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티 May 17. 2021

비를 쫄딱 맞은 날

비 맞은 김에 비 구경 실컷

비 멍 때리기, 콜?


우리, 갇히고 싶지 않잖아요?

갇힌다는 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가 나를 가두고 있는 거니까요.

속박됨 없이 훨훨 나는 존재이고 싶으니까요.


비에 갇히고 말았네요.

작은 우산 하나만 있어도 빗속에서 자유로운데

그게 없으니, 꼼짝없이 오도 가도 못하고 있어요.

비 좀 맞으면 어떻다고 이러네요.


이게 웬일이래요?

비에 갇혀 비를 보고 있으니

비가 어떻게 자연을 만나는지 찬찬히 볼 수 있네요.

디테일하게 보고 달리 보니 새로운 것들이 거기에 있었네요.


빗소리가 숲을 뒤덮어요.

나무를 흠씬 적시고 연못의 키를 높이는

촉촉한 소리가 오락가락 장엄하기까지 변주를 계속해요.

이 소리가 물릴 수도 있을까요.


그냥 바라보기로 해요.

감동을 언어에 담는 한계만 드러나니

표현을 멈추고 그냥 만나기로 해요.

응시와 기쁨 사이에 가만히 있기로 해요.




비와 비 사이 숲 산책

 

지난 주말은 일찍부터 비 소식이 있었어요.

토요일, 일요일 모두 비가 온다고 하고 강우량도 제법 된다는 소식이었어요.


토요일 아침 일어나니 역시 비가 오네요.

아침 숲 산책은 포기하고 편안히 멀리서 바라보기로 해요.

그런데 오후에 잠깐 비가 그쳤어요.

이때다 싶어서 숲으로 갔지요.


멀리서 바라보는 숲은 잠깐씩 '구름에 잠긴 진경산수화' 못지않은 풍광을 보여주었는데요.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역시 안개에 휩싸여 있네요.


비와 비 사이 숲은 다이내믹합니다.

짙은 안개가 나무를 감싸서 무릉도원인 듯 몽환적이다가, 어느새 안개가 서서히 걷혀 말간 모습을 보이다가 다시 안개에 휩싸이는 변화를 보여줍니다.

안개가 물결치듯 밀려왔다 가기를 반복합니다.

 



피할 줄 알고 다시 숲으로


일요일도 아침부터 비가 내립니다.

아침식사로 감자를 껍질 벗겨 보슬보슬하게 삶고, 식빵에 모차렐라 치즈와 짭짤이 토마토를 얹어 프라이팬에 굽습니다.

커피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며 음악을 듣습니다.

저희 집은 일요일 아침에 식사하며 '선데이 모닝(sunday morning)'이라는 곡을 꼭 한 번은 듣는데요.

여유롭고 편안한 휴일 아침 느낌이 그만이지요.

첫 부분이 제일 좋아요.

가사와 꼭 맞는 날이네요.

"sunday morning rain is falling.........."


유튜브로 마룬 파이브 '선데이 모닝' 듣기


아침식사 후 느긋하게 쉬다 보니 잠깐 비가 그쳤어요.

토요일 오후처럼 생각하고 다시 숲으로 길을 재촉합니다.

오늘도 비가 오는 사이 틈을 타서 숲에 다녀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길을 나섰어요. 우산도 없이


그런데 채 30분이 넘지 않아 비를 만나고 맙니다.


나무들이 울창한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비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피할 수 있는 비가 아닙니다.

세차게, 억수같이 내립니다.

결국 비를 쫄딱 맞으며 숲을 내려옵니다.


숲 산책 길 중간쯤에 있는 연못까지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그곳에 가면 지붕이 있는 벤치가 몇 군데 있기 때문입니다.

연못에 도착하니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립니다.


   



비를 오감으로 느끼는 날


비를 제대로 맞아서 머리카락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집니다.

가볍게 입은 반소매 티셔츠는 배의 굴곡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찰싹 달라붙습니다.

허벅지는 이미 젖고 신발에서는 서서히 물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래도 좋기만 합니다.

이미 젖었으니 겁날 게 없습니다.

비 맞은 김에 비 구경이나 실컷 할 작정입니다.

아직 갈길은 남아 있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붕 얹은 벤치 옆에 서서 나무를, 숲을, 연못을,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장관도 이런 장관이 없습니다.


같이 비 구경하시지요?

쫄딱 비 맞고 만든 영상입니다.

 


모네의 수련을 닮은 연못의 수련도 비를 즐기고 있습니다.



연못은 비를 안으며 동심원 만들고, 물방울 내고, 가끔 다이아몬드 같은 작은 방울도 보여줍니다.


연못 옆 어느 문중의 사당(祠堂) 기와들은 시원하게 목욕재계(戒)합니다.



실컷 비를 느끼는 시간입니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좋을 시간입니다.

숲의 향기가, 비의 비릿함이 전해집니다.

눈으로 귀로 코로 느껴도 좋은데, 피부로까지 느끼니 오감 충만입니다.

감각세포를 일깨우는 그런, 비 오는 날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