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과 상처

by 노란옥수수


아무 이야기나 써야 겠다고 생각했다. 떨리는 손으로 여자는 손을 뻗었다. 이미 여자의 옆구리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미 아이디어와 습작으로 지저분한 노트를 열자마자, 남자가 달려왔다. 만년필을 빼앗은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짓이야? 당장 병원에 가야지!”

“어? 병원에?”

“그래. 너 지금 피가 나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 아플 때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병원에 가는 거야. 이 바보야.”

“그런 거야?”

여자는 멍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진심으로 몰랐다는 투였다. 그러고는 남자에게 빼앗긴 만년필 대신 다른 볼펜을 꺼내 노트에 적었다.

[아플 때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병원에 가는 것이다.]

기어코 글을 쓰는 것에도, 그 내용 자체에도 황당해하며 남자가 머리에 손을 짚었다.

“됐고. 어서 병원이나 가자.”

“하지만 원고가 안 됐어. 내일까지 원고를 주기로 했어.”

“마감이야 좀 늦으면 되잖아. 마감을 지키는 작가보다 안 지키는 작가가 훨씬 많던데, 뭐.”

“정말?”

“나도 몰라. 그냥 한 말이야. 애초에 다치지 않았으면 이런 잔소리도 안 듣고 병원에도 안 가도 됐잖아. 어쩌다 다친 거야?”

“그게 기억이 안 나.”

여자가 몽롱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피가 나오고 있는 옆구리를 슬쩍 만지다가 아차 하며 손을 뗐다. 손에 피가 흥건하게 묻었다. 손을 무심코 닦을 데를 찾다가 그냥 자기 옷에 쓱쓱 닦았다. 남자는 더 아무 말도 없이 여자를 책상에서 끌고 나와 병원에 데려갔다. 다행히 응급실에 도착할 즈음에는 피가 거의 멎어 있었다. 간단한 검사와 드레싱을 받았다. 여자가 남자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안 돼?”

“오늘은 그만 써. 좀 쉬란 말이야.”

여자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남자가 귀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지으면 남자는 여자를 꼭 껴안고, 어지간한 부탁은 다 들어줘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호했다. 남자는 여자를 침대에 눕혔다. 칭얼거리다 여자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그런 여자를 보고 남자는 어쩔 수 없는 사랑으로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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