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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Jan 28. 2021

아이들의 반대말

순수한 사람과 그냥 불러보는 사람.

첫째 딸이 갑자기 반대말 놀이를 하자고 한다.

아마 영어시간에 하는 것 같은데 아는 영단어가 얼마 안 되니 우리말로 하자고 한다.


"아빠, 내가 '예쁘다'이러면

아빠는 '못생겼다' 이렇게 하는 거야 알겠지?"

"그래"


"시작한다. 예쁘다."

"잘생겼다."


"짜증 난다."

"즐겁다."


"슬프다."

"기쁘다."


"못생겼다."

"귀엽다."


반면에 놀이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말을 반대로 하는 둘째.


"아빠, 이거 닫아줘."

(닫힌 덮개. 열어달라는 뜻)


"아빠, 불 꺼줘 무서워."

(불 꺼진 방. 불 켜달라는 뜻)


"엄마, 앞으로 가."

(자기가 있는 뒤로 오라고 손짓하는 중)


근데 너무 정확하게 반대로 말하는대다가 제대로 정확하게 말할 때도 있는 거 보면 일부러 그러는 거 같은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굉장히 언어 능력이 발달했나 보다.' 할 뿐이다. 말과 행동이 반대인 이중적인 아이가 아니고, 말이 의도와 반대인 반전 있는 아이.


아이들은 순수해서 신비롭다.

요즘 순수한 사람들을 보기 힘드니 더 신기하다.

어느 순간부터 보기 힘들어진 '순수한 사람'들.


'순수하다'라는 말이 마치 '너무 착해서 좀 바보 같다'라고 의식되는 요즘. "뇌가 청순하다"는 바보 같다로, "뇌가 섹시하다"는 똑똑하다로 인식하는 요즘 세대들. 순수한 사람은 어리숙해서 세상살이가 힘들거나 손해를 많이 보고 당하고 살 것 같은 이미지.


표준국어사전에 "순수하다"는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사실 본받고 노력해야 할 자세나 태도 아닐까.

'순수한 의도, ' '순수한 호의, ' '순수한 관심.'


타인의 순수한 관심이나 호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요즘.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믿음과 신뢰를 이용해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 피싱. 대가를 받지 않거나, 바라지 않으면 바보 취급당하거나, 이용만 당하는 사람들.




친구나 후배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결혼하나?' '보험 하나?' '영업하나?'

"그냥" 연락할 수 있는 사이란 어떤 사이일까.


아내한테 카톡이 왔다.

"점심 먹었어?"

"응. 왜?"

"그냥. 잘 챙겨 먹었나 궁금해서."


그냥 보고 싶고, 그냥 궁금하다.

관심 있으니까. 사랑하니까.

너의 모든 행동, 생각, 마음이 궁금하다. "그냥."


"엄마, 엄마, 엄~마!"

"아, 왜 자꾸 불러!"

"헤헤. 그냥."


엄마가 너무 좋아서.

부르면 들리는 거리에 함께 있는 게 좋아서.

그냥 불러 봅니다.


오늘 그냥 불러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너무 소중한 그 사람에게 내 마음과 다르게 반대로 말하지는 않았나요? 너무 편해서? 부끄러워서? 장난으로? 왠지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그냥?


"당신 참 예쁘다."

"왜 또. 뭐 해줘? 무슨 일이야?"

"아니, 그냥."

"씁. 빨리 솔직하게 말해."


어.... 이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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