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두 세계
상업 영화 연출부 막내의 주 업무는 세 가지다. 제일 먼저 와서, 제일 늦게 가고, “괜찮아요”를 제일 빨리 말하는 것. 선배들이 알려준 지침대로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 무식한 성실함에 몸을 갈아 넣었다.
촬영 중 이동하는 크레인 장비에 부딪혀 이마가 찢어졌을 때도 입은 뇌보다 먼저 반응했다. “괜찮습니다!”를 외쳤다. 피가 흐르는 이마보다 무서운 건 나 때문에 촬영 흐름이 끊기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막내의 ‘괜찮아요’는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이 현장에서 아직 쓸모 있다는 생존 신호였다.
감독의 미션을 수행하는 능력은 연출부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된다. 어느 한여름에 겨울을 만들라는 감독의 명을 받았다. 요즘이야 CG를 쓰거나 페이퍼 스노우를 뿌리겠지만 감독의 고집에 따라 1톤 분량의 소금 포대를 날라 도로에 뿌려야 했다. 지열을 머금은 아스팔트 위에서 소금은 눈처럼 포슬거리는 대신 끈적하게 녹아내리며 신발 바닥에 쩍쩍 달라붙었다. 그렇게 밤새 여름을 지워 하얀 세상을 탄생시켰다. 영화에서는 고작 15초 정도 흐르는 장면이다. 하지만 단 한 컷의 완벽함을 위해 결코 고생과 타협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런 것이었다. 무모할 만큼 느리고, 지독할 만큼 정성스러워야 그 세계에 가닿을 수 있었다.
지방 모텔을 전전하며 촬영하고, 서울 편집실에 갇혀 꼬박 1년을 보냈다. 견딜 수 있었던 건 극장 엔딩 크레딧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는 순간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영광만 남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꿈꾼 엔딩은 끝내 오지 않았다. 개봉을 앞두고 배급사가 계약을 철회하면서 영화는 극장에 걸리지 못한 채 공중분해 되었고 잔금도 받지 못했다. 사계절이 바뀌는 동안 남은 것이라고는 ‘스태프‘라고 적힌 티셔츠 한 장과 엄마에게 빌린 50만 원뿐이었다.
예술은 배고픈 것이라는 말을 꽤 비싼 값을 치르고 배웠다. 결국 충무로를 떠나 여의도로 향했다. 방송작가 막내는 월급을 준다는 말에 구인구직란을 훑으며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초짜인 나를 누가 불러 줄까 싶어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번번이 낙방! 우려가 현실이 되니 나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단계까지 왔다.
어느 날, 이력서 속 ‘영화 연출부’ 한 줄을 본 제작팀 피디가 연락이 왔다. 제시한 조건은 여전히 ‘열정 페이’에 가까웠지만 당장 고정 수입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글이 쓰고 싶었다.
방송국의 공기는 밀도가 낮고 날카로웠다. 복도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고함 섞인 통화 소리, 굽 높은 구두가 대리석 바닥을 짓이기며 지나가는 소리, 팩스가 종이를 뱉어내는 마찰음이 쉴 새 없이 고막을 때렸다.
영화 현장은 오래 끓이는 곰국이라면, 방송국은 활어를 바로 썰어내는 회 같았다. 가장 생소했던 건 사람들의 말투였다. 소금을 뿌리며 “조금만 더”라고 서로를 다독이던 끈적한 동료애 대신 이곳에는 “지금 당장”이 생략된 명령조만 존재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누군가는 전화기에 대고 “테이프 안 넘어오면 사고야”라고 비명을 질렀다. 그 단어가 복도에 흩뿌려질 때마다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1.5배씩 빨라졌다.
나는 그 속도감에 멀미를 느꼈다. 영화 현장에서 배운 ‘기다림’은 이곳에서 ‘무능’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렇게 나는 느릿한 예술의 세계를 빠져나와, 숨 가쁜 노동의 세계로 입성했다.
나... 여기서 버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