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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얼른 Jan 05. 2023

나는 아직도 그 X가 밉다.

<500일의 썸머>

형, 난 아무래도 연애를 평생 못할 것 같아.


20대 초반의 나는 연애고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그걸 그 사람에게 표현하고, 그 사람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렇게 연인 사이가 돼서, 사랑을 잘 이어나가는 것이 것이 연애의 하나의 과정이라고 치자.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까지 오케이, 가능했다. 그런데 그다음... 저 사람에게 어떻게 내 마음을 표현하지? 저 사람이 날 좋아한다고?


그 사람이 날 좋아한대!!!


그렇게 연인 사이가 되어도 문제였다. 늘 모든 것이 초진지했던 20대 초반의 나는 연애도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조금 힘을 풀고 그냥 그 상황을 즐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의 내가 비로소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게 시작한 연애에 있어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방어적이고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저돌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상대와 속도가 안 맞거나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거나... 그랬다. 얼마 안 가 깨지고, 불안해하고, 모든 게 부족한 내 탓 같고... 그리고 그 X가 너무 미웠다.


형: 야, 그럼 이걸 봐봐.


[이 글은 스포가 없습니다. 이 영화 보라고 (혹은 또 보라고) 영업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영화 <500일의 썸머>는 풋풋하고 어리숙한 사랑의 시작과 끝을 남성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사랑에 허우적 되고 있는 남성이라면 공감 가는 내용이 많을 것 같다. 풋풋했던 사랑의 (흑)역사를 상기시키고 싶은 남성 역시도, 공감에 웃다가 괜히 이불 걷어차는 영화일 것 같다.


주인공 톰 핸슨(조셉 고든 레빗)은  운명적 사랑을 믿는다. 그런 그에게 운명적인 상대가 나타나는데, 그녀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 사장의 새로운 비서 썸머 핀(조이 데이셔널)이다. 그녀를 첫눈에 반했지만 표현도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애써 외면했던 톰. 그러다 우연히 회사 엘리베이터를 썸머와 같이 타게 되고, 그녀가 자신이 듣던 음악에 관심이 있어하는 것을 계기로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된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표현 한번 제대로 못하고 절절매며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던 톰. 그런데 정말 운명이었던 걸까. 다시 우연한 몇 번의 계기를 거쳐 썸머와 가까워지고 본격 썸을 타게 된다.


하지만 결과는 이별이다. (스포는 아니다.)



이 영화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시간순 플롯이 아니라는 점이다. 톰이 썸머를 만난 시점부터 500일이라는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을 필요에 따라 무작위로 보여준다. 한 시퀀스에서는 둘이 어떻게 만났는지 보여줬다가, 다음 시퀀스에서는 헤어져있고, 다시 다음 시퀀스에서는 썸을 탔다가, 그다음에는 이별에 힘들어하는 톰의 모습을 보여주는 구성이다. (이별 장면 역시도 극 초반에 나온다.)


그러니 관객은 둘의 사랑이 점차 커지는 과정에 몰입 하기보다는, 그들의 관계에 물음표를 던지며 몰입하게 된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 생각에 ~~ 해서 차인 거 아냐?"

"아무리 그래도 여자가 조금 너무 했는데?"


마지막 물음표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영화는 주인공 톰의 시선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톰은 썸머와 썸을 타며 그녀가 운명적 사랑이라고 확신을 하는 반면, 썸머는 운명 따위는 믿지 않는다고 톰을 밀어낸다. 그러나 둘의 썸은 계속된다. 그럴수록 톰은 이제는 썸을 넘어 연인으로서 자신의 운명적 사랑을 완성하고 싶어 한다. 오로지 톰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제발 둘이 사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썸머는 여지만 주고 싶었던 걸까?



이 영화의 두 번째 특별한 점은 프레임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영화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프레임이기 때문에, 프레임 속에 또 다른 프레임이 등장하면 관객은 영화 속 세계관에 몰입이 깨지기 마련이다. 감독(혹은 작가)은 이 점을 활용해 관객에게 새로운 프레임, 새로운 관점을 던진다. 영화 자체가 톰의 시선을 따라가게끔 구성된 커다란 프레임이라면, 곳곳에 썸머의 프레임 혹은 톰의 조금 더 세분화된 프레임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에 쌓아오던 관객의 몰입에 새로운 시선을 던진다. 그러면서 우리는 썸머의 입장을 생각해볼 수 있고, 톰의 아픔에 더욱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 영화가 꾸준히 회자되고 있는 이유도 이 이유라고 본다.


<500일의 썸머> 오프닝 시퀀스. 두 인물의 성장 과정을 두 가지 프레임으로 보여준다.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지고, 그 누군가도 나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 그것만큼 영화적인 순간은 없다. 영화 속 주인공 톰은 그러한 순간에 온 우주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고, 모두가 자신을 축하해주는 것 같다고 느낀다. 마치 내 20대 초반에 사랑 고백 성공한 직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영화는 운명을 믿는 톰이 운명적 사랑을 완성하고자 하는 큰 이야기 속에서 운명적 사랑을 믿지 않는 썸머의 관점을 투입시키며, 관객에게 사랑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정말 상대를 사랑하는지. 상대를 사랑하고 있는 나를 사랑하는 건 아닌지.'


20대 초반에 나는, 아마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하려는 마음보다 누군갈 사랑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에 상대를 맞추려다 보니 자꾸 어긋나고 그러면서 많은 불안과 아픔을 겪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다 보니 그럼에도 나를 이해해주려고 했던 과거의 (비단 연인 사이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려고 했던 모든) 인연들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사랑에 빠진 내 모습을 사랑하는 마음을 잠시 눌러두고,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려 노력한다면. 상대에게 또 다른 우주가 되어주려 시나브로 고민하고 실행한다면. 그러다 상대도 나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면. 서로는 서로에게 더욱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제야 '사랑하고 있는 나'도 양껏 사랑할 수 있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톰은 과연 썸머와 운명적 사랑을 완성할 수 있을까? 썸머의 진심은 무엇일까?

여름에 만난 그들에게 500일 뒤에 찾아온 가을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 <500일의 썸머>은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다. (광고 아님. 2023년 01월 05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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