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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May 06. 2024

습! 습! 후~ 후~ (48)

출처 : 다가오는 마라톤 시즌, 무릎이 아프진 않나요? - 아시아경제 (asiae.co.kr)



  어둠이 내려앉은 고요한 토요일 저녁, 아내와 함께 달리기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내가 임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부부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틈나는 대로 집 근처 하천변, 공원, 운동장 등 여러 곳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며 뜀박질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아내의 뱃속에 아가의 보금자리가 생기면서부터 아내는 더 이상 달릴 수 없었고, 한동안 나 홀로 가쁜 숨을 헐떡이며 고독한 레이스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건강에 대한 지론 덕분에, 다행히 나는 육아를 하면서도 규칙적으로 집을 벗어나 팔다리를 힘차게 휘저으며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 홀로 달리기를 이어가는 동안 아내도 점차 몸 상태를 회복하였고, 지금의 아내는 이전보다 더 오랫동안 빠르게 달리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아가를 홀로 집에 둘 수 없었던 우리 부부는 시간을 달리하며 뜀박질을 이어갔다. 그러다 드디어 지난주, 아가가 통잠에 완벽하게 적응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베이비 캠 애플리케이션'이라는 기술의 힘을 빌려 함께 집을 나서게 되었다. 


  평소처럼 홀로 뛰는 것이었다면 집 앞 호수를 크게 한 바퀴 돌았을 테지만, 아가를 집에 홀로 둔 상태로 아내와 함께 달려야 했기에 집으로부터 먼 곳까지 나갈 수는 없었다. 뛰는 중간이라도 언제든 집으로 빠르게 복귀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파트 단지 둘레로 1km가량의 깔끔한 산책길이 나 있었고, 우리 부부는 단지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것으로 새로운 달리기 여정을 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아내와 나는 서로의 무선 이어폰을 사이좋게 나누어 꽂고 달렸다. 아내의 이어폰에서는 경쾌하고 발랄한 음악이 고막을 자극했지만, 나의 이어폰에서는 어떤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신나는 리듬의 노래에 맞춰 팔다리를 흔들면서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어폰에 더욱 귀를 쫑긋할 수밖에 없었다. 고요함으로 가득해야 할 이어폰에서 혹여나 작은 소리라도 들려온다면, 그 즉시 집을 향한 전력 질주를 시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로,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한 채, 사뿐한 리듬으로 다리를 쭉쭉 뻗어가며, 은은한 불빛이 비치는 산책로 위를 힘차게 달려 나갔다. 뺨을 훑고 지나가는 시원한 공기를 맞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아내와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냈던 때라고는, 아가를 재우고 닭다리를 뜯으며 맥주를 홀짝일 때가 전부였구나'하고 말이다. 


  달리는 중간중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화면 속 자고 있는 아가의 모습을 살폈다. 혹시라도 앱에 오류가 생겨 카메라나 마이크 장치가 정지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다행히 엄마, 아빠가 목표로 했던 거리를 완주할 때까지 아가는 약간의 미동도 없이 유유자적 꿈나라를 헤매는 듯 보였다. '기특한 녀석! 엄마, 아빠가 고마워!'


  휴대폰 화면 속 평온한 아가의 모습을 보며, '우리 부부에게 당분간 오붓한 영화관 데이트, 멋지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여유로운 해외여행, 깨끗하고 깔끔한 집안, 달콤한 늦잠과 같은 사치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시원한 저녁 공기를 가르는 상쾌한 달리기는 계속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떠올려보았다. 사랑스러운 우리 아가와 함께라면, 달리기 하나만으로도 감지덕지 아니겠는가!?


  가벼운 산책을 마치고 아파트 공동현관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순식간에 콧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고소하고 달콤한 치킨 냄새?! '함께 달렸으니, 또 함께 먹고 마셔야겠지!?ㅋ'


  운동 후 '치맥'이라는 아주 훌륭한 옵션도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행복, 그 잡채로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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