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병과 꽃 그림

by 노란옥수수

아무 이야기나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이는 다락방에 올라갔다. 낡은 책상 앞에 앉았다. 공책을 열어 일단 제목을 썼다. 미나가 다가와 관심을 보였다.

“꽃병과 그림 속 꽃이라고? 뭔가 심오해 보이는 제목이네.”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눈앞에 보이는 걸 제목으로 쓴 거야.”

제이는 자신의 앞에 어딘가를 가리켰다. 수납장 위에는 빈 꽃병이 있었고 벽에는 꽃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미나는 픽 웃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쓸 건데?”

“나도 몰라. 그래도 제목과 관계 있는 이야기를 써야지.”

“소설? 에세이?”

“소설.”

“그러면 주인공이 필요하겠다.”

미나는 신이 난 표정으로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가져왔다. 의자까지 끌어와 아예 제이의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곰곰이 고민했다.

“꽃병과 그림 속 꽃이라는 제목의 이야기 속 주인공은 어떤 사람일까?”

“일단 꽃을 좋아하는 사람일 거야.”

“어쩌면 꽃 자체가 주인공일 수도 있지.”

“그러게. 아니면 꽃병이 주인공이거나?”

미나는 키득거리며 하늘색 색연필로 슥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저 꽃병을 그리는 거야?”

“그럴 리가. 보이는 거랑 똑같이 그릴 거면 뭐 하러 이야기를 만들겠어. 봐.”

그것은 하늘색에 치맛자락이 풍성한 드레스였다. 언뜻 꽃병을 닮아 있었지만, 실제 꽃병보다 훨씬 화려하고 우아했다. 미나가 그린 드레스를 보고 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꽃 나라의 공주님인가 보지.”

“맞아. 정확히는 화국이라고 하자. 화국에 단 하나뿐인 공주님인 거야.”

“그러면 나중에 여왕님이 되는 건가?”

“그게 문제야. 공주님은 아주 사랑스럽고 마음씨도 착했지만, 그래서 만만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어. 그래서 툭 하면 공주님이 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야.”

“정치 소설로 가는 거야? 동화가 아니라?”

“난 동화 싫어해. 알잖아.”

“그림은 이렇게 사랑스러운 동화풍으로 그려 놓고? 아, 이 공주 진짜 예쁘다.”

어느새 스케치 안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티아라를 쓴 아름다운 공주가 그려져 있었다.

“공주 이름은 무엇으로 지을까? 보석 이름? 아니면 꽃 이름? 그것도 싫으면 역사적 인물 중에 하나?”

미나의 질문에 소년은 고민에 빠졌다. 미나도 마찬가지였다. 소년은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일리노이?”

“미국? 무슨 소리야.”

“그러면 아쿠아마린은 어때? 하늘색 드레스를 입었으니까.”

“너무 길어.”

“코스모스는?”

“하늘색 코스모스가 어디 있어. 그냥 스카이 공주로 하자. 스카이 공주에게 있는 시련은 이미 정해졌으니까 그걸 정리해야 해.”

“임금님이 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정하면 되겠네. 결말에서는 모든 방해를 물리치고 왕이 되도록 만들고.”

“방해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글쎄, 일단 보수적인 사람들이겠지. 수염 길고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들. 여자의 명령을 듣고 싶지 않은 가부장의 화신들.”

미나는 19세기 프랑스식 예복을 입은 노인들을 그렸다. 검은색이거나 짙은 갈색의 예복을 새하얀 드레스 셔츠와 레깅스 위에 갖춰 입고 있었다. 표정은 몹시 근엄하였다. 소년은 그들을 보면서 고민에 잠겼다.

“왜? 별로야?”

“아니. 너무 뻔해서. 그렇게 하면 젊은이가 노인을, 여자가 남자를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이야기로 남아 버려.”

“그게 뭐 어때서?”

“오해하지 마. 그냥 이거야. 이것으로는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만들기 어렵다는 거야. 무언가를 어딘가에서 비틀어야 해.”

“굳이? 왜? 전통적인 서사만 사용해도 충분히 매력 있게 만들 수 있어.”

소년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반박할 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였다. 미나가 활발하게 스케치북을 넘겼다.

“자. 이제 시작하자. 첫 번째 문장을 써. 내가 그에 맞게 그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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