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 #조직신뢰 #심리적 계약 #상호호혜 #암묵적 가정
많은 기업들이 AI 도입을 통해 업무혁신과 성과향상을 목표로 하지만 안타깝게도 AI도입이 바로 조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찰머스(Chalmers)가 발표한 <AI and entrepreneurship: implications for venture creation in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에 따르면, 단순히 시간문제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AI 도입 등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의 구성원들을 인터뷰한 찰머스는 디지털 신기술 도입이 기존 기술 발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또한 AI 도입의 부정적 효과가 긍정적 효과를 상쇄해 조직의 성과를 갉아먹는 현상을 발견합니다.
AI로 대변되는 최근 신기술들은 과거 기술 진보 단계에서 경험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 속도가 빠릅니다. 이에 구성원들은 매우 빠른 주기로 생소한 기술을 배워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AI 등 디지털 기술 도입을 통해 조직에서 기대하는 생산성 향상 수준은 여타 기술들에 비해 매우 높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구성원들이 받는 심리적 압박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큽니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할 새도 없이 또 다른 기술을 배워야 하며, 배움을 넘어 기술을 빠르게 현업에 적용해 생산성까지 향상해야 하는 구성원들은 디지털 기술이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느끼게 된 것이죠. 그리고 단순히 위기의식을 넘어 디지털 기술 도입을 추진하는 조직이 구성원을 배신했다고 생각하죠. 조직과 개인이 맺은 심리적 계약이 파기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로 근본적 문제가 발생합니다. 기존의 업무를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는 업스킬링(Upskilling)과 새로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리스킬링(Reskilling) 프로세스를 아무리 잘 구축했다 하더라도 조직과 구성원(개인) 간 맺은 암묵적 계약이 깨졌다는 느낌, 즉 조직신뢰가 무너지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2023년 5월 대한경영학회지에 발표된 <AI 도입 인식이 심리적 계약, 조직신뢰, 조직몰입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은 조직신뢰가 강화될 때 구성원들의 우려가 완화되고 궁극적으로 AI 도입의 효과를 볼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자 조직과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디지털 기술이 왜 업무 수행 과정에 빠르게 스며들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고민이 있는 분이라면 단순히 업스킬링이나 리스킬링 프로그램을 정비하기에 앞서 문화적 차원에서 조직과 구성원이 어떤 심리적 계약을 맺고 있는지부터 조사해야 합니다. 심리적 계약이란 상호호혜와 신의성실 원칙 아래 조직과 구성원이 서로에게 주고받을 의무와 보상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즉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수행해야 할 노력, 기여, 의무를 다한다면, 조직은 응당 나에게 합당한 존중과 보상을 해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죠. 샤인(E. Schein)은 이러한 심리적 계약은 매우 주관적인 요소라고 말합니다. 조직과 개인의 성장 과정, 성공과 노력에 대한 정의, 구성원들이 원하는 보상 종류 등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조직마다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특히 조직과 구성원이 맺은 심리적 계약은 암묵적 가정(underlying assumtions), 표명하는 가치(expoused beliefs and values), 인공물(artifacts)이라는 세 층위 중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암묵적 가정에 위치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문화의 암묵적 가정들에 존재하는 것들을 정의하고 발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하지만 심리적 계약이 상호호혜와 신의성실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몇 가지 질문을 통해 유추해 볼 수는 있습니다. "우리 조직(기업)에서는 어떤 행동이 칭찬받는가?", "우리 조직에서 절대 용납되지 않는 행동은 무엇인가?", "내가 수행해야 할 미션(mission)과 업무(task)가 무엇인가?", "조직은 구성원의 노력과 성과를 정확히 평가하여 적절한 보상을 부여하는가?", "조직과 내가 같이 잘 되기 위해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입니다. 이를 통해 조직 전반에 녹아져 있는 심리적 계약 조항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발견된 심리적 계약을 바탕으로 해당 계약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한 진단해 보는 것이죠. 변혁(또는 전환)을 추진함에 있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구성원들이 변혁(transformation)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만약 신뢰하지 않는다면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구성원의 목소리를 통해 이해하는 것입니다. 암묵적 가정에 내재된 조직과 구성원 간 심리적 계약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왜 변화가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해야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디지털 기술의 도입과 활용, 업무 프로세스의 혁신, 디지털 기업으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대세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 도입에 따른 '기술 스트레스(techno-stress)'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기술 스트레스가 조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에너지가 될 것인지 아니면 조직을 파괴시키는 엔트로피가 될 것인지는 문화적 영역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업스킬링이나 리스킬링 프로그램 도입을 넘어 기업문화의 암묵적 가정에 존재하는 걸림돌들을 하나 둘 제거하고, 전환에 필요한 디딤돌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조직과 구성원들이 디지털 전환에 맞는 새로운 심리적 계약을 맺어나갈 때, 우리가 생각하는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Social exchange theory. Emerson. 1976
Organizational psychology. Schein. 1980
AI and entrepreneurship: implications for venture creation in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Chalmers. 2021
AI 도입 인식이 심리적 계약, 조직신뢰, 조직몰입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 박석민.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