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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정벌레 Jul 05. 2022

다음 능선으로

네 생각을 했다. 

어느 분기점에서, 생각이 꺾이는 사이의 진공점에서 네 생각을 많이 했다. 

즐거울 때, 힘들 때, 무너져 내릴 때, 네 생각이 났다.

모든 것을 나누던 너에게, 내 가장 여린 부분도 내어 보일 수 있었던 너였으니까.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궁금했을 때도

그것조차도 너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헤어져서 아팠을 때,

그 마음조차도 너에게 이야기하고 위로받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럴 수 없었으니 

많이, 마음이 아팠고 무너져 내렸다. 

그것을 나는 아주 여러가지로 생각해야만 했어서, 

어떤 원인과 이유가 필요했던 날들이 있었다. 

사랑했던 네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아 주로 내 탓으로 돌리고, 

그게 늘 되지는 않아 가끔 네 탓으로 돌리고, 

때론 세상과 운명 탓으로도 돌렸다. 

지나고 보면 세상까지 개입할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주 많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어떤 날에는 이런 질문에도 도달했었다. 

지금은 없는 행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까? 하고. 

그런 기억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건지

아니면 지나가버린 시절을 기억해야 함에 슬퍼야 하는 건지 

그것이 나에게 나쁜 건지 좋은 건지도 판단이 서질 않았다. 

하나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늘 두 세개의 질문이 따라 붙어서 생각은 끝이 나질 않았다. 

 

그런 날들이 있었다.

그런 질문들이 많았던 것은 분명하다.


살면서 정의하고 판단해야 할 많은 것들에 

압도되는 날이 많았다. 어쩌면 무섭고 두려웠던 날들에 

너의 도움을 받았었다. 

너는 때로 답을 주었고, 답이 없는 질문들에는 내게 용기를 주었다. 


여전히 많은 질문들이 있고, 이 순간에도 새로운 물음들이 생겨나고 있다. 

어떤 질문들은 금방 해답이 찾아지지만, 

많은 것들은 답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쌓여야 하고

또 답이 필요하지 않은 질문들이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너에게서 비롯된 많은 질문들은 사라졌다. 

무언가에 대한 질문이 생각나지 않게 되면 잊게 되는 것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혼자가 되어 외로운 생각을 하던 어느 날 한 가지 답을 얻었다. 

난 모든 것에 대해 

스스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혼자서 세상살이를 연습하는 것이라고. 

혼자인 것은 외로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고, 

혼자서 내려야 할 고독한 결정들이 있다는 것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배워가는 것이라고. 

1인분의 인생을 책임감있게 꾸리는 것을 기본으로 

맞닥뜨려보지 않은 일에서 당장 누군가에게 연락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선택에 대해 자책하지 않는 법과 

혼자 있을 때만 우는 법과 

어색하지 않게 침묵을 즐기는 법 같은 걸 말이야. 


그러니까, 

어떤 일들은 여전히 모르겠어도 괜찮은 거야.  

알고서도 하는 일도 많으니까. 

똑같이 되풀이되어도,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일들도 있을거야. 

나쁘다고 생각했어도, 억지로 지워낼 수 없었으니

똑같이 그저 끌어안고 우는 것밖엔 할 일이 없겠다는 걸 

알면서도 또 할 수도 있을거야. 


그런데 말이야, 

이제는 여기서 생각할 만한 질문들이 더 없는 것 같아서 

다음 능선으로 걸어가기 시작한 것 같아. 

이 골짜기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나는 

여기를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에 답했고 이제 내게 남은 질문이 없다는 걸 알았어. 

그러고 나니 다음 골짜기가 궁금해졌어. 


다음 능선에서도 할 만할 거야. 

괜찮을 거야. 

어느 지점에서든 어느 시간에서든 

더 많은 질문을 가지며 나아갈거야. 


마지막으로 이곳을 돌아보니, 

이제는 가야겠어.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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