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만해!"

아무 이야기나 쓰자고 생각했다.

by 노란옥수수

아무 이야기나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설거지를 끝내어 젖은 손을 대충 옷에 닦고 서재로 갔다. 노트북을 열었다. 흰 네모 안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이다를 가져와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한 글자를 썼다.

[사]

그리고 한 글자 더 무엇을 쓸지 고민했다. 고민을 아무리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서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치즈 케이크를 한 입 먹었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와서 한 글자 더 썼다.

[랑]

“그래. 역시 사랑이지.”

“엄마. 뭐 해?”

아이가 잠이 덜 깬 얼굴로 말을 걸었다. 나는 자랑스럽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엄마는 지금 이야기 쓰고 있어. 봐, 벌써 한 단어나 썼다고.”

아이는 눈을 두 번 천천히 끔뻑였다. 그리고 나를 한 번 보고, 화면을 한 번 보고, 다시 나를 보며 어떤 표정을 지었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읽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표정이야?”

“[이게 무슨 이야기라는 거야?]라고 묻는 표정.”

“참 나. 그렇게 긴 이야기를 얼굴로 말하면 어떻게 알아.”

“엄마니까 당연히 알아야지. 어쨌든 이게 어떻게 이야기야? 그냥 단어 하나 쓴 거잖아.”

“기다려 봐. 이 단어를 다른 단어들로 꾸미다 보면 결국 이야기가 된다고. 봐.”

[나는 딸을 아주 사랑한다.]

“엄마. 엄마가 날 사랑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

“이건 이야기라니까, 여기에 나오는 ‘나’는 엄마가 아니고, 당연히 ‘딸’도 네가 아니야. 다른 이야기 속 다른 사람들이야.”

“어떤 사람들인데?”

“그치, 궁금하지? ‘나’가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말을 했을지 말이야. 네가 생각할 때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건데. 그러면 이건 어때?”

[비록 내가 딸을 안아주지 못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딸이 아주 많이 울고 있더라도. 내가 딸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건 또 뭐야. 왜 사랑하는데 안아주지 않아?”

“이상하지? 이렇게 이상한 부분을 만들어 주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어간다고. 이제 네가 좋아하는 무서운 이야기로 점점 바꾸어볼게.”

[나는 그날 커다란 트럭에 치이고 말았다. 딸의 작은 곰 인형을 주워 주려다 일어난 사고였다. 급히 구급차가 달려와 나를 병원으로 싣고 갔지만, 끝내 나는 죽고 말았다. 내가 죽어가는 모든 과정을 딸은 지켜보았다. 딸의 표정은…]

“그만해!”

“왜?”

나는 짓궂은 표정으로 글을 적어나가다, 손을 멈추었다. 딸의 표정이 어느새 사색이 되어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싫단 말이야. 차라리 다른 걸 써 줘.”

“하지만 이미 이야기는 시작되어 버렸는걸.”

“없애면 되잖아. 나 이거 싫어.”

딸은 억지로 내 노트북을 덮어 버렸다. 그리고 나를 서재에서 끌어냈다. 나는 고사리 같은 손에 붙잡혀 질질 끌려 나왔다. 딸은 부엌의 식탁에 나를 앉혔다. 그리고 당당히 주문했다.

“나 목말라. 그리고 출출해.”

“네가 직접 가져다 먹으면 되잖아. 시켜 먹긴.”

나는 툴툴대면서도 보리차와 포도를 가져와 딸의 앞에 놓았다.

“먹여 줘.”

“포도만 먹여 줄게. 물은 네가 마셔. 먹여 주다가 사레 들릴라.”

내가 입에 넣어 주는 포도를 우물우물 씹다가 꿀꺽 삼킨 후에야 딸은 겁을 조금 쫓아낸 듯 아까보다 편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부탁이 있어.”

“응. 뭔데?”

“앞으로도 엄마가 죽는 이야기는 쓰지 말아 줘.”

“이유가 있어?”

“엄만 그것도 몰라? 진짜 나빴어.”

딸은 눈을 흘겼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을 지은 후 대답했다.

“슬퍼. 너무 슬퍼. 엄마가 죽는 상상을 하기만 해도 너무 싫어. 끔찍하단 말이야.”

“하지만 이건 그냥 이야기일 뿐이야. 진짜로 엄마가 죽은 게 아니야.”

“그래도 싫어. 다신 그런 이야기는 쓰지 마. 알았지?”

“으음.”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하기 싫어 못 들은 척 딴청을 부렸다. 딸이 두 손으로 내 볼을 마구 짓눌렀다.

“알았지? 알았다고 대답해. 빨리!”

“알았어. 알았어. 네가 읽기 싫은 이야기는 엄마도 안 쓸게. 됐지?”

그제야 딸은 완전히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있잖아. 엄마가 죽는 것 같은, 그런 슬픈 이야기는 엄마가 꼭 쓰지 않아도 이미 나와 있기도 하고, 지금 이 순간 어떤 작가는 어딘가에서 쓰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런데도 꼭 엄마만 못 하게 하는 건 너무 억울해.”

“억울해도 어쩔 수 없어. 내 엄마는 엄마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엄마만 하지 말라는 거야. 알았지?”

순간 나는 너무나 많은 감정의 회오리에 빠지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