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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얼른 Jan 08. 2021

당신의 재택근무는 안녕하십니까?

저는 호그와트 마법부로 출근합니다.

 재택근무의 최대 장점은 편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최대 단점은.. 편하다는 것이다. 편한 것은 좋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다. 해야 하는 것이 휴식이 아니라 일이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 역시도 코로나 단계가 격상됨에 따라 즉각적으로 재택근무를 권고했다. 사내에서 자율적으로 재택근무를 계속 실시하기도 했고, (내가 입사하기 전인) 메르스 등에도 이미 시행을 했던 이력이 있던 터라 큰 무리 없이 모두가 빠르게 재택근무에 적응하고 일을 진행했다. 온라인으로 문서를 주고받고, 온라인 미팅을 하고, 심지어 온라인 회식도 하며 재택을 유연하게 적응해나갔다.  


 그 속에서 나 역시도 빠른 적응을 해갔다. 일어나서 사무실까지 10초, 인천 본가에서 서초 사옥까지 1시 30분 걸리던 거리를 1시간 29분 50초나 단축시켰다. 그 점이 무척이나 편했기에 좋았다. 회사에 출근하면 사내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곤 했는데, 대신에 셀프로 캡슐 커피를 내리고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모든 것이 재택화 되었다. 


 그런데 편한 것이 꼭 좋기만 할까? 


 침대에서 사무실까지 10초라는 것은 다시 생각하면 일을 해야 하는 공간에서 휴식을 하는 공간까지의 거리도 10초라는 말이다. 눈만 돌리면 보이는 침대가 은근히 사람을 유혹했다. 마치 계속해서 휴식모드가 되길 바라는 것 같았다. 일을 하고 있는데도 능률이 오르지 않고, 집중을 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을 느꼈다. 일과 휴식을 분리를 하기에는 나의 방이 너무 좁았기 때문이다. 


 가족의 인식도 한 몫했다. 분명 일을 하고 있는데,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으니 가족들은 나의 일이 (훨씬 더) 유연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밥을 먹으러 나오라던가, 급한 심부름을 시킨다던가, 종종 청소기와 빨래도 부탁했다. 나는 계속해서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점심시간은 1시간 후야.' '퇴근까지 1시간 남았어'


 그래서 초반 전사 재택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집을 나와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아무리 마스크를 쓰고 카페에서 앉아있다 하더라도, 이럴 거면 내근과 재택의 차이가 뭔가 하는 의문이 계속 맴돌았다. 그래서 그 후로는 나오는 것도 자제했다. 여러모로 재택은 무척이나 편했지만, 편하기에 불편했다. 




 재택이 주는 편함과 불편함의 사이에서 조금 더 발전된 적응이 필요했다. 나는 고민했고 다양하게 조금씩 실천해가고 있다. 그중 하나는 노래를 트는 것이었다. 휴식의 공간에서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나는 일을 하고 있다'라고 스스로 마음을 갖고 주변의 환경을 조성할 필요성이 있었다. 나는 유튜브의 '능률 오르는 playlist'를 시작으로 'cafe jazz playlist' 등등을 거쳐 요즘은 이곳에 자주 출석(?)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FWC0kMnZ0EA

바로 해리포터 ASMR이다.


 영상을 눌러보면 난로 소리 + 연필 소리밖에 안 나와서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영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24시간 라이브 ASMR 방송이라는 것이다. "투명 망토 쓰고 호그와트 그레이트홀에서 몰래 자습하기"라는 제목의 이 영상은, 마법사가 되어 호그와트에서 자습을 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영상에 들어가면 실시간 대화창이 있는데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기숙사를 골라 채팅방에 출석체크를 하면 운영자가 실시간으로 확인하여 답글을 달아준다. 나와 같은 직장인을 위한 마법부 출첵도 있다. 


 해리포터를 보고 자란 나로서는 기숙사를 못 고른다는 게 무척 아쉽지만, 마법부로 출첵을 하고 나면 설정한 세계관에 묘하게 몰입된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세계관에서 마법사가 되어 각자 집중해야 할 일을 하는 것도 재미 포인트다. 대학원생을 위한 도비 출첵도 있고, 딴짓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아즈카반에 수감을 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매번 (재택) 출근해서 이곳에 들어오지는 않고, 일이 집중이 안될 때마다 찾아온다. 책임감 있는 마법부가 되어 마법세계의 질서를 위해 일할 상상을 조금 하다 보면 어느새 일을 해야 하는 모드로 바뀐다. 나 이외에 누군가들이 같은 공간에서 무언갈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일을 하는 사무실의 동료를 볼 수 없으니, 불특정 마법사들(?)을 택한 것이다. 


가끔 씹히면, 기어코 기다렸다가 또 보내서 답장을 받아본다.


 혹시 재택근무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가? 그렇다면 망설이지 말고 마법부에 입사하는 것은 어떨까? 계속해서 출석과 퇴첵을 하는 실시간 채팅방을 보면 참여하기에 살짝 현타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만 어색할 뿐, 들어온다면 진지하게 세계관을 임하게 될 것이다. 

 근무 환경 때문에 재택을 하지 못하는 우리 가족들은 나를 무척 부러워한다. 나는 일부는 동의하면서도 전체는 동의하지 못한다. 그래도 일은 일이기에 쉬는 것은 아니며, (위에도 명시한) 재택 나름의 고충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재택근무를 적응하고 돌파하고 있을까. 어쩌면 인간은 아주 미세한 영향이라도 서로에게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별난 사회적인 동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떨어져 있어도 같이 있는 느낌을 받기 위해 다각면의 고민과 별별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닐까? 나와 우리는 어쩌면, 하루빨리 코로나가 잡혀 재택근무가 끝나는 날이 오길 바랄지도 모른다. 


링크

- 24/7 방학, 투명 망토 쓰고 호그와트 그레이트홀에서 몰래 자습하기 https://www.youtube.com/watch?v=FWC0kMnZ0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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