. 그는 본인이 원하는 것과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한치의 착오도 없이 나를 움직이고 그것을 위해 철저하게 나에게 져준다. 그럼 나는 승리감과 성취감에 젖어 그에게 더 큰 것을 내어주고 결국은 최종의 목적까지 이루게 해주는 그런 패턴으로 우리는 즐겁다. 이기고 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서로의 의견이 충돌하거나 가치관이 대립할 때 날을 세우기보다 한 뼘만 떨어져 생각하면 단순하게 답이 나온다는 것을 결혼을 하고 그와 함께 살면서 배웠다.


이렇게 영리한 나의 남편은 효자는 아니지만 효자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효자인 듯 효자 아닌 효자 같은 당신이다. 본가에서는 믿음직한 효자이고 처가에서는 대 놓고 효자이고 아내에게는 알 수 없는 정체가 바로 남편이다. 아내와 엄마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본인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마치 아카데미라도 다녀온 것 마냥 기가 막히게 알고 있는 똑똑한 효자. 어쩌면 그래서 더욱 시어머니에 대한 나의 마음이 이토록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남편의 일화는 글로 다 적어 내려갈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많지만 그중에 손에 꼽히는 몇 가지가 있다.     


#1. 엄마, 명절엔 시누올케가 만나는 거 아니지

나의 시누이가 결혼을 하고 첫 명절을 맞았던 그 해. 시부모님은 내심 시누이가 오기를 기다렸다 우리가 친정으로 넘어가길 바라는 눈치셨다. 말씀은 딱히 하지 않으셨지만 나의 시누이도 시댁이 멀지 않아 오전 중으로 오지 않겠느냐며 같이 점심이라도 먹었으면 하셨다. 알듯말 듯 한 적막이 흐를 즈음 남편이 던진 한 마디

“엄마, 굳이 좋은 날 다 놔두고 시누올케가 명절에 왜 만나? 그럼 00도 지 시누 오는 거 보고 밥도 먹고 천천히 넘어오게? 우린 처가로 넘어갈 거니까 00한테 잘 쉬다 가라고 해요. 나는 나라에서 명절에 방송을 좀 했음 좋겠어. 민방위 훈련처럼 사이렌을 울리는 거야. 명절 전 날 오전 10시에 며느리들 시댁 갈 일이 있음 어서 가세요 하고 울려주고 다음날 오전 10시에 며느리들 친정으로 어서 떠나세요. 그럼 아마 대한민국이 편안할 건데 왜 그런 제도를 안 만드는지 몰라. 그럼 엄마 딸도 10시면 집에 올 거고 모두가 해피투게더!!”

그날의 남편의 그 한마디는 두고두고 회자되었는 실제로 우리는 시누올케가 명절에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시어머니께 그 부분에 대해서 여쭈었을 때 처음엔 딸 결혼하고 맞는 첫 명절이라 함께 있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아들 말을 듣고 보니 그렇게 되면 내 딸도 명절 오후까지 친정에 못 오겠구나 싶어 져 정말 시누올케는 명절이 아닌 다른 좋은 날 만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답해주셨다. 남편에게 마치 내가 시킨 것 같은 이 일화는 정말이지 나의 개입이 1도 들어가지 않은 나조차 당황스러운 그의 작품이었지만 결론은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2. 처가 입장 후 수다쟁이 모드

남편은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 시댁 식구가 모두 말이 없는 편이다. 반면에 나는 종알종알거리기를 좋아하는데 우리 시부모님은 그래서 내가 좋다고 하셨다. 친정 식구들도 딱히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시댁처럼 고요하지도 않다. 특히 아빠의 수다가 엄마보다 있는 편인데 친정 아빠는 우리에게 궁금한 것이 많으시고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기신다. 남편은 처가에 입장하면 수다쟁이 모드가 된다. 장인어른과 어색하지 않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내가 질색하는 아빠의 정치 이야기도 다 받아주곤 한다. 무뚝뚝한 엄마에게 다가가 장모님 대신 엄마라고 부르며 다정하게 이런저런 안부를 묻기도 하는데 이 남자가 좀 전까지 시댁에서 보던 그 남자가 맞나 싶게 모드가 변경되어 내가 혼란스럽다. 엄마가 가서 좀 쉬라고 해도 절대 방 하나 차지하고 눕는 법이 없는 남편은 장인 장모 꽁무니를 찾아 본인이 도와드릴 일이 없는지 근황은 어떠신지 귀찮을 정도로 챙기는 처가의 살가운 맏사위다. 남편이 친정에 가서 친정 부모님께 잘하고 동생들과 조카들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시댁에 마음 다해 잘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강요나 지시보다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남편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3. 자기가 알아서 골라, 나는 자기 안목 믿어

시부모님의 생신이나 어버이날, 명절과 같은 연중행사에 선물을 고르는 일은 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취향이나 필요를 잘 파악해야 하고 금액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은 그래도 내가 잘 알지만 시부모님의 경우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섣부르게 구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성의 없이 봉투만 건네는 것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남편에게 의견을 물으면 항상 그의 대답은 똑같다.

“자기가 알아서 골라, 나는 자기 믿으니까 아마 엄마 아버지도 좋아하실 거야.”

이 말이 처음엔 너무 부담스럽고 무책임하게 느껴져서 싫었었다. 그런데 그 말이 단순히 정말 네가 골라서 너 알아서 해라가 아니라 ‘일단 너의 의견을 듣고 나도 생각해서 이야기해 줄게’라는 것을 파악하자 문제는 가벼워졌다. 남편은 시부모님 선물을 고르는 데 있어 명확한 가드라인을 제시하거나 본인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생각해 낸 여러 대안 중 경중을 살피어 더 나은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고 그럼에도 선택권은 너에게 있으니 존중한다고 말해준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선물을 고르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성의를 다해 표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시부모님은 우리가 드리는 선물이나 용돈에 항상 고맙다 진심으로 답해주시는데 그것도 남편의 작품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시어머니께 엄마는 우리가 드린 선물이 늘 만족스러우셨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웃으시며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결혼 전에는 네 시누가 하자는 대로 엄마, 아빠 선물 사는데 협조해 주니 좋았고 결혼하고 나서는 와이프인 네가 하자는 대로 해 주니 나는 좋지. 아들이 아무리 잘 고르고 섬세해도 여자만큼은 아닐 테고 언젠가 그러더라. 자기는 제비뽑기 해서 선물 선택하고 꽝도 있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럼 서로가 즐거울 거 아니냐고. 그런 애가 장가가서 부모 생각하고 선물에 용돈에 저리 챙기는 거 보면 제비뽑기에 비할바가 아니라 너무 감사하고 고맙지.”

나는 시어머니 말씀을 듣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정말 영리하고 치밀한 계획을 지닌 관리자형 남편이고 아들인 것이다. 본인은 나서지 않으면서 모두에게 평화를 제공하는 그의 능력에 다시 감탄하게 되었다. 집에서의 일상생활을 보면 계획적이지도 치밀하지도 않은 그가 어떻게 이렇게 남편과 아들 사이에서 완벽할 수 있는지 그것은 아마도 사는 동안 내내 나의 숙제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천성과 학습이 함께 이루어낸 엄청난 시너지라고도 생각된다.


#4. 나는 알고 있지만 모른다

나는 시댁에 전화를 자주 한다. 결혼하고 10년을 객지에서 살았고 신혼 때는 안부차 종종 했던 통화가 아이들 낳고 영상 통화로 그리고 지금도 습관이 되어 특별한 일이 없어도 시어머니께 전화를 자주 건다. (지금은 시댁 근처에 살고 있고 매주 시댁에 가지만 나는 주중에 꼭 한 두 번은 전화를 드리는 편인데 어른들께 할 수 있는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취향이고 가치관의 차이지만 나에게 대화는 참 중요하다. 할 말이 없어서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은 이해되나 할 말이 있어서 전화를 하는 것도 아닌 나로서는 전화를 하다 보니 할 말이 생각나더라는)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들 유치원, 학교 생활도 이야기하고 남편의 직장 이야기나 취미 생활도 공유해 드린다. 그리고 며느리의 요즘 관심사나 소소한 신변잡기적인 애화를 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흐른다. 크고 작은 이야기들로 통화를 마치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해 주면 남편은 그저 끄덕끄덕. 그런데 반전이 있다. 

그는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도 통화를 한다. 그가 주로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본가와 처가에 안부 전화를 한다는 것을 나는 결혼 하고 한참 후에 알았다. 그리고 중요한 내용도 중요한 내용도 나에게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나에 대한 배려라고 해석되는데 이미 시어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할 기회만 엿보는 나에게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리액션을 해주고 새로운 이야기처럼 집중해서 들어준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들과 통화를 해서 좋고 내 입장에서는 새로운 화젯거리로 대화할 수 있어 좋으니 모두에게 평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시어머니와의 대화 중 굳이 내가 알지 않아도 되는 내용도 그의 선에서 정리한다는 것도 예상해 볼 수 있다. 교통정리를 잘하는 아들과 남편으로서 남편은 정말 최고의 인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5. 딸 같은 며느리는 없어

흔히 딸 같은 며느리, 아들 같은 사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시댁에서 모두 둘러앉아 맥주 한 잔 기울이던 날 딸 같은 며느리와 아들 같은 사위에 대해 이야길 나누게 되었다. 그 당시 시누이가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예비 시매부도 함께 있었다. 남편이 이야기하길

“딸 같은 며느리랑 아들 같은 사위는 없어. 낳아준 엄마 아버지가 따로 있는데 무슨 딸 같은 며느리고 아들 같은 사위야. 그건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발상이지. 그냥 본인 형편이 닿는 선에서 내 부모님께 하듯 잘하라- 이 말을 정말 멋지게 포장해서 중압감을 주는 거지. 딸은 딸이고 아들은 아들이고 며느리는 며느리고 사위는 사위지. 나도 우리 딸 있지만 나중에 결혼했는데 딸 같은 며느리가 되어라-할 생각 없어. 반대로 생각하면 간단한데 왜 그걸 강요하는지 모르겠어.”

이 말에 시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는데 막상 본인의 딸이 결혼을 한다고 하니 더 여러 가지 생각이 드신 모양이었다. 내게 단 한 번도 딸 같은 며느리가 되어라 강요하신 적은 없지만 막상 그날 그 자리에서 아들 이야길 듣고 보니 사람의 입장이란 것이 종이 뒤집듯 한 장 차이구나 싶으셨다고 말씀하셨다. 아들 같은 사위를 바란다면 내 딸도 시댁에 가서 딸 같은 며느리가 되어라는 말인데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형편이 다른데 일률적으로 시집왔으니 잘해라 장가 왔으니 잘해라 하는 것은 어른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아주 적절한 순간에 모두에게 깨우쳐 준 것이다. 실제로 나의 시어버지는 본인의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아들보다 더 잘했다고 했다. 아들 같은 사위가 아니라 그냥 아들처럼 그렇게 마음을 다했고 덕분에 그 선한 영향력이 아들인 나의 남편에게까지 미치지 않았나 생각된다. 


 효자인 듯 효자 아닌 효자 같은 남편과 살면 아주 편안하다. 나뿐만 아니라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까지 두루 편안해지는 것은 남편의 역할이 잘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엄마의 갈등으로 힘들어 하자 중간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에 그게 가장 어렵고 무서운 말이라고 대답했던 지인이 생각난다. 엄마도 내가 가장 잘 아는 여자고 아내도 내가 가장 잘 아는 여자다. 두 여자 사이를 오가면서 쓸데없는 정보는 자체 생략하고 한쪽에 치우치지만 내색하지 않는 정치술을 펼칠 수 있어야 평화를 얻는다. 고도의 집중력과 치밀한 계산이 요구되지만 생존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므로 등한시해서는 안된다. 귀찮다고 힘들다고 포기하는 순간 고부갈등이라는 지옥의 세계가 그를 환영할 것이고 어쩌면 그것은 평생을 두고 이어질 고통의 포문이 열리는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


영리한 남편은 아내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효자 아들은 엄마를 걱정하게 하지 않는다. 엄마에게서 나고 자라 아내와 남은 생을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충분히 즐길 준비를 해야 한다. 누구도 일러주지 않고 명확한 정답도 없지만 그 한 남자의 역할이 두 여자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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