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그방에 사는 여자
Oct 13. 2024
삶이 나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걸 나는 일찍이 알아차렸다. 나는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세상은 잊을만하면 일깨워 주었다. 친절하지 않은 삶도 때때로는 친절했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았다.
어렸을 적 밥을 먹을 때면 나는 젓가락을 멀리 잡는 습관이 있었다. 엄마는 젓가락을 멀리 잡으면 시집을 '먼데'로 간다고 했다. '먼데'가 어디까지일까? 뒷산 언덕에서 보이는, 불빛이 연신 깜빡이는 비행장이 있다는 그쯤일까? 생각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동화 '송아지'처럼 돌이 누나가 시집을 간 산을 넘고 또 넘는 그곳일까?
돌이는 엄마도 잃고, 아버지와 누나와 송아지와 함께 두메산골에 살았다. 누나가 멀리 시집가던 날 돌이는 슬퍼서 울었다. 나는 먼 곳은 슬프게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베겟잇이 젖도록 운다는 것을 처음 읽었다.
사주에 방랑기질이 있어, 떠돌아다니길 좋아할 것이라는 나는, 먼데로 나아가지 못했다. 보듬고 감싸야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가, 꽃집에서 내어 놓은 빨간 플라스틱 양동이에 국화꽃이 그득 담겨 있는 것을 보았다. 노란색, 보라색, 하얀색, 국화꽃들의 향기가 가을을 몰고 왔다. 아! 내가 좋아하는 꽃이다!라는 기억이
먼 곳에서부터 불려 왔다. 아이들 졸업이나 입학, 어버이날등을 빼놓고, 내가 좋아하는 꽃을 사본 지가 언제였던가? 오래전이었다. 가을 국화꽃 향기는 나를 잠깐 그 시절로 데리고 갔다. 만원이 있으면 한 권의 책을 사고, 늦은 저녁 떨이를 하는 트럭에서 국화꽃 한 다발을 신문지로 둘둘 말아 사들고 빈방으로 돌아왔었다. 빈벽을 책으로 채우고, 고추장에 반찬 없는 밥을 비벼먹던 나를 보고 왔다. 아! 나는 복된 삶을 살았구나!
간혹 찾아오는 빛을 잘 낚아 채, 여태도 잘 살아왔구나! 친절과 불친절 사이에서 애쓰며 나이를 주워 먹은 나는 '먼데' 까지는 가지 못하였으나, 멀리까지 무사히 왔다. 길 위의 사람, 이것이 나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