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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타 Nov 23. 2022

나의 집은 정말로 두 개가 되어 버렸다

집에 대한 감각 - 복수형으로서의 집

10월 19일
낙산성곽길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어느 공동체 상영회에 참여했다. 상영작은 반박지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장편 <두 사람>. 반박감독님은 ‘칼로’라는 이름으로 만난 나의 글쓰기 워크숍 수강생이고, 인선님과는 서로의 글을 통해 호감을 품고 연락을 주고 받다가 올해 7월 베를린에서 만났다. 그 때 수현님은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고명으로 올린 수제 콩국수를 만들어주셨다. 다 귀한 인연들이다.

<두 사람>은 70대의 베를린 거주 레즈비언 커플 수현과 인선을 담고 있다. 다큐의 거의 처음부터 둘이 함께 살고 있는 베를린의 아파트가 등장했고, 부엌이 자주 나왔다. 노년을 보내는 두 사람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또 끼니를 잘 챙겨먹는 것이 중요한 일과니까, 나는 그럴 거라 예상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그 장면들에 반응하는 내 마음.

가슴이 조여들었다. 아렸다. 내내 그랬다.
 
정체는 그리움인 듯 했다. 독일에 대한 총체적 그리움. 영화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절제된 톤을 띄고 있고, 인물 다큐이지만 주인공들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지 않아서 여백이 있었다. 다른 관객들은 그 여백을 어떻게 보냈을지 모르지만, 나는 여백 속에서 유영했다.  내게는 몸을 내맡기고 유영할 수 있는 기억의 바다, 감정의 바다 상념의 바다와 같았다.  

여전히 프라이부르크에서 지내고 있는 애인과 2-3일에 한 번 꼴로 영상통화를 하고, 문자와 사진도 틈틈이 주고 받는다. 각자의 일은 잘 책임져나가고 있어서 우리의 주된 화제는 폴리아모리이다. 그이는 최근에 펍에서 친구 소개로 만난 한 여자와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이 너무 바쁘고 체력은 달려서 데이트 한번 하기가 쉽지 않은 나와 달리, 자그마한 소도시에 있는 그이의 새 연애는 수월하게 잘 되어가고 있다. 그 둘은 언제든 만난다.


시간은 거기서 좀 천천히 흐른다.

애인이 전하는 소식들 속에 우리 친구들은 여전히 일은 조금만 하고 많이 놀고 충분히 쉰다. 며칠 전에 그이는 할로윈 파티를 겸해 동네 펍에서 블루그래스 듀오 공연을 했는데, 사진과 비디오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친구들의 여전한 삶을.

내 원더우먼 코스튬을 빌려 입은 코뿔소의 새로운 동거인 케이. 목수로 일하다가 지금은 대학원을 다니는 당찬 여자. 70대에도 싸구려 아파트에서 주거공동체(WG)를 운영하며 어디든 걸어다니는 유대인 마크 제이콥스, 독일이 너무 억압적인 분위기라 스웨덴으로 이민을 가겠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루마니아에서 온 술고래 카탈리나, 그리고 또, 또…


독일의 11번째 집, 하슬라허(Haslacher) 거리에 있는 나의 집 부엌 창가에서.

나는 안전과 재미를 원없이 누려왔다.

우리 동네 퀴어-아티스트-페미니스트-채식주의자-풀뿌리운동가-인디뮤직씬 친구들이 느긋하게 살면서 만들어내는 쾌락주의(hedonism) 에너지 속에서.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이 좀 시시하다고도 생각하곤 했다. 야망을 품어본 적 없고 노력을 별로 해보지도 않은 채, 복지국가의 부유한 도시에서 안온하게 살아온 나의 친구들. 좀 유약하기도 게으르기도 한 친구들.

그리고 이 작은 도시가 너무 좁다고도 생각했다. 창작과 교육이라는 나의 일이 이 세상만사 태평한 소도시에서는 정체되어 버린다고 자주 느꼈다. 이러다간 나의 삶이 그냥 이렇게 쭉, 밍숭맹숭하리라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런 내가 한심한 동시에 안쓰러웠지만, 그래도 멈춰지지 않은 감정들...

혼자 고군분투하며 장시간 앉아서 글을 쓰고, 비대면으로 강의를 하는 나는 정말로 바쁘긴 바빴다. 친구들의 에너지와 어울리지 않게 나는 자주 긴장해 있었다. 그런 부조화를 느끼는 빈도가 점점 잦아져 가자 나는 서울살이로 피신해본 것이다.


지금 서울에서,

나는 바랐던 대로 훨씬 많은 자극에 노출되어 영감을 쉽게 얻고, 다양한 사람들의 부지런한 일상에서 생기를 얻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벌써 그리워한다. 독일로 이름붙여진 모든 것들을. 두고온 것들은 독일이라는 한 단어로 간단히 대표할 수 없고,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그 모든 것들은 7,8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그 맥박이 크게 느껴질 때마다 그리움에 가슴이 조인다.

그러므로 조금 더 고집 부리기로 한다.

나의 집은 두 개라고. (서울의 전시회 두 곳에서 발표한 <초대받길 갈망하는 그 뜨거움으로>에서도 분명히 말했듯이) 두 개라고. 그 어느 곳도 잃고 싶지 않고, 각기 다른 의미에서 나를 살게 한다고.

*<초대받길 갈망하는 그 뜨거움으로> 퍼포먼스 영상 보기


*이 글은 베를린 공대 CRC 1265 연구단의 의뢰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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