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어째 생일에 담긴 의미도 점점 희미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일상에는 꼬박꼬박 미역국이 올라온다. 매년 가족의 생일이면 아침부터 묵묵히 미역국을 끓이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부엌에 홀로 서 있는 뒷모습이며, 밥상에 올라오는 미역 향은 어찌나 당연한지, 오늘이 특별한 날이라는 인상조차 들지 않는다. 어김없이 엄마가 건네주는 미역국을 받아, 한입 떠먹으면 그 맛도 매번 참 한결같다. 가족들이 생일 밥상을 먹고 있는 동안, 엄마는 뭘 하는지 항상 부엌에서 분주하다. 생각해 보면 이런 풍경은 엄마의 생일날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자신의 생일조차 스스로 끓인 미역국을 가족에게 먹이는 엄마. 하긴 누가 엄마에게 미역국을 끓여줬겠는가.
안방 컴퓨터 앞에서 꿈쩍할 줄 모르는 아빠는 절대 아니고,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오빠는 더더욱 아닐 테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엷은 죄책감이 가슴을 쿡쿡 찔렀다. 그도 그럴게, 무심한 막내딸을 포함해 지금까지 가족 중 그 누구도 엄마에게 미역국 한번 끓여준 적이 없는 것이다. 엄마의 생일이 되면 으레 외식을 하거나 특식을 사오고는 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미역국을 끓여줘야 한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질 않는다. 그녀가 해주는 미역국을 받아먹는 것은 그렇게나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마침 곧 엄마의 생일이었다. 친구들끼리 깜짝 생일 파티를 하기로 했다고 하면서 미역국 만드는 법을 물어보자, 엄마는 별 의심도 없이 술술 레시피를 말해준다. 미역은 꼭 미리미리 불려놓고. 참기름이랑 국간장에 소고기랑 미역국 달달 볶다가 물 부어. 간은 꼭 소금이랑 국간장으로 하고. 진간장 절대 쓰지마. 모르는 거 있으면 또 엄마한테 물어봐.레시피를 받아 적는데, 그게 참 간단해서 괜히 겸연쩍은 마음이 들었다.
엄마 생일이 되자, 그녀가 집을 비운 사이 미역국을 끓여 소박한 생일 밥상을 준비했다. 뭐라도 하고 나니 뿌듯한 마음에 사진도 몇 장 찍어 두었다. 엄마는 매년 하던 일을 고작 한 번 한 주제에 뭐가 뿌듯하단 건지, 스스로 참 웃기기도 했다. 사진까지 남겨둔 것치고는 반찬도 단출했다. 그럼에도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밥상을 보더니 기쁜 얼굴로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잠시 집을 비운 아빠에게 전화해, 오늘은 딸이 끓여준 미역국으로 생일을 보냈다고 말하는 목소리도 밝다. 그 통화를 엿들으며 겨우 딸 노릇했다는 안도감과 이렇게 쉬운데 진작해줄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후회도 그때뿐, 나는 그 후로 여전히 엄마의 생일 밥상을 차리지 않고 있다. 딸이 끓여주는 미역국은 잠깐의 해프닝이란 것을 아는 듯, 엄마도 다시 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매번 엄마의 생일이 돌아오면 무심한 불효녀는 그 미안한 마음을 케이크나 다른 선물로 가려버린다. 그런 나와 달리, 여전히 엄마는 매년 생일마다 가장 당연하고 다정한 한 그릇을 나에게 건네주고 있다. 그 미역국을 한 입씩 먹을 때마다 내가 당연히 해주지 않은 것들을 새삼스레 상기한다. 늘 받는 만큼 주지 못해 또 후회하는 바보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돌아오는 당신의 생신에는 조금 더 다정한 딸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