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동장치 #집단착각 #조직문화 #기업문화
기업문화 업무를 처음 담당하는 분들에게 꼭 읽어보도록 권하는 책 세 가지가 있습니다. 딜과 케네디가 공저한 <기업문화. Corporate Cultures>, 에드가 샤인의 <기업문화 혁신전략. The Corporate Culture Survival Guide>, 톰 피터스와 로버트 워터맨이 쓴 <초우량 기업의 조건. In Search of Excellence>입니다.
읽어본 분들마다 느낌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소개한 순서대로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기업문화>에서는 기업문화의 기본 개념과 문화의 구성요소,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마주하게 되는 조직 내 역학 관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업문화 혁신전략>은 기업문화의 형성과 진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문화를 진단하고 창조해 낼 것인가에 대한 실무적 기초를 제공합니다. 마지막으로 <초우량 기업의 조건>은 실사례를 통해 문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죠. 에드가 샤인이 문화를 '암묵적 가정(underlying assumptions) - 표방하는 가치(espoused values) - 인공물(artifacts)'이라는 세 층위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기업문화>는 암묵적 가정, <기업문화 혁신전략>은 표방하는 가치, <초우량 기업의 조건>은 인공물에 해당하는 내용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이 책들에서 상대적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 있느니 "문화가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입니다. 바로 '문화기동장치'라 불리는 것들이죠. '문화기동장치'란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를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 혹은 추상적/개념적으로만 존재하는 문화를 실제 조직이나 팀 내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리더십, 조직구조, 업무 프로세스, 성과평가체계, HR제도, 광고, 교육 등 문화기동장치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문화기동장치가 중요한 이유는 구성원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 중 대부분은 추구하는 가치이념이 아니라 그것을 적용하는 과정에 대한 불신과 불만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고객, 혁신, 창의 등 추구하는 비전과 핵심가치를 들어보면 전부 좋은 말들뿐입니다. 이 말에 직원들이 왜 반발할까요? 그것은 해당 내용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시키는 과정에 반발하는 것입니다.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구성원들을 혁신과 변화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리더나 담당부서의 시각입니다. 침묵하는 직원들을 교화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시작한 문화혁신활동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토드 로즈(Todd Rose) 교수가 말한 '집단 착각(Collective Illusions)'에 빠진 것이죠.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창의적이고, 수평적이며, 자율성에 기반한 문화를 원합니다. 단지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나 동기가 부족한 것뿐입니다. 스스로 판단해 이야기할 만큼 충분하고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내 선택에 따른 행동이 용인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침묵을 거부나 반대로 보고, 직원들의 변화를 목표로 삼으면 문화는 더욱 왜곡됩니다.
문화기동장치가 해야 할 첫 번째 역할은 양극단에 서서 아우성치는 소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침묵하고 있지만 올바른 생각과 행동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다수가 '동조 압박(peer pressure)'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목소리 큰 사람을 따라 하고자 하는 욕망을 참고, 조직에 속한 개인이 개인으로서 판단을 내려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많은 기업들이 주니어 보드, 오피니언 리더 그룹 등을 만들어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는 일을 하지만, 잘 보면 이들은 극단의 성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렇게 되면 '집단 지성'이 아니라 '집단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집단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지만 개인 간 대화를 늘려가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소통을 넘어 비공식적이지만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가장 효과적인 문화기동장치입니다.
또한 기업문화를 혁신하고자 한다면 연례적으로 하는 비전선포식이나 핵심가치 재정립보다는 문화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는 '문화기동장치'에 대한 혁신에 훨씬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맥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문화 혁신활동의 70%가 실패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과연 비전과 핵심가치를 잘못 도출해서 그런 것일까요? 포브스의 조사에 따르면 50%가 넘는 기업에서 유사한 핵심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곳은 핵심가치가 문화로 안착된 반면, 어떤 곳은 허울뿐인 상태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은 '문화기동장치'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로즈 토드 교수는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은 과거 것을 잊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업문화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명제라고 생각합니다. 구성원들이 기억하는 것은 비전이나 핵심가치에 속한 단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의 가슴속에 있는 문화는 비전이나 핵심가치를 경험하게 만들었던 문화기동장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단어를 바꾸는 것만큼 문화기동장치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사 캠페인, 전사 교육과 워크숍, 사내 광고 등 늘 해왔던 방식에서 벗어나 파격을 보여준다면 오히려 문화는 훨씬 빠르게 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자료]
기업문화 혁신전략. 에드가 샤인
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집단 착각. 토드 로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