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별소녀 Oct 21. 2021

나의 결혼식

내 결혼식을 앞두고 엄마와 혼수이불을 파는 가게에 갔다. 엄마는 이 집에서 제일 좋은 이불을 보여달라고 하셨다. 요, 이불, 베개 두 개가 한 세트였는데 한 세트에 몇 십만 원이나 하는 고가의 이불이었다. 이불은 만졌을 때 부드러웠고 따뜻했지만 워낙 부담스러운 가격이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그 이불을 포함해 이불을 세 채나 사주셨다. 그리고 각종 주방용품과 조리도구, 그릇도 사주셨다. 이렇게 무리하셔도 괜찮으실까 걱정이 되어서 여쭤보았다. 엄마는 딸이 시집갈 때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말없이 엄마가 사 주신 선물을 다 받았다.


신혼집과 예식장, 드레스 등 결혼 준비가 거의 다 되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준비를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였다. 부모님이 일찍이 이혼하셔서 아버지와 연락이 끊긴 지 꽤 오래되었기에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고민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혼주 이름을 적는 란에 아버지 성함을 올려도 될지. 아니면 아버지 성함을 쓰는 란을 비워둬야 할지. 혼주석의 아버지 자리에는 누가 앉을지. 신부가 입장할 때는 누구의 손을 잡고 들어가야 할지. 

아버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8년 전에 집을 나가셨기 때문에 연락처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아버지의 제일 친한 친구분을 찾아갔다.


''이번에 정림이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혹시 정림이 아버지 연락처 알아요?''

''(약간 망설이시며) 핸드폰 번호를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번호가 바뀌었는지 나도 연락이 안 된 지 꽤 됐어요.''


워낙 아버지와 친하시니 아버지의 연락처를 당연히 알고 계신다고 생각했었는데 바뀐 번호를 모르신다고 하셨다. 설사 안다고 하셔도 나와 엄마에게 알려줄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았다. 그래서 청첩장에 내 연락처를 적어드렸다. 아버지와 연락이 되신다면 꼭 좀 전해달라고 부탁을 드리고 돌아왔다. 


결혼식 하루 전날. 엄마에게 한 가지 부탁을 드렸다.


''엄마, 내일은 기쁜 날이니까 우리 절대 울지 말고 활짝 웃자. 알았지 엄마?''


결혼식에서 혹시라도 엄마가 울게 되면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사실 엄마에게 한 부탁이었지만 나 자신에게 한 부탁이기도 했다. '정림아, 제발 결혼식에서 울지 마. 좋은 날이니 환하게 웃어.' 

눈물짓는 결혼식이 아닌 많은 사람의 축하와 축복을 받으며 엄마도 나도 환하게 웃는 결혼식을 꿈꿨다.


결혼식 날이 되었다.

새벽부터 서둘러서 메이크업샵에 도착해 웨딩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하고 서둘러 예식장에 갔다. 엄마도 곧 식장에 도착하셨다. 분홍색 한복을 입고 곱게 화장을 한 엄마의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예식시간이 다가오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해주셨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아도 내가 찾는 단 한 사람. 아버지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혼주 이름을 쓰는 곳엔 혹시 몰라서 아버지의 성함을 미리 적어놓았고 혼주석에는 감사하게도 큰외삼촌이 앉아주셨다. 결국 신부 입장을 할 때에는 신랑과 나란히 손을 잡고 들어갔다.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신부인 것처럼 연신 싱글벙글 밝게 웃으며 걸었다. 저 멀리 혼주석에 앉아 계시는 엄마가 보였다. 다행히 엄마도 환하게 웃고 계셨다. 그 순간 우린 서로 직접 말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전했다.


"정림아, 시집가서 잘 살아. 행복하고."

"엄마, 그동안 키워줘서 정말 고마워.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게. 그리고 울지 않고 많이 웃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사랑해 엄마."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집으로 돌아오자 긴장이 풀렸는지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 전.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엄마, 뭐해?"

"어. 이제 저녁 먹으려고. 넌 저녁 먹었어?"

"아니. 우리도 저녁 먹으러 나가려고. "

"신혼여행 잘 다녀와."

"잘 갔다 올게. 엄마도 저녁 맛있게 먹어."


마음 같아서는 '내가 시집을 가서 엄마 혼자 텅 빈 집에 있으니 많이 적적하지? 엄마 괜찮아?' 하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진지한 얘기를 나누게 되면 울컥할까 봐 일상적인 대화만 나누다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엄마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밝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저녁을 먹고 와서 여행 짐을 챙겼다. 자려고 눕자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결혼식에 오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결혼식에 못 오실 거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많이 아쉬웠다. 혹시 아버지가 멀리서 내 모습을 보고 가신 건 아닐까. 아마도 우리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못 오셨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없는 결혼식은 솔직히 서운하고 많이 쓸쓸했다. 그날은 유독 아버지가 그리웠다. 또 혼자 집에 계실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도 내 생각이 나서 잠을 못 이루고 계신 건 아닐지... 나도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든 밤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파우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