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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Mar 12. 2021

선물.

의미와 관점.

우리 가족은 선물을 주고받는다. 


생일, 크리스마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등등 특별한 기념일에 선물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결혼하고 나서 깨달았다.




선물은 사실 남에게 어떠한 물건을,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이다. 만약 대가를 바란다면 그것은 거래이거나 뇌물이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고 다음번에 그 비슷한 선물을 받지 못해 실망한다고 한다면 애초에 그 선물을 준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고민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받기 위해 주는 것은 선물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나도 실망할 때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어릴 적, 외숙모들은 만날 때마다 선물을 사주셨는데 그래서 나는 외숙모들을 참 좋아했다. 그래 봐야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일 년에 두 번 설 날, 추석뿐이었지만, 늘 잊지 않고 선물을 주셨다. 특히 둘째 외숙모는 항상 문구류를 사주셨는데 어쩌면 지금 나의 문구류 사랑이 둘째 외숙모의 선물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친척을 만나는 것 중에 가장 행복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우리 가족이 본격적으로 선물을 주고받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 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는 그시대 보통의 가장들이 그러하듯이 특별히 자신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90년대에 입으시던 펑퍼짐한 바지를 입으시고, 바쁜 일상에 변변한 취미생활도 없으셨었다. 


그래서 아버지 생신과, 결혼기념일, 어버이 날, 크리스마스 등을 핑계로 어머니와 우리는 아버지가 평소에 필요하실 만한 것들, 주로 최근 유행하는 옷과 신발들을 사드렸다. 그런데 항상 옷 선물만 드리다 보니 또 식상해지기도 하고 특별한 날들은 늘 같은 계절에 있다 보니 특정 계절의 옷만 많아지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항상 아버지 선물을 고를 때는 고민이 많았다.


선물은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고른다는 점에서 나의 관심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물을 주고 나서 "정말 꼭 필요하던 것", "꼭 가지고 싶었던 것"이라거나, "너무 마음에 든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주는 사람도 즐거워진다. 


진심 어린 긍정의 반응을 얻기 위해서는 평소에 받는 사람의 습관, 말투, 소망, 스타일, 취향 등을 잘 담아두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가족 간에도 "그냥 봉투"로 해결한다거나, 함께 가서 "골라보라"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죽하면 "깜짝 선물"이라는 말이 있을까. 요즘에는 거의 유일하게 깜짝 선물만이 받는 사람을 생각해서 주는 사람이 골라둔 선물 같다. 


그런 이유로 나는 봉투를 드리거나 함께 가서 골라보라는 것을 크게 선호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선물을 준다는 것 자체가 아무한테나 주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가족, 지인 또는 아주 고마운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은 정말 내 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나이를 좀 더 먹고 나도 가장의 역할을 하면서 현실적인 선물은 봉투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물론 나를 위한 현실은 아니다. 그렇게 봉투로 받는 돈은 나를 위해 사용하는 일이 드물다. 대부분은 가정의 살림에 보태기 마련이다. 온전히 나를 위한 선물이 아니고, 우리 가족을 위한 선물이 되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그렇겠지만, 나는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늘 마음속에 위시리스트, 즉 일종의 장바구니가 있다. 평소에 마음에 들었던 상품, 필요했던 물품 등의 리스트를 기억해두고 누군가 봉투를 주면 그 물품들을 산다. 누군가의 부담감이 진짜 나를 위한 선물로 바뀌는 순간이다. 정말 필요했던 물건들을 사고 나면 나는 그 물건들을 구매하도록 도움을 준사람들을 기억하며 그 사람들에게 받았다고 기억해두고는 한다. 


평소에도 나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산다. 그런 나를 보며 아내는 늘 한소리 한다. "그런 것 까지 사야 해?" "쓸데없는 것 좀 사지 마" 등등. 사실 이 말도 웃기다. "내가"필요한 것이니 당연히 아내 입장에서야 쓸데없는 물건이겠지만 나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물론 없어도 삶에 지장이야 없겠지만 내가 무엇하러 생존에 꼭 필요한 것만 소비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든다. 


내가 노동하고 소득을 벌어내는 행위는 내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 이며 나는 나를 위한 소비에서 큰 행복을 느낀다. 내가 빚을 지는 것도 아니고 (신용카드가 빚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연체는 안 한다) 부정한 방법으로 그것을 갈취하거나 훔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고생하는 나를 위해서 선물을 주는 것이다. 누군가는 해외여행을 하며 힐링하듯이 나에게 명상이자 힐링이고 웰니스의 방식이다. 웰니스 쇼핑. 괜찮은 콘셉트인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생존을 위한 소비만 한다면 사치품 시장이나 취미, 레저, 여가 생활, 문화, 예술 등의 시장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인간의 문화와 경제 발전은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다못해 생존에 필요한 먹거리도 갖가지 생산 방법과 그 종류에 따라 같은 품목에도 가격차이는 천차만별이다. 


나는 맛집에 가서 줄 서지 않고 수 억짜리 자동차나 수천만 원짜리 시계 수십억 짜리 집을 사지 않는다. 그냥 계절이 바뀌면 옷 한 벌 사고, 신발이 필요하면 신발을 산다. 그리 고가 제품도 아니고 (관리가 까다로워 고가 제품을 선호하지도 않는다) 수십, 수백 켤레를 사는 것도 아니다. 


투기도 하지 않고, 주식도 하지 않는다. 도박도 당연히 하지 않고 골프나 배드민턴을 칠 때 내기도 하지 않는다. 나는 불확실한 것에 무엇인가를 거는 것이 싫다. 나를 위한 소비는 확실한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아마 내가 병적으로 무슨 콤플렉스 때문에 정말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산다면 공허함이 있겠지만 나는 결과물에 대부분 만족한다. 


나는 만족하고 행복한데 지켜보는 사람이 불편하다면 어떤 게 더 불편한 일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소비가 불편한 건가 그런 시선이 불편한 건가. 그런 시선은 온전히 나를 위해주는 마음인 건가 그런 소비를 하는 나를 질투하는 마음인 건가. 


아내는 한 계절에 주로 한 가지 옷만 계속해서 입고, 한 신발만 주로 신는데, 그래서 옷의 수명도 짧고 수선도 자주 한다. 나는 옷을 십 년씩 입다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나눔이나, 불우이웃을 위한 나눔에 내놓는다 또는 무게로 돈을 받고 재활용 업체가 되판다. 그래도 옷 상태는 좋다. 여러 옷을 돌려 입으니 세탁도 자주 하지 않고 깔끔하게 입기 때문이다. 


과연 과소비란 무엇인가. 옷이 세 벌 있는데 두 벌만 주야장천 입고 절대 안 입는 한벌이 있는 게 과소비일까, 옷이 일곱 벌 있고 매일 돌려가며 입는 게 과소비일까.  




라고 아내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마 언젠가는 이 글을 읽겠지.


아버지께 골프, 자전거 같은 취미가 생기시면서 선물 가능한 물품의 범위가 늘어났다. 하지만 연세도 있으시고 사회적 지위도 있으시다 보니 선물 가능한 물품의 가격도 올라가버렸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일 년을 준비하기도 한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아들의 겨울방학에 주간에는 아빠랑 오롯이 일주일을 보내야 하는 아들에게 잘 보이려고 조그마한 공룡 세트를 두어 개 사서 하루에 한 마리씩을 주면서 함께 놀았더니 아들은 지금도 공룡 선물이 매일 하나씩은 나와야 하는 줄 알고 있다. 선물의 의미를 잘못 배운 케이스다. 준 사람의 의도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경우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그 전보다 아빠랑 조금 더 친밀해진 것 같기는 한데 딱히 선물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아마도 함께 보내주는 시간이나 함께 놀아주는 시간일 것이다.


그런데 크고 나니 아버지가 바쁘게 일하시느라 나와 함께해주지 못한 세월도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어떤 마음으로 30년이 넘게 매일 한 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주 6일에 여름휴가도 한번 없이 일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해외여행도 거의 못 가본 양반이 자녀를 유학 보내고 그것 때문에 또 고생했을지 이제 어느 정도 알기 때문이다. 


만약 받는 사람이 부담스러워한다면 그것은 좋은 선물이 아니거나 좋은 의도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조사비는 선물이 아닌 것이다. 받는 것을 기대하거나 사회적 관계성을 위해 주고받는 겉치레인 것이다. 또한 상대방의 선물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꼭 비슷한 것으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부담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결국 최고의 선물은 마음이다. 되돌려 받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오롯이 주고자 하는 마음. 받는 사람만을 생각하는 마음. 무엇이 필요할지,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하는 마음. 내 시간과 곁을 내어주는 마음. 들어주고 공감하는 마음.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마음. 받는 사람의 행복만을 바라는 마음. 보고 싶었던, 그리웠던, 그리고 반가운 그 마음. 내가 그런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본다. 


내가, 나의 일이, 내 자녀가, 내 자녀들의 업적이 세상에 그런 선물이 되기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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