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필뿐만 아니라 필기류나 문구류 전반을 좋아한다. 뭐 그럴듯한 명품이나 고가의 장비들 같은 건 아니고 소소하게 몇 백, 몇 천 원의 1.0mm 볼펜이라던지, 연필이라던지, 플러스 펜, 색색이 다른 수성 펜 등. 어려서부터 나의 부모님은 책, 그리고 학용품의 구입에는 늘 관대했다. 어차피 어린 내가 몇십, 몇 백만 원을 호가하는 만년필을 사는 것도 아니고, 그 시절 내가 자란 도시에는 그런 것을 파는 곳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일기를 쓰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글쓰기를 장려하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문구류가 있어도 막상 쓸 곳이 변변치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문구류는 사지 않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늘 학용품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아마 애초에 그렇게까지 쓰지도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대학을 미국으로 가고 나서야 원 없이 글쓰기를 했는데, 내가 원한 주제도 아니고 거의 과제인 데다가 컴퓨터로 작성해서 프린트하거나 이메일로 제출해야 했다. 2000년 초반만 해도 쓸만한 노트북은 비쌌기에 미국에서 한국보다 싼 가격에 노트북을 사서 한국인 형들 중에 컴퓨터 좀 한다는 형들을 찾아다니며 한국어판 윈도를 깔고 자판은 외워서 쳤다. 어릴 적 친구들이 흔하게 다니던 워드 학원 한번 다녀본 적 없었던 나는 그렇게 한글자판을 외워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농장을 하며 내가 가장 즐기면서 했던 일은 '기록'이었다.
농장은 원래 '농장 출입기록부, ' '소독 기록부' 등의 법적으로 요구하는 필수적인 기록이 있다. 그리고 사육 기술과 농장의 원활한 관리를 위해 '사육관리일지'작성을 권장한다.
'출입기록부'는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도 익숙해진 그 양식과 비슷하다. 말 그대로 상주 직원 외에 모든 출입자의 이름, 인원수, 출입시간, 이전 방문지, 차량번호, 전화번호, 출입 시 소독 여부를 기록한다. 보통은 농장 입구에 비치해두고 자발적으로 작성하도록 유도하지만, 내가 농장을 할 때만 해도 비축산관계자의 경우에는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꼭 안 쓰는 사람, 까먹는 사람 등등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방문 후에는 항상 CCTV를 돌려보며 내가 보완 작성해야 했다.
이는 코로나와 마찬가지로 조류독감 감염 시 역학조사 자료로 활용된다. 내 기억에는 최소 1년 정도 보관해야 했는데, 애초에 꼭 필요한 인원 - 농장 점검이나 출하 전 검사인원 등과 같은 공무 목적의 인원, 사료 기사님, 난방유 기사님, 농장 시설 수리, 보수 인원 등 - 의 출입만을 허용하다 보면 사실 1년에 몇 장이 되지 않을 정도로 기록 양이 많지 않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소독관리 기록부'이다. 언제, 누가, 어떤 약품으로, 어떻게, 어디를 소독했는지, 어떤 형태로든 소독약을 쓸 때마다 작성하는 것이다. 방역의 원칙은 일단 농장에 어떤 차량이나 기계가 들어올 때마다 소독을 해야 한다. 또 각 축사동과 축사동을 트랙터나 깔짚 살포기가 오갈 때마다 소독을 해야 하며, 또 특별방역기간에는 거의 매일, 평상시에도 일주일에 하루는 농장 전체를 소독해야 한다.
그러니까 사료가 오면 사료차 기사님이 농장 출입 기록부를 적으실 동안 나는 사료차량 소독을 하고, 기사님이 사료를 붓고 있는 동안 소독관리 기록부를 적어야 하는 것인데, 사료는 보통 일주일에 한 번에서 두 번을 받는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또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일단 아무리 조금 희석해서 쓰는 약품이라고 해도 저렇게 원칙을 꼼꼼하게 지킨다면 매우 많은 양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겨울철에 약효가 유효하려면 산성 계열의 소독약을 주로 써야 한다. 그런데 물이 얼 때 대신 쓰는 석회가루는 알칼리성이기 때문에 자칫 중화되어서 효능이 없어질 수 있으니 사용에 주의해야 하고, 약품을 너무 철저하게 쓰면 축산기자재의 부식이 빨라져서 농장 노후가 빨라지고 시설물 교체 비용이 많이 들어가게 된다.
또 각 축사동, 창고, 관리사 입구 등에 발판소독조라고 신발이나 장화를 소독하는 통을 두어야 하는데 이것도 최소한 3-4일에 한번 정도는 약품을 갈아주는 것이 좋고, 그때마다 일지를 작성해야 한다.
'사육관리기록부'는 농장의 모든 것을 기록할수록 좋다. 나는 병아리의 경우 두 시간, 성오리의 경우 4시간마다 일지를 작성했는데, 매일 그날의 기온, 개황, 강수량, 적설량, 그에 따른 환기 조치, 시설물의 고장이나 특이사항 여부 등을 적는다.
그리고 몇 시에 들어가서 사료를 줬는지 언제 물통에 물을 받아주었는지, 사료첨가제나 약품을 쓰게 된다면 물은 어떻게 희석했고 언제 다시 물을 틀어줘야 하는지, 사료는 언제 병아리 사료에서 전기, 후기 사료를 주문했고, 받았고, 어떻게 급이 했는지, 아픈 오리는 몇 마리고 몇 마리가 죽었으며 죽을 때 증상은 어떠했는지, 사료는 지난 사육과 비교해서 잘 먹고 있는지 환기는 적당한지, 축사 불은 몇 시에 꺼주고 다시 켰는지, 깔짚은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며칠에 한번 깔아주었는지 등을 추가로 적어주면 된다.
출하 시기가 다가오면 며칠마다 한 번씩 몇십 마리씩 무게를 잰 다음 출하 예상 중량은 몇 킬로그램이 나갈 것 같은지, 그래서 언제 무슨 요일에 출하할 것 같은지, 여태껏 폐사한 숫자를 계산해서 몇 마리가 출하될 것 같은지 등등을 기록하고 계산하기도 한다.
관리기록부가 잘 정리되어있으면, 지난 기간에 날씨나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처했고 결과가 어떠했는지 등을 바로 알 수 있어서 특별한 상황들이 닥쳤을 때 대처하기가 쉽고, 사육의 성적도 개선하기 좋다. 또 미리 계획을 세워서 필요한 부자재를 주문하거나 비축해 두고, 계절에 따라 취약해지는 시설이나 장비들을 미리 점검하기에도 좋다.
예를 들면 지난 2-3년간 장마 시기를 보고 올해 장마시기를 대충 예상해 병아리의 분동 날짜를 고려해서 오리를 받는 다던지. 작년에 몇 월부터 깔짚 물동량이 달렸는지 확인하고 미리 여유분을 비축해 둔다던지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지를 젊은 축산인들은 엑셀 파일로 관리하기도 하는데, 군청이나 방역/검역본부에서 점검을 나올 때는 꼭 사진을 요구하거나 직접 찍어가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어차피 프린트를 해두어야 한다. 나는 이참에 마음껏 볼펜 등을 써보고 싶어서 일부러 양식만 만들어 제본해두고 펜으로 일일이 손글씨로 작성했었다.
또 일일이 양식을 들고 먼지나 가스, 땀이 많이 나는 축사 안을 들어갈 수도 없고, 모든 것을 기억했다가 쓰면 누락되는 부분도 있고 해서, 작은 수첩을 다시 조끼에 항상 넣어가지고 다니며 기록했었다. 잃어버려도 아깝지 않으며 먼지가 많아도, 추워도, 더워도 잘 써져야 하고, 땀이 많이 나도 미끄러지지 않으며, 더러운 장갑이나 손으로 잡아도 괜찮은 그런 볼펜을 사용해야 했다.
요즘은 연필을 하나 둘 사모은다는 게 그만 우리 애들 대학 갈 때까지, 미술을 전공하지 않는 이상, 더 이상 연필은 안 사도 될 만큼 집에 쌓아두게 되었다. 가장 흔한 독일 브랜드 연필, (독일 생산품, 중국 등 아시아 국가 생산품 등) 그다음으로 흔한 일본 브랜드 연필. 그리고 미국 브랜드(의 중국 생산) 연필, 미국 브랜드 미국 생산 연필. 또 국산 브랜드(의 중국 생산) 연필, 체코산, 중국 브랜드 중국산 연필, 인도 브랜드 연필, 독일 브랜드의 인도 생산 연필, 미국 브랜드의 일본 생산 연필, 국산 브랜드의 일본 생산 연필, 일본 브랜드의 중국 생산 연필 등등.
심지어 2mm 심 홀더 연필 (기계식 연필), 1.4mm, 1.3mm, 0.9mm 홀더 펜, 샤프 까지도 모았다. 그나마 미리 정해둔 몇 가지 원칙 덕분에 (절대 알지도 못하는 언어로 된 사이트에서 직구까지 하면서 사지는 말자 - 대신 구매대행은 했다 - 또 심의 경도는 HB, B, 2B로 한정해서 사자. 너무 미술 스케치 전용인 것은 사지 말자 등등.) 이 정도에서 멈출 수 있었다.
하나의 연필을 샀다는 것은 대부분 더즌 (12자루)으로 구입한 것이다 보니 대충 몇백 자루는 될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에 조카를 볼 때마다 몇 개씩 나눔을 해줬는데, 매일 쏠쏠하게 연필 깎는 재미를 보고 있다고 한다.
매일, 오리가 없는 날도 농장에 취해지는 조치사항들을 기록하다가 요즘은 기록할 게 없다 보니, 일기도 쓰고 브런치도 쓰게 되었다. 그리고 컴퓨터나 스마트 폰으로 바로 작성하면 될 것들도 초고 작성이라는 핑계로 노트에 연필로 먼저 쓴다.
물론 글쓰기 측면에서도 훨씬 도움이 되기는 한다. 한번 쓰고 옮겨 쓰면서 생각이 달라진 부분, 어색한 표현 등을 바로잡을 수도 있고, 정보를 더 찾아보고 수정하기도 좋고, 한번 더 읽어보면서 뺄 내용을 빼고 더할 부분을 더하기도 한다. 어떨 때는 원래 써두었던 손글씨 초고의 반도 못쓰고 새로 쓸 때도 많다.
짤막한 숫자, 바쁠 때는 나만 아는 기호를 쓸 때도 있고, 갖가지 축산 용어, 은어들로만 뒤덮여있던 사육일지는 버리는 것을 귀찮아하는 내 성격 덕분에 조선왕조실록 마냥 서재 한구석에서 역사가 되고 있다.
매일의 기록은 그렇게 기억이 되고 또 역사가 되었다.
덕분에 요즘도 창밖의 날씨를 볼 때마다, 이럴 땐 축사를 이렇게 해주면 좋을 텐데, 이러면 참 환기가 좋겠구나, 이러면 사료받기가 나쁘겠구나 하는 생각들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기록은 나의 사고방식 일부가 되기도 한다. 나를 돌아보게 해주기도 하고 나를 더 발전하게 해주기도 하고, 전혀 다른 길을 가더라도 나를 더욱 남다르게 빛나게 해 줄 수 있는 선물 같은 게 기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전에 올렸던, 조류독감 음성임에도 방역대 안에 걸려서 예방적 살처분으로 매몰했던 건의 경우도 하루 종일 부슬비를 맞으며 밖에서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해두었다. 모든 자료를 정리해서 담당 직원에게 보내주었더니 "어떻게 이렇게 다 찍었느냐"고 했다. 대부분의 농가 사장님들은 속상해서, 바빠서, 경황이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이런 것을 보내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때 그렇게 이야기했다. "앞으로도 누군가, 우리 회사 위탁농가에서 살처분을 하더라도, 이렇게 진행되고 이런 작업이 있다는 것을 지역 소장님들이 미리 알고 공유해서 숙지해두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진짜 대표이사님이기도 했지만, 무슨 일을 하던지 '마지못해 하는 일'과 '내 일처럼'하는 일은 이런 사소한 기록의 차이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그리고 도움되는 기록이 있기에 우리는 선조의 지혜를 배우고 또 발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오늘도 기록의 소중함을 느끼며 조금씩 사라져 가는 농장의 기억들을 이렇게 다시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