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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원 Jun 27. 2024

언제나 명심하소!

<좋은생각> 7월호 특집 납량에 내 글을 투고했다.  5월 13일 편집인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이 글을 윤문하여 다른 부문으로 옮겨 싣고자하니 동의하는가?"라며 내 의사를 물었다. 좋습니다.

77쪽에 실린 글입니다.



언제나 명심하소!

                                   - 안창호 


 어둑한 밤, 개구리 합창 소리 울리는 계절이면 가끔 그날이 생각난다. 

어느 봄날, 나는 첫 돌이 막 지난 손자와 함께 들판이 훤히 보이는 공터로 산책을 나갔다. 여기저기를 살피며 아장아장 걷는 손자의 얼굴이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걷다가 작은 수조를 발견했다. 땅속에 나직하게 묻힌 고무 물통 안에는 올챙이 몇 마리가 헤엄쳤고, 연꽃과 부레옥잠도 피어 있었다. 손자는 연잎에 앉은 청개구리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무척 신기해했다. 나는 곁에서 흐뭇한 얼굴로 아이를 지켜봤다.     

  

 그 순간 울리는 메시지 알림 소리에 생각 없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때 손자는 청개구리를 더 자세히 보려고 수조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철퍼덕’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아이의 작은 몸이 물속에 푹 잠긴 것을 보며 공포에 사로잡혔다.      

손자의 얼굴엔 펄과 개구리밥이 더덕더덕 묻고, 속옷은 푹 젖었다. 크게 울기 시작하는 아이를 업고 집까지 냅다 뛰었다.      

 


 놀란 아내가 소리쳤다.

 “내가 아이 볼 때는 꼭 붙어 있으라고 했지, 이 영감탱이야!” 

그러고는 내 뒤통수에 대고 목청을 높였다. 

“손자와 함께 남은 생 마음 편히 지내려면 순간의 실수로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언제나 명심하소!”     

 나는 이 사건 이후 아이에게서 절대 눈을 떼지 말라는 아내의 황혼육아 지침을 성실히 실천하는 영감탱이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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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한 원고 원문입니다.


간 떨어진 영감탱이

                                   - 안창호 


  모내기를 하는 논에 물이 차면 ‘개골개골 개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초등학생인 손자에게 개구리가 되는 과정을 살펴보자며 페트병에 올챙이를 잡아 넣어주기도 한다.     

자연 시간에 개구리 해부도 했고, 통통하게 살찐 녀석은 할배 어린 시절 군것질거리이었다. 또 개구리는 매미처럼 암놈은 음치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수놈이 목 밑의 울음주머니를 부풀렸다 오그렸다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는 이야기도 주절주절 들려준다.     

 어둑한 밤 개구리 합창 소리 계절이 되면 “수년 전 그 일을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으니 다시는 입 밖에 꺼내지 마시오.”라는 서슬 퍼런 마나님 경고 말씀이 있었지만, 나는 혼자 겸연쩍어하고 휴대전화기를 조물조물 만지작거리며 잊지 못할 그 경험을 회상한다.     

 개구리 소리 들리는 어느 봄날이었다. 나는 첫 돌이 막 지난 손자와 함께 들판이 훤히 보이는 집 앞 공터로 나갔다. 아장아장 걸으며 여기저기를 두리두리 살피는 손자 손을 꼭 잡고 천천히 산책했다. 손자는 새로운 사물을 발견하고 재미로 가득했다. 나는 그의 순수한 표정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꼈다. 우리는 공터를 걷다가 작은 수조를 발견했다. 땅속에 나직하게 묻힌 고무 물통 안에는 올챙이 몇 마리 보이고 연꽃과 부레옥잠도 어울려 피어 있었다. 손자는 ‘장마 개구리 호박잎에 뛰어오르듯’ 물속 연잎 위에 청개구리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신기해했다. 입으로 ‘히히’ 웃으며 수조 쪽으로 다가갔다. 나는 그의 호기심을 따라가며 곁에서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문자 메시지 알림음이 울려서 일상 그대로 별생각 없이 핸드폰을 꺼내 살펴보았다. 그러나 타이밍이 최악이었다. 손자가 청개구리를 더 자세히 보려고 수조에 몸을 기울이자, ‘철퍼덕’ 물소리와 함께 수조 속으로 꼬꾸라지듯 빠졌다. 손자 몸통은 너무 빨랐고, 내가 손자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손자의 몸이 완전 물속에 잠긴 것을 보면서 나는 당황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물에 빠진 손자를 잽싸게 건져낸 후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의 안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도 수조는 얕았다. 손자의 온몸은 속옷까지 젖었다. 얼굴에는 펄과 개구리밥 오물이 더덕더덕 묻어 있었고, 두려움과 당황한 표정에서 이내 큰 울음으로 바뀌었다. 나는 손자를 안고 집까지 단숨에 냅다 뛰었다. 아내의 놀란 일성이 들렸다.

 “이게 뭔 일이여! 그래 내가 아이 볼 때는 꼭 붙어 있어라 했지. 이 영감탱이야!” 안절부절못하는 내 뒤통수에다 대고 연이어 “손자와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겠지만, 남은 생 마음 편하게 지내려면 순간의 실수로 씻을 수 없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꼭 명심하소.”라고 목청을 높였다.     

 나는 지금껏 영감으로 살면서 간 떨어진 그때의 미안한 마음에 사후 약방문이라도 ‘언제나 주의 깊게 주변을 살피고, 노는 아이 다시 한번 보고, 핸드폰을 핑계 삼아 절대 한순간도 아이한테서 눈을 떼지 마라.’는 아내의 황혼육아 지침을 성실히 실천하고 있는 영감탱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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