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너프 일병 구하기
“연말 분위기 좀 나게, 탬버린 학원 다니는 남자들 떼샷 좀 촬영해 와.”
부장님은 늘 막내 작가에게 ‘미션’을 던졌다. 지시는 늘 간결했다. 문제는 그 간결함 안에 껌처럼 들러붙은 조건들이었다.
나는 그 문장에 반박의 밑줄을 백 개쯤 긋고 싶었다.
물론 실제로 긋진 못했다. 회사에서 밑줄은 마음으로 긋는 거다.
첫 번째 밑줄, ‘연말 분위기’.
당시 10월 말이었다. 12월 초 방송을 맞추기 위해 미리 촬영해야 한다. 그 시차는 고스란히 막내 작가의 몫이었다.
두 번째 밑줄, ‘탬버린 학원‘
검색창을 아무리 두드려도 나오는 건 작년 송년회 시즌에 반짝 등장했던 오래된 기사뿐이었다. 조직이 말하는 ‘요즘 트렌드’란 대체로 이미 끝났거나, 혹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억지로 창조되곤 했다. (실제 부장님이 수집해 온 내용의 80%는 ‘카더라 통신’이었다.) 그러나 하라면 해야 한다.
세 번째 밑줄, ‘남자 단체’.
어떤 대한민국 남자들이 그것도 떼로 춤을 추고 있겠는가? 촬영을 위해서는 최소 10명은 필요하다.
취재차 찾아간 강남의 한 댄스 학원.
거울 앞에는 원장님의 고독한 살풀이만 너울거리고 있었다.
“작가님, 아직 시즌 아니에요. 12월은 돼야 부장님한테 찍힌 대리님들이 울면서 와요.”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었다. 문제는 내 상황이 비상식적이라는 것.
다음 주 바로 촬영해야 하므로 무작정 기다리다간 내 목이 먼저 날아간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내 휴대폰에서 일단 ‘남자 사람’에게 연락을 돌렸다. 초등학교 동창부터 사촌 오빠, 전 전 남자 친구까지 샅샅이 긁어모았다.
“대한민국 직장인의 애환을 대변해 달라”는 거창한 말로 꼬셔봤지만 돌아오는 건
“미쳤냐”라는 냉소와 통화 종료음뿐이었다.
결국 새벽 퇴근길에 안면을 튼 택시 기사님에게까지 손을 뻗었다.
“기사님, 내일 탬버린 한번 흔들어보실래요? 방송에 나옵니다.”
기사님은 ‘탬버린’ 앞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결국 승낙하셨다.
알고 보니 평소 방송 출연에 관심이 많았던 분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모인 ‘탬버린 결사대’ 10명.
20대 복학생부터 50대 기사님까지, 통계적으로도 설명 안 되는 조합이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맞춰 주말에 강남의 댄스 학원으로 불러 모았다.
우리는 계절을 앞당겨 송년회 단골 음악에 맞춰 탬버린을 흔들기 시작했다.
“자, 부장님한테 결재 반려당했다고 생각하세요! 더 격렬하게!”
기사님은 엑셀 대신 탬버린을 밟았고, 공부만 하던 친구들은 취업 서적 대신 골반을 흔들었지만, 현장은 여전히 어색한 공기만 감돌았다. 이번 편은 망했구나 싶던 순간, 뜻밖의 에이스가 등판했다. 은행에 갓 취업한 친구 녀석이 탬버린을 잡더니 신들린 스텝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내성적인 줄만 알았던 녀석은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골반의 회전력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저 친구 뭐야? 진짜 잘하는데?”
PD의 한마디에 죽어가던 분위기가 심폐소생술을 마친 듯 살아났다. 화면 속 그들은 세상 누구보다 흥겨워 보였겠지만, 실상은 막내 작가 하나 살리겠다고 몸을 갈아 넣은 집단 구호 활동이었다.
촬영이 끝나자, 땀에 젖은 열 명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말은 없었지만 눈빛은 명확했다.
‘이대로 보내는 건 아니지?’
불행히도 내 주머니 사정 역시 명확했다. 일반인 출연료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이런 건 늘 막내가 충당해야 했다. 내 통장엔 다음 주 교통비조차 아슬아슬했다. 나는 그들을 근처 식당으로 안내했다
“사장님, 김치찌개 10인분이요. 사리는… 일단 먹는 거 봐서요.”
"아니, 사장님 삼겹살로 10인분 주세요"
눈치 없는 친구의 주문 변경. 그 순간 내 한 달 치 식비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보글보글 끓는 서비스 찌개보다 내 속이 더 끓고 있었다. 추가되는 고기와 후식을 거의 감시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분명 컸지만 계산서 앞에서 나는 자꾸 찌개처럼 졸아들었다.
결제 금액 20만 원. 월급 80만 원 시절의 20만 원은 숫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생존권이자, 비루해지기 싫어 지불한 자존심의 할부금이었다. 회사에서는 종종 자존심이 현금으로 결제되곤 하지 않은가.
10분짜리 방송을 위해 탬버린을 5시간이나 흔들어 준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잘리지 않았고, 지금까지 방송국 밥을 먹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 달을 굶더라도 쿨하게 한우로 쏠 걸... 후회가 된다.
그래서일까. 그날 이후 몇 명은 내 전화를
영원히 받지 않았다.
그들은 온몸을 던져,
나를 라이언 일병처럼 살렸고
나는 그들의 연락처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