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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행복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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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 May 23. 2021

애 키우고 일까지 했는데 바보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나 홀로' 불능 아줌마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뭐지?" 하고 스스로 물어보았다.


그냥 하면 웬만한 일은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밥해먹기, 책 읽거나 글 쓰며 시간 보내기, 잠자기.... (리스트가 초라하다)


그렇다면, "내가 혼자서 잘할 수 있는 게 뭐지?" 하고 다시 물어보았다.


혼자서 잘하려면 기쁘게, 기꺼이, 알차게, 신나게 해야 할 텐데.......


골똘히 생각해봐도, 혼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정말 없다. 이럴 수가.


내가 바보가 되었다.






혼행이 부러운 초라한 찐 모습


대면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들이 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내가 돼버린 나의 초라하고 누추한 모습들.


가끔 제가 잘난 듯, 뭐 좀 아는 듯 떠들어대고 있지만 실상은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28년 차 주부로 살면서 부딪히며 얻은 것도 많지만, 가족과 연결되었던 끈끈한 관계 안에 머무르면서 정서적 의존성은 나를 집어삼킨 채 꼼짝 못 하게 해 놓았다.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즐기지 못하는 의존적인 아줌마로서 쪼그라들어 있었다. 내가 제일 싫어했던 부류의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혼밥부터 혼술, 혼영(혼자서 영화보기), 혼행(혼자서 여행하기), 혼생(혼자서 생일 즐기기)까지 다양한 혼자 시리즈가 등장하고 있다. 그런 트렌드를 접할 때마다 나는 훔쳐보듯 흘깃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특히 혼자서 여행하는 영혼들에 대한 부러움은 높고 높았다.


'저렇게 혼자서 즐거이 저런 것들을 해내는 멋진 혼자들이라니, 넘사벽이야!'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무능한 인간은 아니었다.

살다 보니 이렇게 되어 있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 초 주말부부 생활을 7년 정도 했다. 결혼한 후 2년 좀 넘어 큰 아이를 낳았으니, 2년 정도 주말을 빼고는 혼자 살았다. 일을 하고,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고, 집에 오면 쉬는 등 아무런 불편도 불만도 없었다. 결혼 전에 좁은 집에서 내방 없이 생활했던 터라, 결혼 후 혼자서 생활할 수 있는 시간을 오히려 즐겼다. 저녁에는 학원을 다니는 등 뭘 배웠다.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더 만나고 싶지만 술이 너무 과한 듯해서 절제해야 했다. 그냥 쉬어도 좋았다. 주중 시간이 너무 빨리 갔고, 주말은 자주 오는 것 같았다.


다시 혼자 생활했던 시간을 따져보니, 근래 2년 반 정도 된다. 출퇴근을 할 수는 있지만 매일 하기에는 벅찬 90km 거리의 타 도시에 취직을 한 뒤로 2개월 정도 출퇴근을 하다, 사택에 자리가 나서 들어갔다. 주중에 한 번쯤 오가기도 했지만 다시 주말에만 만나는 주말부부 생활로 돌아간 것이다. 전생에 복을 많이 쌓아야 가능하다는 중년 이후 주말부부가 되었지만, 복은 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이제 나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일을 하고, 직장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집에 오면 쉬기는 했는데 좋고 편안한 느낌이 아니다. 다만 쉴 뿐 아무것도 안 한다. 책 읽다가 졸다가 깨서 잠을 못 이루는 시간을 반복한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그냥 퍼질러 있는 건 쉬는 게 아니다. 어슬렁거리면서 쉬는 것도 다 전략이 필요하다. 아무 생각 없이 오래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건 휴식의 만족도를 떨어뜨린다. 만족도를 높일 의욕이 없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혼자이기 때문이다.




미루고 미루다 보니, 사라진 감각


아이를 키우며 얼마나 기다렸던가. 빨리 키우고 혼자서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그런 홀가분하면서도 독립적인 생활 말이다. 막상 그것이 주어지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정서적 공감대를 나눌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혼자서 뭘 즐기는 감각이 사라져 버렸다.


아이를 임신하고 배가 불러오며, '애만 낳아봐라' 하고 뱃속의 아이가 밖으로 나오기만 해도 너무 가벼워질 것 같았다. 막상 아서 키워보니, 애가 젖을 떼고 밥을 먹을 수만 있다면, 걸을 수만 있으면, 말만 해도, 기저귀를 뗄 수만 있으면 훨씬 가벼워질 것 같았다. 애가 커가며 다른 질감의 무게와 책임이 뒤따랐다. 학교만 보내면, 고학년만 되면, 초등학생이 지나면, 고등학생이 되면, 대학에 가면....... 계속 내가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시간이 미뤄졌다. 긴 시간 동안 항상 해야 할 일이 늘어서 있고 바쁘고 부대끼고 복작거리며 살았다.


20년 이상 그렇게 아이를 키워내는, 가족을 돌보는 시간 속에 있었다. 직장에 다녔지만 일 이외의 것은 거의 다 내려놓아야 했다. 회식이나 저녁 미팅은 참석은 하되 중요한 것들만 골라 참석해야 하고 시간도 조절해야 한다. 일로 맺어진 관계를 키울 수 있는 시간이나 노력, 관심이 갈수록 줄어든다.


일하는 엄마들은 전업주부에 비해 정서적 관계가 더 가족 안에 갇히기가 쉽다. 직장과 집을 오고 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낮 시간에 다른 정서적 교류를 하는 친목집단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생활로 폭넓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일과 가족밖에 없다. 일은 정서적 만족감과 거리가 있고, 정서적 관계는 가족의 테두리 속에만 머무르게 된다. 더 심각한 바보 아줌마가 되기 십상이다.

 



고독에 꽂혔는데 고독이 무섭다


나를 둘러볼 시간은 없고 해야 할 일은 많은 상태가 계속되자, 나는 '고독'이란 말에 너무 솔깃해지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앙드레김의 인터뷰 기사를 신문에서 보게 되었다. 특유의 붙임 머리에 하얗고 화려한 옷을 입고 다녔던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김은 고독을 언급했다. 그의 고독은 외로움과는 다르며, 매우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상태와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고독을 선택하고, 고독을 즐기는 고고한 사람이라고 했다.


멋있었다. 헤어스타일, 패션 스타일 모두 특이한 데다 그때는 매우 드문 눈 화장까지 한 남성이었던 디자이너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독'으로 워딩 함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왁자지껄함과 분주함 사이를 오가며, 할 일과 해야 할 일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다 보면 "고독이 저만치 가네~~" 노래 부르듯 선망과 부러움의 눈길만 던지게 된다. 그렇게 복닥거리며 사는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면 고독이나 외로움이라는 것은 도저히 만들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먼나 먼 나라 얘기가 된다. 번잡함 주위만을 맴돌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방부 시계처럼, 육아 시계도 더디지만 꾸준히 흘러갔다. 두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하나씩 떠나갔다. 오래전부터 빈 둥지 증후군 같은 말을 접할 때마다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새끼들이 날아가버린 호젓한 둥지를 반길지언정 증후군 같이 정서적 문제가 될 일이 없었다. '얼른 와, 빨리 와' 하고 재촉했으면 했지 두려움이란 있을 수 없었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 실컷 하고 남편과 둘이 재미나게 살면 되었다. 실제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남편이 없는 시간은 삭제된 시간처럼 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주말부부로 살며 주중 저녁 시간을 하염없이 빈둥거리던 나는 주말에 남편이 혼자서 운동을 하러 나가든지 하면 같은 방법으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TV 앞에서 바보같이 앉아 있었다. 뭘 하고 싶지가 않다. 집안일도 의욕이 나지 않는다. 먹는 것도 귀찮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남편을 포함한 가족이 없는 나 혼자의 시간은 힘이 없고 온기도 없다.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외로움의 시간인 고독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이 확실하게 마련되자, 겁을 잔뜩 집어먹은 꼴이 되었다. 노예해방을 맞이하고도 상당수의 노예들이 다시 예속된 환경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역사 속에서나 있는 일이 아니다. 날개를 달고 있으면서도 날 수 없다고, 나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징징대는 아줌마가 내 안에 있었다.      




아름다운 비밀의 정원 속으로 들어가기


"행복한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며 인생의 아름다운 비밀을 만들어가지."


존 블룸버그의 <카르페 디엠> '깨닫는 자에게 오늘 하루는 얼마나 특별한가'란 챕터에 나오는 말이다. 행복훈련에 몰두하고 있는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표현에 꽂힌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혼자이든 같이이든 항상 현재를 즐겨야 한다는 게 맞을 것이다. 더 정확한 표현은 굳이 즐기려고 하는 것조차 욕심이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잘 보내는 것이다. 그저 그렇게.




"혼자는 외로워"하고 두려워하는 나에게 위로를 던져본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괜찮아."

 

"혼자면 어때!"하고 용기를 내보는 나에게 말해본다.

"그래, 뭐라도 상관없지. 그냥 해보는 거지, 뭐."


<카르페 디엠>에서는 다음과 같이 아름다운 비밀의 정원에 대한 느낌을 말하고 있다.

나도 아름다운 정원으로 들어가 보겠다.

비밀들이 만발하기 시작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설렘으로 정원을 걷겠다.

  


잭은 먼저 블라인드 작은 틈새로 흐르는 바람의 노래를 들었다....
잭은 마음이 즐거워졌다....
잭은 점점 평온해졌다....
정녕 인생은 아름다웠다.
 
"잭, 생의 아름다운 비밀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요."
 
잭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손과 눈, 마음 끝에서 아름다운 비밀들이 만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만발한 비밀의 정원으로 희망이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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