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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현 Sep 08. 2021

터닝 포인트

기획취재팀 리서처로서의 1년

갑작스럽게 시작됐던 보도국에서의 1년이 마침표를 찍었다. 1년 동안의 생활을 어떻게 글로 녹여낼지 한동안 고민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템에 대해서 쓸까? 내가 배운 점에 대해서 쓸까? 아니면 인상 깊었던 순간들을 모아볼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결론은 한 가지로 귀결되었다.

“너무 담아내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고민 끝에 나는 그동안 있었던 에피소드보다는 1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나에게 기획취재팀 리서처로서의 1년은 터닝포인트와 같은 시간이었다. 중학생 때 뉴스를 보다가 이를 전달하는 사람들이 너무 똑똑하고 멋있어 보였다. 그때 내 꿈은 ‘뉴스에 나오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 진로탐색 시간이 늘어나면서 내가 봤던 뉴스의 리포트를 하는 사람이 기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누군가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기자라고 답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기자라는 직업에 특별한 매력을 느껴서 ‘기자가 너무 하고 싶다’는 정도는 아니었다. 진로탐색과 관련해서는 학교에서 반강제적으로 꿈을 구체화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마침 나는 언론 쪽에 관심이 있었고 기자라는 선택지가 내 꿈을 구체화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괜찮은 하나의 선택지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당 분야에 더 관심이 갔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좀 더 깊게 알아보고 준비를 해야겠다고 계획했다.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았다. 현직 언론인들의 강연도 들어보고 교내 학보사에 들어가 처음으로 내 손으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일도 해 봤다. 그리고 저널리즘 스쿨 세미나에 참여하면서는 좀 더 본격적으로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선배들을 만나고 ‘학내 이슈’에서 벗어나 원하는 내용을 취재해보기도 했다. 사실 저널리즘 스쿨 세미나에서 기사를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학보사 기자일 때는 주로 교내 이슈를 취재했고 인터뷰 요청을 해도 학보사 기자임을 밝히면 취재에 응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세미나를 하면서 취재를 하려고 하니 내 신분을 설명하기에도 애매할뿐더러 사람들이 취재에 잘 응해주지도 않았다. 맨땅에 헤딩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이 시기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과연 이게 내가 정말 원하고 좋아서 하는 걸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내가 이걸 좋아한다고 세뇌당한 걸까?” 그래서 나는 대학생활이 끝나기 전에 내가 끌리는 것은 뭐든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여러 가지 대외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던 중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치면서 나는 모든 대학생들이 그랬듯이 꼼짝없이 집에 발이 묶인 신세가 되었다. 한 학기 동안 집에서 하루 종일 노트북 화면으로 수업을 듣고 있으니 ‘휴학’이라는 두 글자가 계속해서 눈앞에 아른거렸다. 20년 1학기가 끝나갈 때 즈음 다시 언론사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연히 보도국 기획취재팀에서 리서처라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출근 첫날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나에게는 내가 취업하기를 원하는 방송국 중 한 곳에서의 첫 사회생활이었기 때문에 설렘,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졌고 사무실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출근 직전 날 밤까지 상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출근 첫날 모든 것이 와장창 깨졌다. 모두 너무 바빠 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였고 나는 눈치 보며 따라가기 급급했다. 처음으로 우리 팀의 선배들한테 인사를 드릴 때 선배들이 차례대로 성함을 말씀해주셨다. 그런데 회의실이 아닌 사무실에서 모두가 일을 하던 도중에 벌어진 일이라 매우 정신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나는 한 선배가 이름을 말씀하시고 그다음 선배가 이름을 말씀하시는 동시에 방금 전에 들은 선배의 이름을 까먹어버렸다. 순간 눈앞이 깜깜하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선배가 다가와서 나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은 “일본어 할 줄 아세요?”였다. 일본어의 일자도 모르는 나는 더욱 당황하며 모른다고 답했다. 모든 것이 어색했다. 결국 아이템의 흐름도 파악하지 못한 채 엑셀 기입을 시작했다. 이날 하루는 사실 기계가 된 기분이었다. 이날 퇴근하면서 딱 두 가지 다짐을 했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자.”

“선배들이랑 얘기할 기회는 놓치지 말자.”


첫 번째 다짐 때문인지 이후 나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우선 주어진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많은 것을 얻고 배운 1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다짐 때문에 나는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다. 아이템 발제 회의 때 내가 제시하는 아이디어가 아이템으로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저 이런 거 생각해봤어요”하고 우선 제시를 해보았다. 일을 할 때도 나는 ‘과몰입’을 했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말하기도 했지만 어떤 일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물론 그 결과는 끊임없는 야근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솔직히 야근이 반복될 때마다  몸은 방전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힘들어서 이 일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년 전의 나보다 리서처로서 1년을 보내고 난 후 많이 성장하게 된 것 같다. 우선 기자라는 꿈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언론고시 준비를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내가 어떤 길을 밟아 나아가야 할지 이정표가 생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배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못했던 생각들이 조금씩 갈피를 잡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내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어떤 매력을 느낀 것인지,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 막연하기만 했던 생각들에 대한 답을 정리할 수 있었다. 1년 동안 출근 첫날의 다짐을 모두 지키고 그 이상의 것을 배워갔다. 이번 1년은 조금 흐릿했던 길에 안개를 걷어준 터닝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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