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어가는 산책과 같은 책 읽기
이 책의 전작(?)인 <책은 도끼다>를 2012년에 읽었다. 책을 마음의 양식이니, 미지의 세계니, 영혼의 동반자니 뭐 이런 표현으로만 익숙하게 생각했던 내게 '도끼'라는 표현이 너무도 강렬했기에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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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냐.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카프카('책은 도끼다' p129)
카프카의 표현이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고 마구 읽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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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읽기, 독서에 대한 생각을 조금 정리해 보게 되었다. 무조건 활자중독증인 사람처럼 읽어나가기만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 익히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읽는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에 읽는 것만으로 만족하면서 책 읽기를 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한 달에 몇 권, 일 년에 몇 권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가 중요하다는 모토로 읽고 있는데, 더 나아가 그것들이 내 안에 들어와 내 것이 되고 체화가 돼서 내 삶에 변화를 주어야만 그것이 참된 책 읽기라는 것, 다시 한번 주위를 환기시켜 주는 시간이 되었다.
이번에 이 책에서 소개한 책들을 통해 이제는 왜 읽느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읽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천천히, 문장을 음미하고 그 문장을 누구의 해석이 아닌 나만의 해석으로 내 것을 만들어 가는 것, 작가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여 활자화해 놓은 사상이나 철학, 가치관들을 독자인 내가 해독하고 깨부수어 그것들을 다시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
그것이 바로 책 읽기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다.
나는 소설책 읽기를 좋아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기에. 하지만 그것을 그저 재미로 보고 지나치기보다는 그 소설 속의 인물이나 상황을 통해 나를 반영하고, 느끼고, 배우고, 버리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을 통해 나를 살찌우고 불필요한 걱정거리들은 날려버리는, 그래서 내 삶을 조금은 더 풍성하게 만드는.., 그래서 책 읽기는 멈출 수가 없다.
고전과 읽기 힘들었던 책들을 하나씩 천천히 읽어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밀란 쿤데라의 <농담>부터 천천히 펼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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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하지 말고 읽은 걸 느껴야 합니다. 그런 후에야 내 안으로 들어온 지식이 지혜가 될 겁니다. (p. 18)'
'찾을 수 없다는 말로 당신의 삶에서 사랑을 지우지 마십시오. 사랑을 얻는 가장 빠른 길은 사랑을 주는 것이며, 사랑을 잃는 가장 빠른 길은 사랑을 꽉 쥐고 놓지 않는 것이며, 사랑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사랑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입니다. (p.113)'
'사람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가 읽는 대목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단단하든 부드럽든 단어들의 껍질을 깨고, 그 단어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 응축되어 있는 의미가 자신의 가슴속에서 폭발하게 끔 해야 하는 것이다. 작가의 기술이란 인간의 정수를 알파벳 문자들에 압축해 넣는 마술,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독자의 기술은 그 마술적 창작들을 열고 그 속에 갇혀 있는 뜨거운 불이나 부드러운 숨결을 느끼는 것이다. (p. 202)'
상징적인 이야기예요. 서재에 창이 있는데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색되어 있어요. 그러면 창밖의 실제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잖아요. 지식의 세계에서는 실제 세계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왜곡된다는 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죠. 혹시 우리는 그러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문제지요. 조금 안다고 해서 그걸 마치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어쩌면 밖이 보이지 않는 채색된 유리창 안에 갇힌 생각일 수도 있으니 말이죠. ( p.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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