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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소녀 Sep 14. 2021

생명의 전화

남편과 연애시절. 날씨가 좋고 바람이 선선해서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늘 버스를 타고 지나다니던 마포대교를 그날 처음으로 걸어서 건너보았다. 강바람은 살랑살랑거리며 내 뺨을 간지럽혔고 뺨에 닿는 바람은 무척이나 상쾌하고 시원했다. 다리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한강은 마치 강 위에 고운 보석들을 흩뿌려놓은 것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내 오른편에는 상행선, 하행선 할 것 없이 자동차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고 다들 어딘가의 목적지를 향해 분주히 달리고 있었다. 다리를 계속해서 걷다 보니 어떤 글귀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포대교(좌)/ 마포대교에 쓰여진 메세지(우)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해 보세요.''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인가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질문들이 다리의 난간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처음에는 이 질문들이  난간에 적혀있는지조차 잘 몰랐다. 하지만 마포대교에서 극단적인 선택하는 분들이 많다는 뉴스를 들었던 기억이 이내 떠올랐다. 분들이 런 소소한 질문을 보면 왠지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고 싶은 누군가의 얼굴이 머릿속에 살포시 떠오를 것만 같았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 제목처럼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르면서 안 좋은 생각을 조금이나마 유예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만 같았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가슴을 뭉클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저 문장들을 바라보며 희망을 잃고 쓰러진 누군가가 다시 용기를 내기를. 힘을 내기를. 다시 살아갈 마음을 얻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면서 다리 위를 걸었다. 걷다 보니 저 멀리서 공중전화기처럼 생긴 전화기가 보였다. 가까이 가서 바라보았다.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생명의 전화였다.


마음이 외롭거나 괴로울 때. 마음의 고통과 상처가 더 이상 감내하기 버거울 때. 마포대교에 있는 누군가가 저 생명의 전화의 수화기를 들어 누군가와 꼭 연결되기를. 한 사람의 관심과 따뜻한 목소리로 소중한 한 생명을 구하기를 바라며 다리를 건넜다. 그날 이후로 마포대교와 생명의 전화는 그렇게 내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만 갔다.


그해 겨울. 

사귀던 남자 친구인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평범하고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결혼을 하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거라고 예상했던 결혼생활은 두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이라는 어두움이 서서히 드리워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암울 해져만 갔다. 게다가 출산과 육아로 허리 디스크가 연달아 터지면서 움직이기조차 힘들어졌고 고통이 극심했다. 마음의 감기라고 가볍게만 여겼던 우울증은 보란 듯이 나를 비웃으며 점점 더 몸집을 키워만 갔고 내 마음은 서서히 칠흑 같은 어둠으로 점점 더 물들어 가고 있었다.


허리 디스크 통증은 예고 없이 나를 찾아올 때마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진통소염제를 얼른 입에 탈탈 털어놓고 이 고통이 지나가기를 누워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을 돌보기는커녕 나 혼자서는 양말조차도 신을 수없는 지경에 이르자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었다. 그냥 다 포기하고 싶었다. 통증이 심해질수록 사람들과의 만남보다 병원에 가는 날이 허다했고 아이들에게도 웃고 즐거워 보이는 엄마의 모습보다 통증으로 일그러진 찡그린 표정의 엄마의 얼굴을 보여주는 날이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일상에서 움직이는 게 힘들다 보니 집에서만 은둔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고 점점 더 내 마음은 우울감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어느 순간 통증이라는 괴물이 나를 집어삼켜버렸는지 '이제는 다 그만하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괴로운 날들이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핸드폰의 주소록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전화를 걸어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무치게 외로웠고 괴로웠고 고통스러웠다. 용수철을 손으로 꾹 누르다가 갑자기 놓아버리면 튕겨져 나가듯이 그동안 꾹꾹 억눌러왔던 감정이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지게 되었다. 나조차도 이런 내 감정이 매우 생소하고 당황스러웠다. 결혼한 지 정확히 6년 만에 나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생명의 전화에 전화를 걸게 되었다. 그렇게 내 인생 두 번째 우울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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