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고 말하게 되는 날도 오겠지요? 어릴 때에는 어른이 되지 않을 것 같았고, 입학할 때는 졸업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이미 어른도 됐고 졸업도 한 것처럼요.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라면 저는 일 초의 고민도 없이 라면입니다. 그 녀석은 한강의 은박지와도 어울리고, 분식집의 라디오와도 어울리고, 편의점의 외로움과도 어울리니까요. 그나저나 밤바람이 선선한 오늘 같은 날에는 생각나는 라면이 또 하나 있습니다.
라면에 대한 태초의 기억인, 물놀이 후에 먹는 라면이죠. 족히 열 사람은 먹을 것 같은 커다란 캠핑냄비에 물을 가득 길러 옵니다. 눈대중으로 대충 물을 맞추고, 부글거리기 시작하면 마법의 가루를 뿌려요. 끓어 올라 넘치기 전에 면을 담굽니다. 열 알 정도 되는 계란도 깨어지고요. 엄마와 이모들이 큰 목소리로 부릅니다.
"그만하고 밥 먹으러 오래이~"
아쉽지만 계곡물은 잠시 안녕입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새 수영은 잊혀집니다. 그릇에 코를 박고 국물까지 싹싹 비워요. 라면 국물 속에 들어가 물놀이할 기세로 쭉쭉 들이켜요. 첫 물아일체의 순간입니다.
그 날은 제가 삶에서 가장 사랑하게 될 무언가와의 첫만남이었어요. 첫사랑이라면 은근하고 다정한 느낌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어요.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부동의 1등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까요.
이후로 라면과의 추억도 많이 생겼습니다. 인연인지 아빠는 라면 회사인 농심에서 근무를 시작하셨고, 덕분에 집 창고에는 라면 박스들이 늘 쌓여 있었어요. 한 두 박스씩 실어서 캠핑을 떠나면, 아빠가 꼭 하시는 일도 있었죠. 옆 텐트 가족들에게 나눠주는 일이요.
저희 아빠는 바다같은 오지랖을 갖고 계셔서, 캠핑을 가면 꼭 그 주위 아빠들과 친구가 되었어요. 분명 처음 보는 사이였는데, 조금 있으면 누군가의 텐트를 쳐주고 있고, 또 조금 있으면 그 속에서 과일을 먹고 있죠. 해가 지면 숯불 곁에서 술도 한 잔 같이 기울입니다. 떠날 때는 어느새 형님, 동생하며 '도착하면 전화드리겠습니다~' 손을 흔들고 있어요.
아빠는 캠핑에 가서 누구를 만날지도 모르면서, 늘 차에 두둑하게 라면박스를 채우셨어요. 엄마는 차에 자리 없다고 윽박지르는데, 아빠는 "가서 나눠줘야 한다~" 태평하게 주장하는 모습이 우스웠습니다. 그래도 여행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엔 라면이 온데간데 없었으니, 헛된 땀방울은 아니었겠지요.
잊혀지고, 잊혀지고, 또 많은 것들이 잊혀지겠지만 산 속에서 먹는 라면 맛은 여전히 혓바닥에서 끈적입니다. 달이 뜨고 고기들이 물가로 나올 시간엔, 때가 되었다며 머리에 랜턴을 달고 나서죠. 한 손에는 냄비, 한 손에는 물고기를 넣을 설거지통. 어설프지만 바지도 슥슥 걷어 올려봅니다. 이리 첨벙, 저리 첨벙. 엄마는 일찌감치도 넘어지시며 잡아둔 고기 녀석들 다 도망 보내고, 남은 건 쪼무래기들 뿐입니다. 먹기도 애매한 아가들과는 작별하고, 다슬기나 조개들만 물기를 털어 가져 갑니다.
엄마와 아이가 아쉬워하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아빠는 물을 올립니다. 김치도 찾아 내어 놓고요.
글은 읽으며 상상하는 맛이 있지만, 요놈은 상상하는 맛보다 보는 맛이 좋으니 슬쩍 올려 봅니다.
매주 매달 캠핑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인데, 다행스럽게도 사는 동네에서 굉장한 라면 맛집을 찾았습니다. 그것도 이제 햇수로 4년이 되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가서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있지요.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거길 꼭 데려갑니다. 이 동네에 또 놀러 오라고요. 보다 보니 또 그립습니다. 군침도는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라고요? 저라면 라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