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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드만의 작은 서재 Apr 04. 2024

[리뷰] 사라진 것들 - 앤드루 포터

사라진 것 &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것

 '앤드루 포터'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화제가 되었던 작가인데 그 책을 아직 다 읽지 않은 채 새로운 신간을 먼저 읽게 되었다. (새것만 좋아하는 어린아이처럼) 

짧은 단편을 포함해서 열다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야기들이 길지 않아 과연 이 짧은 이야기들 속에 어떤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을까 궁금했는데 마치 이 모든 얘기가 연결되어 있는 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물론 인물들이 연결이 되어있는 그런 연작소설은 아니고 각각의 다른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40대 중년 남성으로 예술계에 종사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중년의 삶 - 어설프지도, 그렇다고 완전하지도 않은 불안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을 살아가며 현실에 발 붙이기 위해 노력한다. 예술계에 종사하기에 더  일반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다양한 내면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현실을 살아내면서 번민하지만 인생에 정답은 없고 다만 나에게 맞는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져 가는 것들. 함께했던 사람들, 이루고 싶었던 꿈들, 여러 추억들. 물론 사람이나 꿈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강해지기도, 퇴색되기도 하기에 사라진다는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얻는 것도 있지만 포기하고 타협하는 것들이 더 많아지기에 그렇게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아쉬워하기도 하고, 그것을 통해 성숙해가기도 하는 우리의 삶의 이야기이다.
앤드루 포터의 작품들은 잔잔한 일상의 파문과도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잔잔함에 편승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이어서 좋아한다.


'눈물을 불러온 것이 무엇이었는지 정말로 모르겠어. 어쩌면 요즘 우리 생활의 압도적인 피로가 그간의 정신없던 하루하루가 마침내 내 뒷덜미를 잡아서일까, 아니면 오루호가 독한 술이어서일까. 그도 아니면 그저 추위와 미닫이 유리문 너머에서 깊이 잠든 당신 모습. 그것이 주는 어떤 상실의 감각 때문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단순히 그렇게 오랜만에 -그제야 깨달았지만, 사 년 만이었어- 담배에 불을 붙여놓고는 연기를 들이마시기도 전에, 담배 연기를 폐 속으로 빨아들이기도 전에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이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걸, 당연히 그 담배에서는 -지금껏 흘러온 시간만으로도 쿰쿰해지고 마르고 쪼그라든 그 담배에서는 - 내가 기억하는 맛이 전혀 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p28 '담배'中)'


'지금까지 여러 달을 지나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기다려온 것만 같았다. 이 회색 지대를 부유하면서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는 채로 모든 결과를 조마조마 걱정하고,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요즘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을 견디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p92 '첼로' 中에서)'
'"부모가 되면 사람이 바뀐다 어쩐다. 다들 얘기하잖아요." 린지가 말했다. "뭐, 물론 그렇긴 해요.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흔히 떠올리는 변화와는 다를 뿐이죠. 뻥 뚫린 마음이 채 워진다거나 하진 않아요. 무언가를 해결해주진 않죠. 그저 달라질 뿐이랄까요? 때로는 더 좋게, 때로는 더 나쁘게.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전과 다르게." (p181 '실루엣'中)'
'"영화의 끝부분에는 여전히 희망이 있잖아요. 그 사람들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직은 모른다고요. 그 사람들이 더 좋은 삶을 찾을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어요." (p282 '히메나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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