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교환생활
이제 미국에 온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낯선 환경에 몸도 마음도 적응을 하면서 안갯속을 걷는 것 같았던 생활에 비로소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다. 처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이곳에서의 재미를 찾았고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다. 생각보다 이곳의 문화, 음식 등에도 잘 적응한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게는 딱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다. 바로 자전거다.
웬 자전거?
내가 다니는 학교는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Davis라는 동네이다.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Bike Town"이다. 이름에서부터 예상할 수 있듯이 이 동네 사람들의 주요 이동 수단은 자전거이다. 자전거도 자동차와 같이 도로에서의 교통 법규가 있고 자전거 도로도 매우 잘 되어있다. 캠퍼스 내에는 자전거 전용 회전 교차로가 있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는 학교 굿즈에 자전거가 그려져 있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을 정도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전거 구하는 게 문제지, 자전거 그냥 타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고 해도 샹활에 큰 지장이 없다. 친구들과 한강에서 따릉이를 타지 않는 이상 자전거를 평소에 이용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두 번 자전거를 타보려다가 포기했고, 결국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상태로 "Bike Town"에 오게 되었다.
결국 나는 평생 외면하려고 했던 자전거를 배워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학교 오티가 시작하기 전에는 홈스테이 호스트 분과 근처 공터에 가서 매일 자전거를 조금씩 연습했다. 국제학생 모임에 나간 이후에는 거기서 만난 친구들이 자전거 연습을 도와주었다. 이곳의 현지 학생인 한 친구는 본격적으로 개강하기 전 캠퍼스 투어 겸 자전거 연습을 시켜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기적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는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발전이었다. 그러나 Davis의 주변 환경은 나에게 생각보다 많은 것을 요구했다.
이곳에서 자전거는 거의 자동차와 동일시된다. 자동차 도로 옆에 함께 표시된 자전거 도로를 따라 신호를 지키면서 이동해야 한다. 신호가 없는 곳에서는 수신호를 보내 좌회전인지 우회전인지를 표시하는데 이때 한 손이 핸들에서 떨어져야 수신호를 보낼 수 있다. 양손에 온 힘을 주고 핸들을 잡아도 모자랄 판에 나에게 자전거로 여기저기 이동을 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것은 마치 갓 걸음마를 배운 갓난아기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걸어보게 시키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자전거 없으면 너무 힘들 거라는 말에 처음 오티 때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보았다. 걸어서 40분 걸리는 거리가 자전거를 타니 30분이 걸렸다. 그렇게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오티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피곤이 몰려왔다. 이 정도면 그냥 걷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오티가 끝난 후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려던 순간 나는 출발과 동시에 넘어졌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자전거가 점점 미워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휴대폰 거치대도 없었던 나는 결국 호스트에게 도움을 요청해 자전거를 차에 달고 집으로 귀가했다. 이날을 계기로 자전거와는 조금 더 멀어지게 된 것 같다.
개강 3주 차인 지금 아직까지 무사히 잘 돌아다니고 있다. 학교로 갈 때는 수업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더라도 버스를 타고, 캠퍼스 내에서는 걷기도 한다. 가끔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너무 오래 걸리면 (이곳의 버스는 배차 간격이 1시간이다) 걸어가기도 하고 밤늦게 친구들과 모임이 있으면 차 있는 친구가 집에 데려다 주기도 한다. 물론 한국과 비교를 한다면 매우 힘들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자전거 없이 자전거 타운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