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가 통잠을 자기 시작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환장의 짬뽕'을 이루는 육아 라이프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육아 현실의 씁쓸함 속에서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맥주 맛'을 알게 되었을 때가 말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기껏해야 500ml 맥주 한 캔이 주량의 최대치였다. 하지만 어찌 맥주 한 캔 마시는 것으로 달콤한 육퇴 후의 시간을 마무리할 수 있었겠는가. 자연의 순리인 듯, 맥주 한 캔에 따라오는 안주들은 점차 그 수와 양이 늘어났고, 급기야 하루가 멀다 하고 화려한 야식 파티가 벌어지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결과 아내도, 나도? 다시 임신 4개월 차쯤 들어선 것 같은 몸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기를 재운 후 먹는 데 쏟던 시간을 운동하는 시간으로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때마침 집 근처 수영센터에서 신규 회원을 모집하는 기간이었고, 혹여나 마음이 바뀔세라 서둘러 수영 강습을 등록했다. 수영장을 가지 않는 요일에는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을 이용하기로 하였고, 틈나는 대로 집 앞 공원을 달리는 것으로 그럴듯한 다이어트 계획을 그려보았다.
그러던 중, 무작정 운동을 하는 것보다 수치로 된 객관적인 지표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다행히 헬스장에는 체성분을 측정해 주는 기계가 있었고 키와 체중, 골격근량과 체지방량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첫 측정 결과는? 예상은 했지만 참담한 수치였다. 체중, 골격근량 그리고 체지방량까지 아슬아슬하게 표준 범위 안에 속해 있었지만, 체중과 체지방량은 표준 이상, 골격근량은 표준 이하였다.
'한 달 뒤에 다시 측정해 보자! 그때까지 일단 해보자!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날 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물살을 가르면서, 있는 힘껏 기구를 밀고 당기면서, 지면을 박차고 나아가면서 쉬지 않고 매일매일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식욕'이었다. 이전에는 운동을 하고 나면 식욕이 떨어졌는데, 육아 스트레스 때문인지 운동을 하면 할수록 입이 근질근질거리고 배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 스트레스에 다이어트 스트레스까지 더해진다면 가뜩이나 팍팍한 삶이 무척 고단하리라 생각했다. 고심하던 끝에 내린 결론은, '그래! 육아하느라 힘드니까 먹고 싶은 것은 다 먹되, 밤늦게 먹지만 말자'라며 다이어트 계획을 수정하였다. 물론, 계획은 언제나 계획이고, 1차 수정은 2차, 3차 수정을 낳는다는 사실...
낮에도 먹고, 밤에도 먹고, 평일에도 먹고, 주말에도 먹고, 그 와중에 맥주도 계속 홀짝이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삶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멈추지는 않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를 거르면 그다음 날은 어떤 운동이 되었든 반드시 발가락이라도 담그고 있으려 하였다. 그렇게 하루, 일주일, 드디어 한 달이 지나고 대망의 체성분 재측정일! 결과는?
놀랍게도 변화가 있었다. 체중에 큰 변화는 없었지만 골격근량은 1kg이 늘었고, 체지방량은 1kg이 줄어든 것이다. '이럴 수가! 어찌 되었든 하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극적인 수치를 받아 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물론, 조금 덜먹으면서 운동했다면 훨씬 더 효과적인 다이어트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운동했다는 것 자체로 무척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운동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이번 달 말이면 이제 여섯 번째 체성분 측정이 있을 예정이다. 월(月)마다 운동량이나 식사량의 차이 때문에 받아 드는 체성분 수치는 오락가락했지만, 어찌 되었든 계속해서 근육은 늘고 있고 지방은 줄고 있다. 요즘도 가끔씩 나태한 마음이 들 때면, 메모장에 저장되어 있는 체성분 측정 검사지 사진을 들여다본다. 조금씩 변하고 있는 수치를 볼 때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되뇌곤 한다.
우리 집에서 포기를 모르는 이가 한 명 더 있다. 그 녀석의 독함을 보고 있노라면 나라는 인간은 댈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누구냐고? 바로 우리 아가이다. 정말 포기를 모르는 녀석이다. 낑낑대면서도, 찡얼 대면서도, 심지어 울음을 터트리기까지 하면서도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다. 결국은 뒤집었고, 되집었고, 팔로 허우적허우적 바닥을 쓸고 다니다가 결국에는 두 손과 두 무릎을 짚어가며 기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스스로 서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침대 프레임, 베이비룸 펜스, 빨래 건조대, 식탁 다리, 벽, 서랍장 등등 손에 닿는 것이면 뭐든 가리지 않고 잡고 일어서려 애쓴다. 털썩 주저앉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발바닥으로 바닥을 힘껏 밀어 재끼며 중력을 거스르려 한다. '너란 녀석... 참 대단하다!'
끙끙대는 아가를 바라보면서, '우리 아가는 조금 더 오랜 시간 포기를 모르며 자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 가는 우리 아가에게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말을 상투적인 말이라 생각하는 때가 오겠지만, 그때가 아주 더디 오기를 바라본다. 그러기 위해서, 나부터, 아빠부터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어야겠지?!
'그래! 나는 포기를 모르는 아가의 아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