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평범해진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눈이 펑펑 내렸다. 이렇게 내린 폭설은 "아직 출근을 못했는데 퇴근시간이 다가온다"와 같은 사람들의 퇴근길 썰들을 만들어냈다. 폭설이 내린 다음날 아침 가장 핫한 토크 주제는 '집에 가는데 몇 시간이 걸렸나'였다. 또 소복이 쌓인 눈은 도심 한복판에 오리들이 출몰하게 했다. 곳곳에 눈사람 대신 눈오리들이 등장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노란색 플라스틱 오리 모형을 탐냈다. 이 이야기만 들으면 눈이 많이 내린 지극히 평범한 겨울날 중 하루가 떠오른다. 그런데 한 가지, 예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코로나와 1년째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 흐른 겨울과 2020년에서 2021년으로 흐른 겨울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작년 겨울은 상당히 따듯했다. 추운 것을 싫어하고 패딩보다는 코트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딱 좋은 날씨였다. 그러나 따듯한 것은 날씨뿐이었다. '코로나 19'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자 사람들의 일상은 바뀌었다. 마스크는 물론이고 친구를 만나 술을 한잔 마시는 것조차 더 이상 '평범한' 일상이 아니었다. 이따금 버스를 타고 바깥 풍경을 보면 공상과학 영화에서 보던 회색 도시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2020년에서 2021년으로 흘러가고 있는 지금, 코로나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 평균 확진자 수는 지난겨울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 하지만 이번 겨울, 우리는 나름대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1년 전에는 마스크가 너무 답답했다. 화장이 다 마스크에 묻어났고, 괜히 피부도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지금도 마스크를 껴야만 하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마스크를 끼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이 더 어색하다. 또 가끔 마스크 속에서 나 홀로 신나게 립싱크를 하면서 길을 걸어보기도 한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많이 달라졌다. 처음에 Zoom으로 친구들과 만난다는 것은 그저 새내기 생활을 즐겨보고 싶은 20학번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친구들과 다 같이 만날 여건이 되지 않으면 'Zoom으로 볼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늦은 밤 줌으로 가볍게 만나고, 각자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준비하기도 한다. 물론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과의 약속은 더 이상 그렇게 거창한 일정만은 아니다. 점심 회식이라는 말이 처음에는 의아하게 들렸다. 흔히 회식이라고 하면 퇴근 후 고깃집에서 술을 마시는 풍경이 떠오른다. 다시 말해 점심과 회식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연말 회식은 코스로 제공되는 파스타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최근 새롭게 생겨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마스크, Zoom 술자리, 점심 회식 모두 코로나 19 이후 눈에 띄게 바뀐 것이다. 두 번째로, 이제는 평범한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외출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익숙해졌고, Zoom과 같이 화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으며 점심 회식이라는 단어가 낯설지만은 않다.
작년 겨울은 이번처럼 눈이 펑펑 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밖에 나가기에는 더 좋았던 날씨였음에도 처음 다가온 코로나 때문에 모두가 두려움에 떨었고 외출을 무서워했다. 밖에 나가서는 내가 마주치는 불특정 다수를 무조건적으로 경계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일상적이지 않은 겨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난겨울을 만끽하지 못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끼고 있으며 뉴스에서는 사적 모임을 자제해 달라는 경고가 계속해서 보도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겨울을 즐기고 있다. 눈이 오자 잠깐 밖에 나와 눈오리를 만들고, 불편했던 퇴근길은 다음날 웃긴 이야깃거리가 된다. 또 불특정 다수를 경계하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 또 생활을 하고 있다. 코로나 19 이전과 비교하면 사뭇 다른 풍경이지만 이제는 이 새로운 것들이 평범한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어찌 보면 시사용어로만 듣던 뉴 노멀은 코로나로 인해 만들어진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환경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항상 적응한다. 처음에 휴학을 결정하고 사회를 경험하면서 '과연 내가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또 반대로 '복학하면 학교에 적응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한다. 새롭고 낯선 환경이 평범한 일상이 됐다는 것이다. 마치 신발을 새로 사고 얼마 동안은 '새 신발'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냥 신발'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코로나가 종식되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일이다. 그러나 종식을 기다리면서도 그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