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브 May 06. 2024

페르시아나가 고장 나면 생기는 일

내가 한참 동안 못하던 걸 페르시아나, 네가 했구나. 그것도 한 방에.

 해가 쨍쨍한 스페인에는 창문에 셔터가 있다. 집집마다, 창문마다 다 달려있는 이런 블라인드를 '페르시아나(persiana)라고 부른다. 창문 바깥쪽에 철제로 블라인드를 설치하고, 창문가에서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게 끈을 달거나 빙글빙글 물레처럼 돌리는 손잡이를 단다. 창문 위에는 페르시아나가 도르르 감겼다 풀렸다 할 수 있게 아예 박스 같은 구조물이 설치된다.

 스페인 생활 초창기에는 페르시아나도 적응이 필요한 것들 중 하나였다. 여름에는 해가 바로 들이치는 방향에 있는 창문은 페르시아나를 잘 내려놔야 실내 온도가 지나치게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다 그늘이 드리우는 시간대가 되면 페르시아나도 올리고 창문을 열어 선선한 공기가 들어오게 해야 하는데, 시간에 맞춰 이걸 내렸다 올렸다 하는 걸 까먹어서 방이 찜통이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암막 커튼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른 아침 창가로 드는 햇살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잠을 깨우는지 미처 몰랐었다. 페르시아나를 내려두고 자면, 아침이 되어도 어두컴컴하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늦잠을 자기가 일쑤였다.  

 조금 더 살다 보니, 이렇게 해가 이글거리는 나라에서는 꽤나 유용한 물건이란 걸 알게 됐다. 더운 여름엔 햇빛이 들어와 집안이 찜통이 되지 않도록 어느 정도 페르시아나를 내려놓으면 좀 낫다. 구시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옛날 집에 들어가면 뭔가 동굴에 들어간 듯 서늘한 기분이 드는데, 페르시아나 덕분에 햇빛이 잘 막아진 덕분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낮잠을 자던 시절에는 실내를 약간 어둡게 하고 책을 읽어주면 재우기가 훨씬 수월했으니, 고마운 육아템 중 하나이기도 했었다.


 몇 달 전 거실 페르시아나가 고장이 났다. 그날 아침도 여느 때처럼 거실에 있는 페르시아나를 걷어올리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어쩌다 그랬는지, 높이를 조절하는 끈을 힘껏 잡아당겨 페르시아나를 올리다가 그만 손을 놓쳐버렸다. 페르시아나는 맹렬한 속도로 창문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엄청난 소리를 냈다. 어디쯤인지는 몰라도 페르시아나와 높이를 조절하는 끈의 연결이 풀렸거나, 끈이 끊어졌거나, 안에서 뭔가가 부서진 게 분명했다. 끈을 당겨보니 줄만 헛돌고 있는 게 느껴졌다. 줄은 짱짱한 맛이 없었고, 페르시아나는 그야말로 '끈 떨어진 신세'였다.

 일단 불을 켜고 어찌어찌 아이 등원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참 별로였다. 나는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커피를 내리고 샌드위치를 먹는 아침 시간을 참 좋아하는데, 불 켜진 거실은 꼭 저녁을 먹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어쩔 수 없이 페르시아나가 멀쩡한 안방으로 들어가 책상을 힐끗 봤다. 한 번 더 입고 빨려고 걸쳐둔 옷가지와 당장 쓰지도 않으면서 장에 넣어놓기에는 뭐해서(귀찮아서) 올려둔 이런저런 물건들이 켜켜이 쌓인 책상은 상판 색깔이 뭐였는지도 잘 생각이 안 날 정도였다. (자랑이다. 어이구.) 그동안엔 정리할 엄두가 안 나서 못 본 척 지나쳤지만 아침을 먹어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책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금방 자리가 났다. 아니 잠깐, 이렇게 쉽게 치워진다고?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항상 책상 아래 깊숙이 들어가 있기만 하던 (그래도 거기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었던) 책상 의자를 꺼내 앉고, 아침을 먹었다.

 그동안 식탁에서 아침을 먹고 나면, 그냥 그 자리에서 공책에 오늘 해야 할 일들도 적고, 책도 읽고, 스마트폰도 하며 놀곤 했었으니 그날은 책상에서 그 일들을 하게 됐다. 도대체 몇 년 만에 책상머리에 앉아서 뭔가를 하는 건지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지금처럼 이 책상을 책상답게 쓴 게 거의 처음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여기 이 집으로 이사를 올 때만 해도, 어쨌든 책상은 필수 가구라며 장만했던 것 같은데 어쩌면 이렇게까지 방치해 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보다 며칠 앞선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어쨌든 자기만의 책상이 있어야 한다'는 부분에 밑줄을 치면서도, 실제로 책상을 치울 생각은 곱게 접어뒀던 기억도 났다. 거실이나 안방이나 모두 공동 공간인데 거기에 나만의 책상을 두기가 어쩐지 좀 껄끄럽다는 핑계를 대면서, 방이 하나만 더 있다면 내 서재는 이렇게 저렇게 꾸밀 텐데 아쉽다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고장 난 페르시아나를 고치는 데는 꼬박 열흘이 걸렸다. 작은 시골 동네엔 관련 업자가 많지 않으니 그들은 항상 바쁘신 몸이기 마련. 집에 뭔가 고장 났을 때 수리하기까지 이 정도 걸렸다면 양반이다. 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거실이 슬슬 답답해질 즈음이었기에, 드디어 페르시아나를 활짝 올릴 수 있게 되니 속이 다 후련했다. 당연히 거실로 들이치던 햇빛이 새삼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페르시아나를 고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려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 사이에 책상에 앉는 게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만약에 페르시아나가 고장 난 그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수리공이 왔더라면, 지금까지도 내 책상은 도대체 뭣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계속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하루 이틀 만에 고쳤다 하면 아직은 책상이 어색하니 그냥 다시 식탁으로 돌아갔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열흘은 책상이 나만의 작은 공간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페르시아나를 고치고 나서도 나는 책상에 앉았다. 일정을 적는 다이어리 노트는 거실 책장에서 내 책상으로 자리를 옮겼고, 다른 노트가 몇 개 더 생겼다. 노트북 컴퓨터는 아이가 만질까 봐 꼭 필요할 때만 후다닥 쓰고 높은 책장에 올려두었는데, 항상 책상 위에 놓여있으니 언제든지 쉽게 켤 수 있게 됐다. 그러고 보니, 내 책상이 생기고 나서 브런치도 쓰기 시작했다. 음, 페르시아나가 고장 난 덕분에 내 책상이 하나 생겼다는 이야기를 너무 장황하게 했나.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니, 소녀 이제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