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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권 Dec 27. 2020

포스트 코로나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팬데믹으로 변해가는 우리들의 집

지난 두 글에서 코로나로 인해 변해가는 일상과 도시의 형태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우리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집은 팬데믹으로 인해 어떻게 진화하고 있을까.


주로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시간을 보내던 집이 팬데믹으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되었다. 집에서 일도 하고 학교 수업도 듣고 여가시간도 보내면서 그동안 크게 느끼지 않았던 것들이  불편해졌다. 이전에는 집이란 잠을 자고 식사를 하는 등 ‘거주’과 재충전을 위한 약간의 ‘여가활동’을 하는 사적인 공간 정도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집이 일터가 되고 학교가 되고 각종 취미/문화생활을 하는 등 거의 모든 일상을 담아내야 하는 장소로 인식된다. 온라인으로 각종 회의를 하게 되고, 사람들을 만나고, 아이들도 원격으로 학교 수업을 하다 보니  가구도 기능적이면서도 보기 좋은 것으로 바꾸고 온라인 미팅을 위해 뒷배경이 되는 공간들도 꾸미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집에 사는 ‘나’를 치장했다면 지금은 내가 사는 ‘집’을 더 꾸미고 단장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서서히 집을 바꿔 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의 주거공간 계획에도 적극적으로 반영될 것이다. 세 가지 측면에서 앞으로의 주거공간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우선 오픈형 공간보다는 다양한 가변형 공간을 가진 집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주거의 밀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 간 프라이버시(시각, 청각, 후각)가 중요해진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가족의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찾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끔씩 각자의 일을 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들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주방, 식사 공간, 거실이 넓고 트인 구조가 시원하게 느껴졌는데 담아야 할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아쉬워졌다. 가변형 벽, 미닫이 문 등을 사용하든지 처음부터 공간이 분할되어 있다면 각 공간을 필요에 따라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슬라이딩 문이나 가변식 칸막이가 있어서 필요에 따라 두 개의 공간으로 분할할 수 있다면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두 개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가족이 모여 아침을 먹는 식사 공간은 칸막이를 이용해 한순간에 어린이들의 원격 수업 공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 칸막이를 닫으면 어른들은 그와 동시에 거실 공간에서 책도 보고 운동도 하고 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좌] 몰로(Molo) 스튜디의 소프트월(Softwall)- 가변형 벽과 가구; [우] MIT 미디어랩에서 개발한 Ori One Room– 로보틱스 기술을 사용한 가변형 가구 모듈


두 번째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담는 보너스 공간들이 필요해졌다. 이전에는 방의 개수와 크기를 줄여서라도 거실을 크게 사용했는데 이제는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방을 한 두 개 더 만드는 것을 선호한다. 이 플러스알파 공간은 필요에 따라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밀도가 높아진 주거공간에서 이와 같은 독립 공간들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화상 미팅이 많은 직장인들은 홈 오피스로 꾸밀 수도 있고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홈 짐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취미실, 서재, 미디어룸, 등 집주인의 취향과 생활패턴에 따라서 색다르고 기능적인 공간이 될 수 있는 보너스 방이 있는 집들이 늘어날 것이다.


필자의 취미인 가구 제작, 공예, 홈 레노베이션 등을 위해서 꾸며 놓은 지하 공방과 홈 스튜디오의 모습이다(https://daekwonpark.tistory.com/).


마지막으로 코로나의 영향으로 건강과 청결이 더욱 강조되면서 집 안과 밖의 경계 공간이 중요해진다.  아파트 내부 공간을 최대로 하기 위한 무조건적인 발코니 확장보다는 신선한 공기와 햇빛을 느낄 수 있는 약간의 외부 공간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아파트보다는 조그마한 마당이라도 있는 주택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적인 집 내부 공간과 공적인 집 밖의 외부 공간의 이분법적인 경계가 아닌 그 사이를 중재하는 전이 공간의 필요성이 커진다. 그곳은 외부이면서도 사적인 발코니, 중정, 테라스, 마당 등의 기능을 가지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동네를 향한 매개 공간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동네의 기능과 질이 중요해지면서 작은 쉼터, 정원 등 동네 커뮤니티를 위해 창의적으로 내 집 앞 공간을 꾸미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것을 기대해 본다.


뿐만 아니라 건강, 공해, 친환경, 안전 등의 이슈에 민감해지면서 집의 위생과 관련한 다양한 변화들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대부분의 집에서 볼 수 있는 공기청정기와 정수기 등이 건물과 완전히 동화될 것이다. 물, 전기, 가스, 인터넷 등이 그러하듯 위생과 건강을 위한 인프라도 집의 바닥, 벽, 천장과 완전히 융합될 것이다.


집 설계와 관련해서는 건강을 증진시키는 자연 채광과 환기를 활성화하는 건축 전략들을 많이 사용할 것이다. 정리 정돈을 도와주는 수납공간을 늘리고 주 생활공간들 (거실과 방)과 서비스 공간들 (현관, 화장실, 부엌) 간의 확실한 영역 구분(시각, 소리, 냄새, 등)도 강조될 것이다. 집 현관은 더러워진 손과 옷을 바로 씻을 수 있도록 세면대와 세탁기가 갖춰지게 된다. 공기 정화와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 실내 화초를 가꾸고, 코로나 이후 늘어난 집밥/요리에 대한 취미에 자급자족의 개념을 얹어 가정에서 직접 키워 바로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채소 재배 키트 등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좌]손씻고 빨래할 수 있는 현관의 머드룸; [중]LG 식물재배기;[우]산책하는 어린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차고 앞에 분필로 레이싱 코스를 만들어준 동네 주민.




김난도 외 8명의 저자가 쓴『트렌트 코리아 2021』에서 팬데믹의 영향으로 레어드 홈이라는 주거 트렌드를 제안했다. 주거 영역이 기본 레이어(기존의 집 기능), 응용 레이어(새로운 프로그램), 확장 레이어(슬세권- 슬리퍼를 신고 다닐 수 있는 집 주변의 영역)의 세 가지 층위로 나눠진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주 생활공간의 변화 (가변성), 다목적 보너스 공간, 그리고 집 안과 밖의 경계 공간도 이러한 레어드 홈의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앞으로의 집은 언텍트 시대를 거치면서 물리적인 공간의 관점에서는 풍요로워지고 가상적인 공간으로서는 외부와 연결되고 확장될 것이다. 일상생활의 일부 역할을 담당하던 집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되면서 집 자체가 가지는 기능과 의미가 한층 더 중요해졌다. 그래서 우리의 집은 미술관과 같은 미니멀하고 열린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기능을 담을 수 있는 다채롭고 아기자기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곰이 동면하는 동굴처럼 아늑하고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처럼 말이다.


이 곳에서 우리들은 긴 겨울을 이겨내고 새로운 봄을 맞이 하는 곰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길 바란다.



[상단 이미지] 코로나 시기 동안 리모델한 필자의 다목적 공간이다. 여기서 가족들과 식사도 하고 책도 읽고 공예도 한다. 리모델링 과정은 ‘만드는 삶’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https://daekwonpark.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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