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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드만의 작은 서재 Mar 28. 2024

[리뷰] 도시의 흉년 3 - 박완서

탈출이 아닌 탈피


1,2권에서 암시했던 모든 것들이 마치 해일이 한순간에 해안을 덮치듯 그렇게 덮쳐 결국 지 씨 일가는 파국을 맞게 된다.
술에 취한 수빈을 달래는 모습이 마치 할머니의 저주인 쌍둥이 상피처럼 비치고 그 모든 재앙을 혼자 감당하게 된 수연은 결국 아버지의 첩과 혼외자식 그리고 그 절음발이 여자의 가족들의 정체를 모두에게 알린다.
엄마는 적반하장 격으로 그들에게 호되게 당하고 결국 정신을 놓게 된다. 결국 돈암동의 그 거대 주택은 흉년이 들은 폐허와 같은 상징적인 곳이 되고 만다.

탈출이 아닌 탈피. 증오했던 부모들의 삶이 없지만 그것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굳건한 그 껍데기에서 멋지게 탈피하는 것이 지수연의 목적이었지만 그 껍데기는 그저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했고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제대로 된 행복과 정의에 포식해보지 못한 채 그저 바라만 보고 , 학습된 행복과 정의를 갖고 살아가고 있는, 천장에 매달린 굴비를 바라보고 배부르다고 느끼는 구두쇠의 자식들과 같은 우리들이라는 현실이 공감이 되면서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결국 구주현과 낙향을 결심한 지수연.
흉년의 헐벗음에서 벗어나 풍요로운 진정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기를..
시대가 많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허기를 달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 포만감이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뭐니 뭐니 해도 부자의 가장 큰 매력은 가난 뱅이가 아무리 힘들게 발버둥 쳐가며 지키려 해도 지키기 어려운 인간성을 그들은 힘 안 들이고 수월하게 지킬 수 있다는 거였어. 넌 아 마 잘 모를 거야. 내 말뜻을 넌 가난이란 게 사람에게서 오로지 인두겁만 남겨놓고 모든 사람다움을 얼마만큼 샅샅이 짓밟는다는 걸 모를 테니까. 그거야말로 가장 큰 악덕이지. ( p. 28)'



'식욕이 한 번도 포만해보지 않은 채 미리 겪은 싫증, 허기진 식상, 나는 감히 우리의 친애하는 총장님과 장엄한 위용을 갖추고 늘어 앉은 교수들의 옛날이야기 속의 구두쇠처럼 여기진 않았지만 '자유'와 진리'라는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우리가 그것에 얼마나 허기진 채 식상하고 있나를 느끼고 있었다.
마치 허구한 날 굴비를 쳐다보고 입맛만 다시는 것으로 식상한 온순하고 불쌍한 구두쇠의 자식들처럼. 식상하기 위해선 행복한 시식이 있어야 한다. 만족스러운 포식을 거쳐야 한다. 그걸 거치지 않은 채 도달한 허기진 식상의 불행감을 통해 나는 우리 세대의 불행을 쓰디쓰게 음미하며, 옛날 옛적 구두 쇠의 자식들의 불행과도 만나고 있었다. ( p. 105)'



'내가 꿈꾼 자유는 결코 가출이 아니라 탈피였다. 완전한 탈피를 위해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뱀이 허물을 벗을 때, 벗어 버린 허물도 온전하고 자기의 몸도 온전하기 위해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속살도 나오기 전에 조급하게 허물을 뜯어내선 안 된다. 나는 엄마 아버지의 삶의 양식을 증오했지만 그것이 와해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나는 그것을 조금도 다치지 않고 거기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뱀의 허물이 아무리 온전해도 뱀에게 무용하듯이, 그것이 나에게 무용한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꿈꾼. 나를 에워싼 거짓된 삶의 방법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앙갚음이었다. 나의 자립의 꿈도 이런 꿈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p.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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