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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 Jun 28. 2021

콩국수 달인 남편의 손님 초대 퍼포먼스

소리로, 눈으로 느끼며 콩국수 먹기  


토요일 오전, 부엌이 소란스럽다.

다른 날 같으면 가볍게 산에 다녀온 후 여유 있게 쉬고 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다.

남편이 초대한 손님이다. 남편은 카톡으로 초대의 운을 띄우며 메뉴를 미리 공지했다.


"내일 퇴근하며 우리 집에서 콩국수, 파전(정확히는 부추전이다)에다 막걸리 한잔 어때?"


자영업자로 토요일 오전까지 일을 하는 친구 부부를 점심 같이 먹자고 초대한 것이다.


"좋지. 막걸리는 내가 사갈게."  


금요일 밤에 남편의 손님으로 낙점된 친구는 바로 화답했다.


누가 오든 가족이 아닌 손님이 와서 밥을 같이 먹는 건 부담이 되는 일이다. 몇 주 전부터 친구네 한번 부르자고 남편은 몇 번 말했다. 아무리 간단하게 점심을 먹는다고 해도 조금 부담된다고 망설이자, 남편은 요리는 자신이 다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메뉴도 자신의 특기 메뉴로 선정했다.


수제 콩국수


금요일 밤부터 불린 콩을 아침에 삶고, 찬물에 씻어서 건져놓는다. 너무 많이 삶지 않는 게 포인트다. 국수 삶듯 넘쳐흐르려고 할 때 찬물을 부어서 가라앉히기를 세 차례 반복한 후 찬물에 헹군다. 콩껍질이 조금 남아 있어도 괜찮다. 원래 모든 껍질에 영양소가 그득하지 않은가. 그렇게 삶은 콩을 준비해둔다.


플레이팅을 위해 오이, 수박, 삶은 달걀을 준비한다. 오이는 가늘게 채 썰고, 수박은 취향껏 썬다. 길쭉하고 고르게 썰면 모양이 괜찮다. 달걀은 아침식사용으로 삶아놓은 게 마침 있다. 이렇게 준비해놓는다.

고명으로 올릴 오이와 수박. 2인분으로 준비한 것이다. 친구 초대 때 못 찍은 사진을 우리 부부만 먹을 때 다시 찍었다.


친구가 온다는 오후 1시 30분에 맞춰서 국수를 삶는다. 막 삶아야 맛있으니 1시 10분부터 물을 끓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국수를 넣어서 끓어오르려고 할 때 찬물을 붓기를 두 차례, 한두 가닥 건져서 알맞게 익었는지 맛을 한번 보고 찬물을 틀어놓은 채반에서 바로 씻는다. 찬물에 담가서 씻는 레시피는 무시하고 스테인리스 채반에서 흐르는 물에 씻어서 국수를 준비한다. 그렇게 삶은 국수는 면기에 담아놓는다.


삶은 국수는 스테인리스 채반에서 찬물을 틀어놓고 바로 씻는다. 면기에는 국수를 담아놓을 때 생각보다 적다 싶게 담아야 한다. 양을 가늠할 때 항상 너무 많아 먹기가 어려웠다.

 



소리로, 눈으로 먹는 콩국수


탄산이 가득한 특제 막걸리 복순도가를 들고 남편 친구 부부가 시간 맞춰 현관 벨을 누른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거두절미하고 바로 식탁에 앉힌다. 우선 부추전을 내놓는다. 부추에 청양고추, 오징어를 넣어서 부침개를 만들었다. 부추전도 오늘의 셰프가 잘하는 요리 중 하나다.


다음은 오늘의 필살기 콩국수다. 준비해놓은 면기 안의 국수, 고명으로 올릴 오이와 수박, 삶은 달걀을 아일랜드 식탁에 올려놓은 뒤 콩국수 달인이 되려고 하는 오늘의 셰프가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요리의 정성과 신선도를 바로 느끼게 하는 오늘 요리의 화룡점정, 콩 갈기 퍼포먼스다.

   

콩을 갈기 시작한다. 곱게 갈아야 목 넘김이 좋다.


갈면서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고 입자가 고운지 확인한다. 남편은 잘 갈렸는지 숟가락으로 떠서 맛을 보며 입자를 확인한다. 곱게 부드럽게 가는 게 포인트다. 거칠면 목 넘김이 좋지 않다. 맨 마지막에는 얼음을 넣고 다시 한번 간다.


"와~~!!!"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온다. 관객들이 매너가 좋다.


바로 간 신선한 콩물을 국수를 담아놓은 면기에 붓는다. 믹서로 곱게 갈아도 맷돌로 간 듯한 콩의 입자를 느낄 수 있다. 수제답다. 거기에 오이, 수박, 삶은 달걀을 올린다. 초록, 빨강, 노랑이 조화를 이룬다. 그 위에 통깨를 뿌린다.

 

콩국수는 이렇게 소리로, 눈으로 먹는다. 청각, 시각, 미각이 합쳐져 맛이 배가된다.

어제 우리 부부끼리 먹은 콩국수에는 삶은 달걀이 없다. 달걀이 없어도 맛있다. 삶은 달걀은 맛보다는 플레이팅에 더 필요하다.


콩국수와 부추전에 막걸리 한잔. 손님 초대 요리로는 빈약할 수 있지만 오늘의 손님 접대를 오늘의 셰프가 전부 맡기로 해서 나는 마음이 편하다. 옆에서 주방보조일만 한다. 재료 준비하고 설거지 하는 게 내 몫. 셰프가 자신의 수제 콩국수 요리에 자신감이 넘치니 손님들도 분위기에 휩쓸린다. 맛을 설명을 한다. 콩의 고소함, 국수의 쫄깃함, 오이의 아삭함, 수박의 달콤함을 일일이 표현한다.

나는 애플파이를 디저트로 준비했다. 너무 심플한 메인 요리를 조금은 뒷수습하고자 하는 의도다. 커피와 함께 애플파이 먹으며 숲 다니는 이야기를 실컷 하고 런치가 마무리된다.

   




1주일에 한 번은 먹어줘야 한다


밋밋한 맛에 별로 호감이 없던 나는 콩국수가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찾아서 먹고 싶지는 않았다. 여름이 오면 한두 번 정도 계절메뉴로 먹어도 괜찮은 정도였다.


하지만 남편에게 콩국수는 매우 좋아하는 여름 특별 메뉴였다. 각자 밖에서 점심을 먹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자주 콩국수를 먹는지 몰랐다. 하지만 집에서 콩국수를 만들어먹기 시작하면서 한주에 한 번은 먹는 메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국수를 한주에 한 번은 꼭 먹는데, 그게 여름이 되면 콩국수가 되는 것이다.


남편이 중년이 되면서 하나 좋아진 것이 있는데 그게 집에서 요리를 시작한 것이다. 메뉴가 매우 한정적이기는 해도, 몇 가지를 집중해서 좁고 깊게 파고 있다. 봄에는 쑥떡을 만들고(쑥떡 찌는 게 일도 아닌 아저씨 (브런치 글) 겨울에는 김치찌개를 끓인다. 여름 특별 메뉴로 선정된 것이 콩국수였는데, 한번 먹기 시작하면 주야장천 먹는 그의 성향에 맞게 우리는 1주일에 한 번은 콩국수를 먹게 되었다.


가족들이 콩국수를 대하는 자세가 점점 심드렁해지는 것을 모르는지, 무시하는지 잘 모르겠다. 얻어먹는 처지에 좋네 아니네 가타부타하지 않고 적당한 감동의 메시지를 날리며 요리에 대한 의욕을 유지토록 동기부상열차에 태우는 게 나의 일이다.  


시작은 두부가게에서 파는 콩물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콩국수는 콩물이 다한거나 마찬가지라는 걸 알고 있는데, 그 콩물을 쉽게 살 수 있다는 걸 알면서 식당표 콩국수가 아니라 홈메이드 콩국수 시대를 맞게 된다. 남편은 국수를 삶아서 콩물을 부은 후 오이 등 몇 가기를 고명으로 올리는 콩국수를 만들었다. 그것을 가족에게 먹이다가, 자신의 요리 솜씨에 한껏 도취되어 대상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손님을 초대해 "맛있지?"하고 물으면

 

주말부부로 지낸 기간에 주로 혼자 있었기 때문에 남편은 점심이든, 저녁이든 시간이 되면 주위의 여러 사람들을 집에 데리고 와서 콩국수를 해 먹였다. 직장 후배나 동료들, 고교 동문 선배들, 대학원 동기들, 친구들....

요리를 하는 사람이 스스로 워낙 맛있다고 하기 때문에 같이 먹는 사람이 맛없다고 할 틈이 없다. 콩국수만 먹였는지, 반찬은 뭘 냈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알아봤자 무안할 가능성만 높아질 수 있다.  


올해부터 홈메이드 콩국수가 한껏 업그레이드되기 시작했다. 콩을 사다가 콩물을 만드는 진정한 수제 콩국수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콩을 사면서 콩 파는 할머니에게 어떻게 삶는지 물어본 남편은 너무 푹 삶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저녁에 물에 불린 후 아침에 삶으면 금방 삶을 수 있다. 한번 삶아놓은 콩은 두세 번 나눠서 먹는다. 삶은 콩이 김치냉장고에서 항상 대기하고 있으니 콩국수 만들기가 더 쉽다. 믹서기만 꺼내면 된다.


고명으로 올리는 것들도 다양한 시도가 이뤄진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오이다. 그 외에는 무엇을 올리든 괜찮다. 여름 별미 콩국수에는 여름 최고의 과일인 수박이 가장 좋고, 대용으로 참외나 사과도 올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콩, 국수, 오이이고 다른 콜라보는 셰프 마음대로다.


여름이 이제 시작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는 벌써 10회 이상 콩국수를 먹었다. 수제 콩국수 달인이 돼가고 있는 남편은 "맛있지?" 하고 매번 묻는다. "맛있어?"가 아니다.


수박을 먹으며 말한다.


"달콤하게 같이 씹히는 이 맛이지!"


오이를 국수와 함께 먹으며 말한다.


"아삭한 게 오이와 콩국수는 정말 잘 어울리지?"


국수가 항상 많다. 콩국물을 남기면 안 된다. 너무 소중한 콩물을 남기는 일이 하늘이 두쪽이 나도 있을 수가 없단다. 국물을 남기면 국물도 없다는 자세로 남편이 감시하고 있다. 콩국수 먹는 여름이 아직 많이 남았다.


   

오이, 사과, 참외, 삶은 달걀을 올린 콩국수. 아삭한 식감이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 올려보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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