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17개월쯤 되었을 무렵.
동네에 있는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목장갑으로 토끼 인형을 만든다기에 아이와 함께 방문해보았다.
처음으로 엄마와 조금 떨어져 있는데도 보육 반장님이 곁에서 아이를 잘 보살펴주셔서인지 아이는 울거나 보채지 않았다. 마치 '엄마! 오늘은 엄마 하고 싶은 거 다해!'라고 마음속으로 나를 응원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인형을 만들면서 엄마들끼리 서로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안녕하세요. 저는 박정림이에요. 현재 17개월 된 아들을 한 명 키우고 있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게 소개를 했다.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처음 보는 엄마들 앞에서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가 많이 어색했고 떨리고 긴장이 되었다. 인형을 다 완성하고 나자 아이들 그림책 수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책 선생님은 수업을 하시기 앞서서 뜻밖의 질문을 던지셨다.
''어머님들. 혹시 어머님들을 지금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굴까요? 친정엄마, 남편, 아이 중에서요.''
'당연히 남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답하지는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뜻밖에
''여러분의 아이들이 여러분의 본모습을 제일 잘 알고 있어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말은 잘 못하지만 엄마의 기분이 좋은지 안 좋은지 그 감정은 고스란히 느끼고 있어요.''
마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친정엄마나 남편이 아닌 내 아이가 내 본모습을 제일 잘 알고 있다니...
그 무렵 아침에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아이와 함께 있어도 불도 켜지 않고 눈물을 흘리거나 멍하니 앉아있곤 했었다. 믿었던 사람이 믿음을 저버리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돌보고 있지만 내 마음은 누군가를 돌보기에는 이미 에너지가 바닥이 나 있었다. 아이가 아직 17개월 정도밖에 안되었기에 아무것도 잘 모른다고 생각해서 아이 앞에서 눈물도 많이 흘렸고 넋이 나간채로 멍하니 있었던 적도 많았다. 이런 내 기분을 우리 아이가 고스란히 다 느끼고 있다니. 너무나 마음이 아팠고 미안했다. 엄마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날은 그림책 수업을 듣는 내내 머릿속은 꼬인 실타래처럼 뒤엉켰고 마음은 검고 짙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매우 복잡했다. 그날 집에 와서 더 이상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변화가 당장 필요했고 엄마이기에 소중한 아이를 돌보아야 했기에 달라져야만 했다. 마음에서 꺼져가는 불씨를 어떻게든 다시 되살려야만 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를 위해서 동네 놀이터라도 공원에라도 나가 산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분이 다운되어있어서인지 밖에 나가야 하고 아이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사실 조금은 버거웠다. 집 밖에 나가면 가면을 쓴 것처럼 아이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그 무렵 인형을 같이 만들었던 엄마들끼리 품앗이 육아모임을 같이 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서로의 재능을 적극 활용해서 아이들을 위한 모임을 이어나갔다. 아이들에게 그림책도 읽어주고 촉감놀이. 미술놀이. 공원 산책 등 혼자라면 꾸준히 할 수 없지만 함께였기에 우리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유익한 활동들을 이어나갔다. 아는 엄마들이 하나, 둘 생기자 혼자서는 버겁고 힘들었던 육아가 조금씩 수월해지게 되었고 모임을 하는 날이 기다려졌다. 누군가가 힘들 때 곁에서 위로를 해주고 또 위로를 받다 보니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조금씩 아물어갔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우울이라는 녀석은 마치 파도가 밀려가듯이 내 마음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밝은 햇살이 어두움을 몰아내듯이 주변 엄마들의 도움으로 우울이라는 녀석은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그들의 도움 덕분에 나는 우울의 늪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부족한 엄마임에도 늘 아이가 곁에서 미소를 지어주었기에. 수호천사처럼 늘 내 곁을 지켜줬기에. 꺼지기 일보직전의 마음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